[자유성] 오늘은 내가 쏜다

  • 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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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02   |  발행일 2019-11-02 제23면   |  수정 2019-11-02

오래전 TV코미디 프로그램 단골 소재였던 ‘오늘은 내가 쏜다’ 이야기다. 외국 영화에서는 “제가 오늘 모두 쏩니다”라는 뜻으로 술집에 설치된 종을 치는 장면을 본 적도 있다. 일명 골든벨이다. 여기서 ‘쏜다’는 군인이 총을 쏘거나 곤충이 독을 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술값을 계산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도 얼마 전까지 ‘한턱 낸다’는 의미로 골든벨을 친다는 단어를 쓰기도 했다. 술꾼들은 술 값이나 음식 값을 각자가 계산하는 더치페이(Dutch Pay)가 아닌 ‘내가 쏜다’를 입에 달고 다니기도 했다.

오랜 경험상 ‘오늘은 내가 쏜다’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자신의 생일이거나 친구의 생일에 참석자에게 한턱 쏘는 강제적 의미도 있다. 골프를 치다 홀인원에 성공한 골퍼가 동반자, 캐디에게 한턱을 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전세를 살다 내집으로 이사를 했거나 승진했을 경우 ‘내가 한잔 산다’는 좁은 의미의 골든벨도 여기에 속한다. 문득 세상에서 ‘오늘은 내가 쏜다’처럼 기분 좋은 말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술값이든 밥값이든 계산을 하는 사람 입장에선 베풀거나 과시욕에 한껏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다. 비록 금전적인 부담이 엄청나더라도 한턱을 쏘는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렇다고 넘치도록 쏘면 다음날 가벼워진 지갑을 보며 후회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때문에 내가 쏘는 한턱에도 철저한 기준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자신의 주머니 사정과 가정에 미치는 경제적 부담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값싸게 쏘는 한턱은 오히려 욕을 먹는 악재가 될 수도 있다.

세계적으로 한턱을 쏘는 문화는 곳곳에 있다. 미국 뉴욕의 화이트칼라족 모임에서는 식당에서 신용카드로 식사값을 계산하려는 실랑이가 끊이지 않았단다. 결국 식당 주인은 손님들이 내민 여러 장의 신용카드 가운데 한 장을 골라 계산하는 웃지 못할 골든벨 문화도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의 직장 문화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동료, 동기, 선후배끼리 더치페이는 이상한 행동이 아니라 당연한 상식이 됐다. 선배가 몇번 밥을 사면 후배도 한번쯤은 밥값을 내는 직장 문화도 자연스레 자리잡았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신의 몫을 스스로 해결하는 더치페이에 익숙해져야 한다.

백종현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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