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 작가, 흑백을 버리고 빨강으로 말을 걸다…양성철 ‘붉은깃발 별이 되어’ 展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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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12   |  발행일 2019-11-12 제22면   |  수정 2019-11-12
“우리 세대에 빨강은 기피대상…
이념·자본을 넘어 치유·힐링 경험”
아방가르드 작가, 흑백을 버리고 빨강으로 말을 걸다…양성철 ‘붉은깃발 별이 되어’ 展
양성철 ‘붉은 깃발 별이 되어10’
아방가르드 작가, 흑백을 버리고 빨강으로 말을 걸다…양성철 ‘붉은깃발 별이 되어’ 展
양성철 ‘붉은 깃발 별이 되어3’

붉다. 온통 붉은색 범벅이다. 붉은 꽃, 붉은 우산, 붉은 티셔츠, 붉은 입술. 사진작가 양성철의 ‘붉은 깃발 별이 되어’전은 뚝뚝 떨어지는 붉은 색에 눈이 멀어지는 전시다. 17일까지 디갤러리.

아방가르드적 정신으로 사회를 고발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흑백 사진을 버리고 빨간색을 하나의 ‘상징체’로 다뤘다. 왜 하필 빨강일까.

“우리 세대에게 빨강은 기피 대상이었다. 심지어 나는 월드컵 때 대한민국 응원복인 빨강 티셔츠도 입지 못했다. ‘빨갱이’라는 강력한 단어로 억압되어온 지난 세월 붉은색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그런데 갑자기 보수 정당이 이 빨간색을 상징색으로 들고 나와 사용하더라. 평생 나는 빨간색을 마음대로 쓰지도 못했는데 그들이 빨강을 이렇게 쉽게 맘대로 써도 되는가. 여기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에서 붉은 색을 찍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붉은 깃발’이다. 낡아 버린 이념의 상징으로서의 깃발이다. 찢어지고 낡은 깃발은 쇠락한 이념에 대한 비판이며 풍자다. 피사체를 직접 붉게 칠하기도 하고, 기존의 흑백사진을 스캔하여 붉은 색을 입히기도 했다.

이후 붉은 색은 점차 소비의 ‘별’들로 옮겨간다. 상징체로서의 빨강을 따라가다보면 코카콜라와 맥도날드와 유니클로와 홈플러스를 만나게 된다. 붉은 색은 자본주의의 상징들을 통해 시장경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인다.

잡다한 빨강의 세계는 의도에 의해 구성된 이미지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포착된 파편적인 이미지를 채집해놓은 것들이다. 그것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 주기보다 카메라를 통해 대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인식 혹은 추상적인 느낌을 전달한다. 이 전시가 ‘깃발’과 ‘별’과 잃어버린(렸다 되찾은) ‘빨강’으로 만들어내는 작가의 ‘이야기’인 이유다.

“처음엔 붉은 색에 대한 선입관으로 검붉게 어두운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작업을 하다보니 붉은 색을 통해 나 스스로 치유와 힐링을 경험했다. 후반부 작업으로 갈수록 붉은 색이 처음보다 밝아진 까닭이다.”

금지와 억압의 빨강에서 소비와 향락의 빨강으로 시선이 옮겨가는 동안 작가는 빨강과 화해라도 한 모양이다. 그러게 빨강이 무슨 죄가 있겠어.

양씨는 1979년 첫 개인전을 가진 뒤 1983년 ‘제3사진 그룹 동인전’과 1986년 ‘사진가 8인의 시각전’ 등을 통해 본격적인 작업을 선보였으며, 이후 13회의 개인전과 ‘한국현대사진 60년전’을 비롯한 다수의 단체전 참가를 통해 자기세계를 구축해왔다. 사진집으로는 ‘잔상’(1980), ‘CUT―IN’(1988), ‘人+物’(2018) 등이 있다.

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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