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것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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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1-26   |  발행일 2019-11-26 제31면   |  수정 2020-09-08
[CEO 칼럼]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것
김행 (소셜뉴스 위키트리 부회장)

참 바쁘게, 열심히 살았다. 그토록 원했던 신문기자가 되어 나름 이름도 날렸고, 청와대 대변인도, 정부 기관장도 지냈고, 현재 경상도 대표 일간지인 영남일보에 칼럼까지 쓰니 이 정도면 족하지 아니한가. 그런데 돌이켜 보니, 뭐 하나 딱히 ‘잘했다’ 싶은 게 없다. 허명(虛名)에 인생을 통째로 건, 쓸쓸한 느낌뿐이다.

아니 딱 하나 있다. 올해 여름, 딸아이가 카카오 톡으로 기사 링크를 하나 보냈다. 하루 종일 바쁘다가 퇴근 무렵에야 열어봤다. 경기도 인근 초등학교 담벼락에서 발견된 유기견 얘기였다. 2~3년 유기된 것으로 보인다는데, 털은 봉두난발이고 눈은 짓무르고 게다가 뒷다리는 탈골 상태였다. 수술이 시급한 상황인데, 마침 그날이 데드라인이었다. 후원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음 날부터 안락사 대상으로 분류된다는 공고가 가슴에 ‘콱’ 박혔다. 급히 보호처에 전화했다. 수술비를 보낼테니 안락사는 시키지 말아달라고. 다음날 유기견 상태를 살펴보고, 수술비를 지불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입양할 생각은 없었다. 18년을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넌지 2년 남짓한 상황에서 또 다시 그런 아픔을 감당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주간의 입원 후, 막상 퇴원시키려고 가보니,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집으로 데려와 남은 인생은 꽃길만 걸으라고 ‘꽃길’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그런데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낸, 꽃길이는 어느새 우리 부부의 생명의 은인이 됐다. 재활치료를 위해 아침 저녁으로 꽃길이를 한 시간씩 산책시킨 남편은 정작 본인의 뱃살이 들어갔고 다리 근육이 단단해졌으며 건강검진 수치가 모두 정상이 되었다. 중년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필자 역시 꽃길이를 돌보며 안정을 찾았다. 우리 부부는 꽃길이를 살리고, 꽃길이는 우리 부부를 살린 것이다. 필자 평생에 꽃길이의 입양이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니, 만약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더군다나 나라를 살린다면.

2020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총선 물갈이’ 태풍이 불고 있다. 4년마다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자유한국당은 지역구 의원 3분의 1을 공천에서 배제해 결과적으로 현역의원 50%를 물갈이하겠다는 쇄신책을 발표했다. 우선 대상은 35명에 이르는 3선 이상 의원, 그 중에서도 ‘영남권·강남중진 용퇴 및 험지 출마론’이 제기된 상태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공천=당선’이기 때문이다. 정치란 결국 사람과 나라를 살리는 일인데, 사람은커녕 강아지 한 마리도 못 살리면서, 제 살 궁리만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묻는다. 한 번 더 국회의원 배지 달면 대한민국 미래가 달라지느냐고? 외교와 국방은 나락에 떨어지고, 전 세계는 4차 산업혁명기라는 뉴 플랫폼에서 뛰고 있는데 우리 경제는 파탄이 나고,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빈곤 노년층은 증가하는데, 그대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 질 수 있는 지도자들인지를?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 중에 ‘지족불욕(知足不辱) 지지불태(知止不殆)’라는 말이 있다. 자기 분수를 알고 적당한 선에서 만족할 줄 알면 곤욕에 처하지 않고, 그만 두어야 할 때를 알면 위태로운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지내도 권력은 무상할 뿐이다. 역대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종말을 보라. 국외추방, 감옥, 자살, 탄핵에서 누가 자유로운가? 그래도 3선 이상을 지낸 분들은 분에 넘치는 영광을 누리지 않았는가. 이들 모두가 불출마를 선언하고 등불을 들고 다니며 미래 지도자를 찾아 나선다면 자유한국당은 살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또 다시 출마한다면 의석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서울·수도권에서의 대패는 불 보듯 뻔하다. 사람은 결국 죽는다. ‘동백꽃 필 무렵’이란 드라마를 보면 “인간은 죽기 전에 꿈을 꾼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순간으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 마지막 꿈에선 다른 선택을 한다”라는 대사가 있다. 당부컨대 21대 총선에 재출마하면서 인생의 가장 후회스러운 선택을 만들지 말라. 지금이 그만 둘 때다. 인생 별거 없다. 남은 인생, 가족을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인생에 가장 잘한 일, 한 가지라도 만들길.

김행 (소셜뉴스 위키트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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