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의 스토리 오브 스토리 .27] 미래를 찾아서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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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16   |  발행일 2020-01-16 제20면   |  수정 2020-01-16
2020년, 다시 손잡을까…
새해 맞아 한반도 문제에 희망을 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소설집 '안녕, 평화' 남북관계 다양한 시선 살펴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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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준

작년 한 해를 돌아본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한 일 년이었다. 다사다난했을 뿐 아니라 사회 문제의 실제가 흐려졌다는 점에서도 예년과 다르지 않았다. 의회 정치는 실종되다시피 했고 여론을 둘로 나누며 진영 싸움이 지속되었다. 조국 사태에서 검찰 개혁 문제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진영 싸움으로, 계층 간 괴리가 심화되고 제도화되었다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가 가려졌다. 긱(gig) 노동자를 포함한 비정규직 문제나 교육 문제, 부동산 문제도 본질이 조명되며 해결책이 궁구되지는 못했다.

나라 바깥 사정도 답답했다. 2019년 초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소식으로 희망이 고조되었지만 그것이 무산된 이후 북핵 문제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5월 이래 각종 단거리 미사일 및 발사체를 쏘면서 남한을 따돌린 채 미국과의 기 싸움을 벌였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선물' 이야기가 돌며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한일 외교는 일 년 내내 경색 자체였고 양국 국민 간의 반목도 여전히 심각하다. 사드 이후 소원해진 중국과의 관계는 작년 말까지 요지부동이었고 중국과 러시아의 비행기가 우리나라 영공을 침범하기도 했다.

이렇게 국내외적으로 문제가 산적해 있고, 어느 하나 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가 바뀌었다는 단순한 사실만으로 이런 일들이 나아지리라고 기대할 여지는 전혀 없지만, 그래도 새해를 맞이하면서 무언가 희망을 품어 보는 일은 또한 자연스럽다. 이러한 희망과 기대로 미래를 기획하는 것이니 말이다. 해서 펼쳐 든 것이 소설집 '안녕, 평양'(엉터리북스, 2018)이다. 역사적인 맥락을 살펴보면 한반도의 평화 구현이야말로 많은 문제를 풀어줄 핵심 고리이니, 남북한 문제를 살펴보는 것이 새해 맞이의 한 방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성석제, 공선옥 등 여섯 작가의 단편소설을 묶은 이 책은 2018년 7월에 발간되었다. 소설집 말미에 있는 '맺으며'에 2018년 4월27일의 남북 정상회담만 거론되고 있는 데서, 그해 6월에 있었던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수록 작품들이 쓰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들 작품의 색채는 강렬한 희망과는 거리가 먼데, 이러한 사실의 한 가지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또 다른 이유는 역사 자체에서 그리고 그러한 역사를 복원코자 하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에서 찾을 만하다. 남북 관계에서의 희망이나 절망, 평온이나 긴장 등이란 1948년의 분단 이후 남북한의 역사를 수놓은 다양한 사건들에 대비되면서 제각각 빛을 발한다는 점을 이 소설집이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안녕, 평양'을 이루는 여섯 편의 소설은 남북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른다. 과거를 다루는 작품은 성석제의 '매달리다' 한 편인데, 어부 간첩단 조작 사건의 피해자를 그리고 있다. 명태를 잡다가 북방어로한계선을 넘은 선원들이 북과 남에서 간첩으로 몰려 겪는 온갖 고초가 두 세대에 걸쳐 전개된다. 박정희 치하의 사건 당시와 전두환이 등장할 무렵의 재탕으로 말이다. 간첩단 조작 사건이란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지만, 이 익숙함이 놓치게 마련인 고통의 다양한 결을 '매달리다'는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이를 통해서, 남북한 간의 화해 모드가 이러한 상처들을 어떻게 치유할지 생각하게 한다.

남북한이 처한 현재 삶의 몇몇 측면을 다룬 작품들이 공선옥의 '세상에 그런 곳은'과 정용준의 '나이트버스', 이승민의 '연분희 애정사' 세 편이다.

