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중3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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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5   |  발행일 2019-11-25 제18면   |  수정 2019-11-25
“아이들, 부모와 함께한 기억 많을수록 더 단단해져”
추억과 함께 감정도 고스란히 남아
성장하며 어려운 일 겪게 되었을 때
좌절하지 않고 헤쳐나갈 원동력 돼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 중3의 자서전
일러스트=최소영기자 thdud752@yeongnam.com

10여년 만에 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다. 중학교 교사만 19년째인데, 중3 담임이 뭐 대수인가 싶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맡은 중3 담임은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그것도 새 학교로 전근 오자마자 중3 담임이라니…. 불편한 감정이 먼저 들었다.

고작 열여섯 살, 지금 내 나이의 반도 살지 않은 아이들을 상대로 석차연명부의 소수점 셋째자리까지 읊어가며 누구도 알 수 없는 아이의 미래를 담보로 이 학교, 저 학교를 비교하는 일이 나는 늘 불편하기만 했다. 그리고 이 불편함은 시간이 지나고 내가 경력 교사가 되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늦더위와 함께 시작된 3학년 2학기, 학생들에게는 마지막 기회와도 같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진학 시 3학년 성적이 50%나 반영되기 때문에 이미 친 시험들의 결과는 바꿀 수 없어도 이번 2학기에 어떤 성적을 얻느냐에 따라 인문계와 특성화고, 자사고, 특목고 등의 진학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예민할 대로 예민해져서 교실의 좌석배치 하나에도 수행평가 점수를 운운해 가며 ‘이 친구와 앉고 싶다’ 또는 ‘이 친구와는 앉을 수 없다’를 외쳐댔다. 아이들이 이기적이라 비난하기엔 아이들이 가진 절박함의 크기가 더 커 보여 안타까웠다.

이런 상황의 아이들과 국어시간에 어떤 수행평가를 할까 고민이 되었다. 무엇보다 점점 불안해하고 조급증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여유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과제가 바로 ‘열여섯 살, 자서전 쓰기’였다.

2학기 첫 국어시간, “우리는 자서전을 쓸 거야!”라는 말에 아이들은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 연기를 펼쳤다. “중학교 생활을 마감하고 고등학교로 떠나는 너희들이 자서전 쓰기를 통해 자신의 지난 삶을 되돌아보고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와 의지를 가졌으면 해서 써 보려는 거야”하며 그 옛날 약장수처럼 자서전 쓰기의 중요성과 효과를 선전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자서전은 오직 국어 수업시간 8시간을 할애해 학교에서만 쓸 것이며, 또 한 명 한 명 자서전의 첫 시작을 쓸 수 있도록 교사인 내가 도와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그렇게 우리의 ‘열여섯 살, 자서전 쓰기’ 수업이 시작되었다. 한 차시 한 차시 수업이 진행될수록 이 수업에 더 빠져든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교사인 ‘나’였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방황했던 이야기,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 은근한 따돌림에 고통 받았던 이야기,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이야기 등 아이들의 자서전에 이야기 하나하나가 쓰일 때마다 나는 비로소 그 아이를 알게 되는 느낌을 받았다. 또 우리는 국어 수업 시간마다 늘 만났지만 이것이 얼마나 피상적인 만남이었는지, 아이들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롤모델로 부모님을 손꼽았다. 부모님이 자신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그 모습 자체를 존경한다고 했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요리를 하거나 영화를 보고,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갔던 일상의 순간들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아빠의 요리에 매료돼, 아빠를 닮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유림이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빠, 다 되었어요?’

‘유림아 아직. 솥을 자꾸 열어보면 더 늦어져 맛이 없어져.’ 잔뜩 안달이 난 나를 위해 아빠는 솥뚜껑을 열어 삶겨 가고 있는 고깃덩어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나의 참을성 지수가 한껏 높아지고 나서야 솥은 불 위에서 내려왔습니다. 아빠는 드디어 날이 잘 서 있는 칼을 준비하십니다. ‘유림아, 조금 뒤로.’ 바짝 다가가 있는 나에게 주의를 주는 것을 잊지 않으셨지만 잘 보이는 위치에 나를 있게 해 주는 배려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빠의 손놀림은 기계가 움직이듯 반듯했습니다. 마치 춤을 추는 듯 일정한 리듬까지 느껴졌습니다.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그때부터 요리는 나에게 먹는 것 이상이 되었습니다.”

예전엔 부모가 자식을 잘 먹이고 입히고 키워주는 게 부모그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유림이를 비롯한 많은 아이들의 자서전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모그늘은 바로 ‘함께한 기억’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은 이 기억과 함께 그날의 감정도 오롯이 떠올리고 있었다. 때문에 이 아이들은 더 단단해지고 강해질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 삶의 고단한 순간들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부모님이 드리워준 함께한 기억의 그늘은 아이들의 어려운 삶을 헤쳐 나가는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오늘 내 학생들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어떤 기억과 감정을 선물했을까? 되짚어본다. 부디 그것이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기를 소망해본다.

나혜정<경북대사범대 부설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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