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마음 톡톡] 날씨 이데올로기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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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2-20   |  발행일 2019-12-20 제39면   |  수정 2020-09-08
경제 판도 움직이는 미세먼지, 예술인 마음 움직이는 빗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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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심 일대가 미세먼지에 갇혀 뿌옇게 보이고 있다. <영남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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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 파리의 거리’. 1877년 작품.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명확해 날씨의 맛을 다 느껴 볼 수 있다. 비, 햇빛, 바람, 눈, 구름, 장마, 태풍, 폭우, 폭설, 폭염, 천둥, 번개, 우박, 안개, 한파에 이제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추가되었다. 이제 곧 북쪽에서 내려온 한파에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고 눈이 쌓이면 발도 묶이게 된다. 자유롭게 야외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자연 날씨에 갇힌다.

세계 곳곳 기상이변·자연 재해
인간 삶과 생명에 밀접한 영향
날씨 잘 알아야 미래경제권 주도

비오는 풍경·눈 내리는 거리…
슬픔·기쁨·공포·질투 감정 이입
세기의 시인·소설가 작품 탄생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맑은날은 긍정적이 되고, 흐린 날이나 폭염에는 의욕이 저하돼 예민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또 날씨가 춥고 일과 시간이 적을수록 술 소비가 증가하고 우울증 발생 빈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나만 하더라도 아침부터 자욱하게 안개가 낀 날이나 비오는 날은 커피가 당겨 연거푸 두 잔을 마실 때도 있다. 날씨에 따라 우리의 라이프스타일도 변한다. 대다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제 세계경제활동의 80% 이상이 날씨에 지배를 받고 있다. 날씨가 세계의 경제를 움직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극단적인 날씨와 자연재해는 예고없이 갑자기 겪게 되기에 그 영향력은 무척 크다. 날씨는 경제와 문화, 해상운송, 자동차 산업, 무역, 식량, 항공, 관광산업 등 날씨에 민감하지 않은 산업 분야는 없다.

날씨를 알아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자연현상은 인간의 삶에 치명적인 위협이었고 현재도 그렇다. 미래의 날씨를 안다면 경제의 주도권을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라 한다. 날씨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다 보니 남들보다 날씨에 더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예술분야의 종사자가 많은데, 날씨에 마음을 베이기도 하고 위로를 받기도 한다.

작가들이 날씨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감성을 지니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비오는 풍경이나 빗소리에 자신의 마음을 이입시킨 작품이 더러 보였다. 비가 오면 모든 사물이 과장되게 보이는 어떤 신비스러움이 있다. 비는 우리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우울과 불안, 권태로움을 불러오기도 한다. 날씨가 자아의 감성과 심리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서도 연구되고 있다. 18세기 이전에는 개인적인 감성에 젖은 글이 드물었다. 아마도 자료 찾기가 어려운 점도 있겠지만 사회적인 관습이나 집단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서인 듯하다. 그 시대 사람들의 글에는 한밤중에 악몽처럼 격렬하게 퍼붓는 비와 다 휩쓸어가는 대홍수에 대한 공포를 주로 표현했다.

현대로 오면서 비를 개인의 감정이나 일상적인 생활과 결부해 바라보게 된다. 민족시인 이상화는 ‘파란비’란 시(詩) “파란비가 초-ㄱ 초-ㄱ 명주 씻는 소리를 하고/ 오늘 낮부터 온다./ 비를 부르는 개구리 소리 어떤지 을씨년스러워/ 서글픈 마음이 가슴에 밴다./ 나는 마음을 다 쏟던 바느질에서 머리를 한 번 쳐들고는/ 아득한 생각으로 빗소리를 듣는다./ 초-ㄱ 초-ㄱ 내 울음 같이 훌쩍이는 빗소리야/ 내 눈에도 이슬비가 속눈썹에 드는구나”에서 빗소리를 ‘초-ㄱ 초-ㄱ’이란 의성어에 담아 슬프고 그리운 화자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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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느는 ‘거리에 비 오듯이’란 시 “거리에 비가 내리듯/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가슴속에 스며드는/ 이 설레임은 무엇일까?/ 대지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빗소리의 부드러움이여!/ 답답한 마음에/ 오 비 내리는 노랫소리여!/ 울적한 이 마음에 까닭도 없이/ 눈물 내린다”에서 자신의 심리인 우울함과 비애감을 비와 눈물로 감미롭게 표현했다. 전성호 시인은 ‘비’란 시에서 “비가 오면 나무들은 물고기가 된다”며 비오는 거리 가로수의 비에 젖은 나뭇잎을 물고기로 대체해 비를 회화적으로 바라보며 즐겼다. 엄원태는 ‘저녁’이란 시에서 “비 그치자 저녁이다 내 가고자 하는 곳 있는데, 못 가는 게 아닌데, 안 가는 것도 아닌데, 벌써 저녁이다 저녁엔 종일 일어서던 마음을 어떻게든 앉혀야 할 게다 뜨물에 쌀을 안치듯 빗물로라도 마음을 가라앉혀야 하리라”며 가야 할 곳에 가지 못하는 어수선한 마음을 표현해 냈다.

월트 휘트먼은 “그대 누구인가? 감미롭게 쏟아져 내리는 비에게 물었더니/ (…)/ 나는 대지의 시라고, 빗소리는 말했네”라며 비가 땅으로 내리는 모습을 대지에다 시를 쓰고 있다고 상상했나 보다. 스탕달은 “영원히 내릴 것처럼 질척하고 고약하고 밉살스러운 비”라며 지독히 비를 싫어했고, 앙드레 지드는 그의 일기에서 “사흘 연속 비가 온다. 머리는 무겁고 불안하고 우유부단한 상태”라며 비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그러고 보니 비의 역사도 있고 비의 정치사도 있다. 날씨는 어느 분야에나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윤동주는 ‘바람이 불어’란 시에서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라며 바람을 자아에 비유했다. 또 구름 바라보기를 즐긴 보들레르는 “나는 구름을 사랑하오”(이방인)라고 했고, “아무리 웅대한 풍경도/ 우연이 구름과 함께 만들어내는/ 저 신비한 매력에는 미치니 못했고”(여행)라며 구름을 예찬했다. 이하석은 ‘구름의 키스’란 시에서 “구름이 어디서든/ 팽창팽창/ 피어오른다/ 그걸 올려다보는 재미로/ 여름을 난다/ 보라, 한 구름이/ 여자모양으로 목을 늘여서/ 구름 남자에게 뭉게뭉게/ 다가가는 걸’이라며 구름의 움직임을 에로틱하게 표현해 내기도 했다.

여행을 할 때면 종종 메모를 한다. “노천카페에 오래 도록 앉아 해지는 풍경을 바라 보았다. 그날 아무 이유없이 가슴 한쪽이 아렸다.” “바다는 쌀뜨물을 풀어 놓은 것 같다. 아니 쌀뜨물 보다 짙어 잿빛이다. 잿빛을 안고 바다는 내게로 오고 있다. 지치지 않고 몰려오면서도 끝없이 물갈퀴 같은 손을 내밀지만 끝내 손을 펴보지 못하고 오그리고 만다.” 날씨에 따른 그날의 마음의 움직임을 주로 써 놓는다.

날씨는 인간의 심리 외에 사람의 언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언어 음색과 날씨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에서 3개 이상의 음색을 갖는 복합음은 주로 습한 지역에서 형성되고, 단순한 음색은 춥거나 건조한 지역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사는 지역에 따라 음색이 결정되나 보다.

“날씨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없다”는 롤랑 바르트의 말을 되새겨본다.

시인·문학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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