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2019 세대공감 공모전'] 大賞 김우진씨 가족 수기

  • 박종문,손동욱
  • |
  • 입력 2020-01-20 08:08  |  수정 2020-01-20 08:08  |  발행일 2020-01-20 제18면
"아이들, 할머니와 함께 살며 배려하는 법 배워"

영남일보는 대구시교육청·초록우산어린이재단·대구맘이 후원한 '2019 세대공감 공모전'을 진행했다. 공모전 중 사례 부문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작품 20편 중 일부를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김우진씨의 글은 4대가 살아가는 가정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감과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음은 김씨가 쓴 수기의 일부다.

2020011901000652600026661
증조할머니와 김우진씨의 세 자녀가 즐겁게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현이는 효도가 뭐라고 생각해?"

"음... 효도? 효자손."

"효자손? 어떻게 그렇게 생각했어?"

"할머니가 효자손으로 등을 긁어주면 기분이 좋아. 그럼 나도 효자손으로 할머니 등을 긁어주면 할머니도 기분 좋을 거 같아."

9세 딸아이의 꾸밈없는 대답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은 주말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증조할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간다. 할머니의 전기매트위에 너도나도 드러누워 TV를 보며 할머니에게 서로 등을 긁어 달라한다. 주말아침, 잠시나마 몇 분 더 잘 수 있는 엄마의 달콤한 늦잠시간이다. 지금부터 흔하지도 않지만, 특별할 것도 없는 우리 가족이 사는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평일 아침 7시30분이면 식탁에 증조할머니와 세 아이가 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아빠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하고, 엄마는 아직 어린 막내를 먹이느라 아침을 미룬다. 오늘 아침 할머니의 밥상엔 된장찌개와 김치, 쌈 채소들이 차려졌고, 아이들의 밥상엔 미역국과 멸치볶음, 김치가 차려졌다. 둘째 딸아이가 할머니가 쌈을 싸 드시는 모습을 한참 지켜보더니 자신도 먹고 싶다고 했다. 상추에 맨밥을 얹고 된장을 조금 넣더니 잘도 싸서 입에 넣었다. 할머니가 웃으시며 "맛있제~"하니 딸아이도 끄덕이며 웃었다.


할머니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기
소리 잘 못들으시니 크게 말하기 등
사소하지만 모를 수 있는 것을 익혀



할머니가 계시다 보니 차려지는 밥상엔 채소와 된장, 김치가 들어간 음식이 많을 수밖에 없고, 아이들은 자연스레 할머니의 밥상이 친숙해졌다. 할머니가 자신의 밥그릇과 수저를 설거지통에 가져다 놓고, 밥 먹은 자리를 휴지로 한번 쓱 훑어 정리를 하면 아이들도 다 먹은 밥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가져다 놓아준다. 밥상머리 교육이 별거 있나 싶다.

아이들은 천천히 할머니를 알아가고 있다. 할머니와 외출할 때는 할머니 발걸음에 맞춰 천천히 걸어야 하고, 할머니 귀가 잘 안 들리니 크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소한 것들이지만 모를 수도 있는 것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할머니를 알아가고 도우며, 노인에 대한 배려를 자연스레 배워간다.

할머니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좋은 놀이 친구였다. 하루는 할머니와 아이가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할머니는 아이가 하고자 하는 것을 따라가 기다려 주셨고, 아이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며 같이 그 놀이에 집중을 하셨다. 아이들은 할머니와의 숨바꼭질 놀이를 좋아했다. 할머니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어디 있지~"라며 집안 여기저기를 찾아다니셨다. 그렇게 한바탕 놀고 나면 할머니는 무릎이 아프셔서 "이제 그만하자~"하시고, 아이들은 할머니 무릎을 주물러 드리는 것으로 놀이가 끝이 나나 싶었지만, 할머니는 "뭐하고 놀아줄까~" 하신다. 그렇게 아이들과 할머니의 행복한 놀이시간은 한참을 이어갔다.

할머니는 종종 아이들을 보며 본인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신다. 첫째 아이의 입학을 앞둔 초봄쯤이었다. 남편이 첫째아이의 연필을 깎아주는 모습을 할머니는 한참을 바라보셨다. 그리곤 나지막이 혼잣말을 하셨다. "아버지가 내 연필을 참 예쁘게도 깎아 줬어. 내가 공부는 잘했는데,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공부를 많이는 못했지만…." 말씀을 흐리셨다. 콧물을 닦으시는 할머니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할머니는 코를 킁킁 거리시며 "내가 축농증이 심해서"라고 말을 돌리시곤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냥 있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무뚝뚝한 손부며느리보단 귀여운 증손녀가 위로가 되겠다 싶어 둘째아이를 불렀다. 둘째아이의 손에 홍시를 담은 접시를 들려주고, 할머니 방에 가서 같이 먹으라고 했다. 홍시를 좋아하는 둘째아이는 웃으며 냉큼 달려갔다. 금세 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먼 길을 걷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가족은 지금처럼 할머니도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서로 많이 사랑하며 배려하고, 노력할 것이다.

기자 이미지

박종문 기자

기사 전체보기
기자 이미지

손동욱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