'나이트버스'는 남한 곳곳에 산재한 간첩들이 심야 버스를 이용해 경주에서 모이는 일에 착오가 생겨, 모임의 수장이 형제간의 우화로 사태를 정리하는 이야기를 보인다. 그동안의 대치 상황을 생각하면 한반도 전역에 간첩이 없을 리 없음은 분명할 텐데, 화해 정국에서 이들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소품이다. '연분희 애정사'도 아이디어가 두드러지는 소품인데 끝은 무겁다. 조선국립민족예술단의 신예 무용수였다가 출세해 '어렵게 되찾은 남북 평화 무드를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158쪽)의 대표로 남한을 방문한 연분희가 예술단 단장과 중앙당 부위원장 사이에서 보였던 애정 행각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여전히 전혀 다른 모양새로 서울과 평양이라는 두 도시에 갇혀 있다"(191쪽)는 사실을 통해, 진위를 확인할 소통이 불가능한 분단 상황을 강력히 환기한다. 공선옥의 '세상에 그런 곳은'은 단편이지만 전체적으로 무거운 소설이다. 목숨을 걸고 탈북했지만 남한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인물 준이,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고 미래 전망이 전혀 없는 우울한 상황 속에 갇혀 있는 완에게 술에 취해 건네는 질문, 남한은 북한과 진실로 다를 줄 알고 목숨을 걸고 왔는데 여기는 진실로 다르지 않으냐고 묻는 질문이 독자를 사로잡는다. 민중들의 삶이 불안정하고 팍팍하다는 데서 남북한의 동질성이 찾아지는 우울한 현실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한반도의 미래에 닿아 있는 두 편도 사실 어두운 색채를 갖는다. 김태용의 '옥미의 여름'은 2023년 6월을 배경으로 하는 미래 소설로서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급물살을 탄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북미 회담이 성공하고 남·북·미가 수차례 만나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에 합의했고, 제한적이지만 경제 교류가 활성화"(44쪽)된 상황을 가정한다. 하지만 작품의 초점은 '남북한에서 죄 없이 죽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 대한 공감에 놓여 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도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남북한의 모든 이야기가 수렴되는 0도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한은형의 '샌프란시스코 사우나'도 비슷하다. 북한 출신 아버지와 남한 출신 어머니를 두고 구 동독의 본에서 태어나 이름이 '본 킴'인 주인공이 외국인 예술가로 평양을 방문해 '쓸데없음의 현신 같은 여자'(204쪽) 교통경찰을 사랑하게 되나, 고백도 하지 못한 채 몇 가지 일정을 함께 한 뒤 평양을 나와, 그녀와의 '잃어버린 미래'를 회상하는 이야기를 보여 준다. 분단을 넘어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바로 그런 면에서 한반도를 사는 우리 모두가 미래를 잃어버린 존재임을 환기한다.

지금껏 살펴본 대로 소설집 '안녕, 평양'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면서 한반도의 상황과 남북간의 관계 및 그에 따른 남북한 사회 각각의 문제 등을 두루 생각하게 해 준다. 미래에 대한 바람이 없지 않지만, 고통스러운 과거와 모호한 미래 그리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는 불안정한 현재에 초점을 맞춘다. 현재의 한순간에 갇히지 않고 역사의 선후를 두루 살피는 이러한 시선은 소설의 것이다. 시대적인 사건에 공명하는 하나의 정서를 펼쳐놓는 노래와는 달리, 희망이 한껏 무르익을 때조차도 희망 전후의 어두움을 잊지 않고 시간과 역사의 결을 살피게 하는 소설의 시선.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은 지금, 이러한 소설의 시선이 한층 값지게 다가온다. 미래를 기획하는 자세는 무릇 이래야 하기 때문이다. 희망이나 바람만으로 우리의 눈을 가린다면 미래는 한갓 신기루에 불과하게 될 것이니, 한 해의 처음에는 더더욱, 그러한 헛됨을 미연에 방지하며 역사를 두루 의식할 필요가 있다. 진영을 가르는 이념의 가림막을 걷고 현재의 실제에 주목할 수 있는 길도 여기서 열리리라.

<포스텍 인문사회학부 학부장·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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