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집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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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07   |  발행일 2020-02-07 제40면   |  수정 2020-02-07
설레는 여행 뒤, 피곤한 몸 보듬어줄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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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옥 작 'H&H(봉숭아 꽃물)', 38×38cm, Mixed Media,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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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마티스(Henri Matisse,1869~1954년)의 그림에 푹 빠져 지낸 적이 있다. 관심이 박사과정 중 학술연구논문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시야를 좁히면서 빠르게 그리는 기법을 구사한 마티스를 미술사는 혁신적인 색을 창조한 화가로 기록한다. 혹자는 마티스가 사용한 색을 마법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상파 화가들과는 사뭇 다른 시각에서 찾은 원색을 대담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풍부한 지성이 중심을 잡아주는 그림을 그렸던 마티스는 분출하는 감정을 약화(略畵) 안에 가두곤 했다. 초기에는 모네와 피사로의 그림을 흉내 냈다. 고흐와 세잔의 공간도 모방했다. 신인상파 화가 시냐크의 조언으로 색을 실험했고 피에르 퓌비 드 샤반(Puvis de Chavannes)의 평온한 세계를 따르기도 했다. 신혼여행지에는 터너의 그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티스의 독창적인 그림 탄생에 일조한 것 하나를 더 꼽으라면 여행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내 영혼을 속박하지 않는 나만의 소박한 수단을 버리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났다"고 할 만큼 마티스는 독창적인 예술방향 모색을 위해 여행을 떠나곤 했다. 1895년 처음 브로타뉴를 방문했을 때는 뵈제크카프시쥔에서 '브로타뉴의 마을'을 그렸다.

1898년에는 코르시카 아작시오로 갔다. 스승 모로가 타계했을 때에도 코르시카에 있었다. 코르시카의 전원에서 빛의 구체성을 복원할 필요성을 느낀 마티스는 '코르시카 풍경'을 그림으로 남긴다. "나는 현혹 당했다. 모든 것이 빛났다. 모든 것이 색이었고 빛이었다"고 술회한 마티스는 작열하는 지중해의 햇살 이래서 예술적 기운을 재충전했다. 그의 여행은 이후에도 계속됐고 그림에 변화를 가져왔다.

여행이 마티스만의 전유(專有)라고 할 순 없다. 마티스처럼 많은 예술가들이 여행을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예술적 힌트 내지는 변모를 꾀하기 위함일 것이다. 예술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여행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지 않을까. 집을 나와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설렌다. 집으로 돌아올 때의 심정은 또 어떤가.

나의 경우 마을 입구에만 와도 긴장이 풀린다. 눈앞에는 고단한 몸을 뉠 푹신한 침대가 아른거린다. 만만치 않았던 장거리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땐 더 그렇다. 심신이 지쳤을 땐 집에 대한 그리움이 커진다. 어머니의 품속 같은 안온한 집일수록 더 커지는 그리움. 여행은 결국 집으로 귀결된다.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하루도 여행에 비견된다. 그렇다고 볼 때 지난 몇 개월간의 나는 색다른 여행을 한 셈이다. 다름 아닌 수성빛예술제 작가감독 임무완수다. 빛나는 여행이었다. 모두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은 차를 우릴 만큼의 여유를 다시 찾는다.

집에서 새벽을 열면 온전한 하루의 주인이 되는 것 같아서 좋다. 온몸으로 번지는 알싸한 새벽공기가 잠들었던 세상의 세포까지 골고루 깨워줄 것만 같다. 어둠과 빛의 교차지점엔 희망이 기다리고 있을것같다. 겨울이라서 새소리는 없지만 누군가의 비질 소리가 못지않은 경쾌함을 전한다. 창문을 열고 깨끗하게 우리의 하루를 열어주는 그에게 축복을 빌어준다.

주전자에서는 보글보글 물이 끓는다. 물 끓는 소리에는 여행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설렘이 스며있다. 깔끔하고 담백한 차 맛을 닮았다. 찻잎 포장지를 풀다가 선물로 준 이의 단단한 사랑을 다시금 확인한다. 소문난 명장에게 특별 주문했다는 그녀의 말이 차를 우릴 때마다 차향보다 진하게 우러난다. 진심이 담긴 정성은 평범한 누군가를 특별한 사람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꽃이 피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거기엔 기다림과 그리움이 동반된다고 한 법정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그럼에도 나는 느림과 기다림의 격식을 생략할 때가 많다.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가족의 바쁜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땐 차향이 입안에 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한다. 그리움이 고일 시간도 없이 밥솥에서 밥이 끓는다. 밥 끓는 소리 사이로 전해지는 차향이 심층 밑바닥에 깔린 마음의 때까지 말끔하게 씻어줄 것이라 믿어본다.

마티스는 영혼을 속박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수단을 버리기 위해 여행하며 독창성을 획득했다. 그런 마티스의 예술을 흠모한 나는 집에서 그의 예술세계를 탐구하며 차도 우린다. 누군가 그랬던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여행에서 돌아오면 나를 보듬어줄 집이 있기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소확행이다.

화가·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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