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아삶공생태건축연구소장 김경호(1)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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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1-31   |  발행일 2020-01-31 제33면   |  수정 2020-01-31
자연·사람과 함께 공유하는 집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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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아름다운 삶의 공간' 이란 뜻을 가진 아삶공생태건축연구소를 통해 '주택은 배타적 소유공간이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는 공유의 공간'이란 자신의 건축 철학을 많은 사람과 공감하기 위한 건축운동가적 삶을 살고 있는 김경호 소장. 경산 남산면의 한 농가를 개조한 이곳은 이웃 아이들에게 공부방은 물론, 1층 카페의 일부 공간도 나눔의 장소로 할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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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FILL BUT FEEL!' 김경호 소장이 자신이 건물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적어놓은 문구이다. '너무 채우려 하지 말고 느끼게 배려하자'란 의미다.
김경호 소장이 벽에 붙여놓은 메모지에 그의 건축 철학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집 짓는 기술만 학습하였고 이제는 땅의 기운과 사람의 성향, 환경과 이웃과의 평화를 궁리하며 집을 짓는다는 자필 문구가 선연하게 다가온다.
나는 아삶공생태건축연구소 김경호 소장이다. 난 건축을 설계한다는 말이 싫다. 그냥 '디자인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난 건축가·건축사 범주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반인은 건축사와 건축가의 차이를 잘 모를 것이다. 방금 조리사 자격증 받은 사람을 '건축사'라고 하면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오너 셰프는 '건축가'라고 하면 될 것이다.

누가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인가'라고 질문을 하면 나는 "사람 사는 공간을 연구하고 디자인, 그리고 시공하는 학생"이라고 대답한다. 그래 매 순간 모르는 세상사를 공부해야만 하는 학생이다. 학생은 전문가보다 존재감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결코 그건 아니다. 전문가란 아는 것만 아는 사람이지만 학생은 모르는 세계를 매 순간 넓혀가는 자라고 믿는다. 인간은 모든 걸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 안다고 확신하는 순간 히틀러 같은 파시즘적 좀비가 탄생한다.

나는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경산 남산면 카페를 겸한 아삶공 건물 내부 벽 한 편에 분필로 이런 문구를 적어놓았다. 'NOT FILL BUT FEEL' 꽉 채우지 않고 그냥 느끼게 만들자. 건축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압축시켜 놓은 것이다.

건축가는 지구상의 온갖 물성에게 새로운 차원을 부여해주는 '미학적 혁명가'랄 수 있다. 자연의 일정 부분을 건축공학적으로 건드려 인간에게 가장 알맞은 동선을 만들어주는 자이다. 건축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담는다. 무채색 세상에는 무채색 건축, 유채색 세상에는 유채색 건축이 득세를 한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사람이 불어났다. 부족한 택지를 조성하기 위해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들었다. 그 시절 초가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느 순간 아파트가 일반 주택을 압도하기에 이른다. 지어진 건축물은 어느 날 수명을 다하고 일시에 철거된다. 그 위에 새로운 건축가의 꿈이 또 아로새겨진다. 지금 전국 각처에서 행해지고 있는 원도심 재개발이 바로 그 현장이다.

우린 지금부터 새로운 건축의 역사를 그려 나가야 한다. 사람들이 자기 욕망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기 시작한 것이다. 스마트폰은 전 세계 유명 건축물을 실시간으로 검색하게 만들었다. 모든 사람이 사진작가로 변신 중이다. 뭐가 예쁘고 뭐가 놀라운 건축물인지 단번에 안다. 비록 내 집은 없어도 주말에 식구와 맘껏 뛰놀 수 있는 공원을 나의 공간이라 여기게 된 것이다. 정부도 그 알록달록한 시민들의 욕망을 반영해 공공디자인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욕망은 아직도 반(反)건축적이다. 유럽의 건축 선진국과 달리 생계형 건축에서 그렇게 많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유명 건축가를 초빙해 이런저런 명품 건축물을 짓고 있지만 한 편에선 여전히 숨을 못 쉬는 건축물이 즐비하다. 설계-시공-감리의 역학관계는 저마다의 욕망 때문에 한없이 뒤틀려져 간다. 당초 건축주가 부푼 꿈을 갖고 그려왔던 '저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은 한없이 왜곡되기만 한다. 건축주는 숱한 관계자와 기 싸움을 해야만 하고, 당초 약속했던 건축과 다른 그림 앞에서 분통을 터트린다. 건축 인부들도 본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무데뽀'의 존재로 폄훼 받는 것도 사실이다.

나만의 새로운 집짓기. 그게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평생 모은 거금을 새로운 자기 집을 위해 쾌척한 그들. 그들에겐 가보(家寶)나 다름없는 새 집, 하지만 건축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는 그들이기에 관계자에 대한 실망은 급증한다. 어느 날 건축에 간여되는 모든 자가 '적군'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집 두 채만 짓다가는 제 명에 죽지 못할 곳이 대한민국'이란 탄식을 늘어놓겠는가. 전 국민을 위한 '힐링건축문화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나는 2000년부터 다른 건축 인생을 살기로 했다. 그 기치가 바로 '아삶공'이다. '아름다운 삶의 공간'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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