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일보 '2019 세대공감 공모전'] 銅賞 황명숙씨 가족 수기·〈끝〉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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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4 07:46  |  수정 2020-02-24 07:48  |  발행일 2020-02-24 제18면
"결혼 전 꿈도 못꾼 오붓한 밥상 대화 소통공간으로"

세대공감사진
황명숙씨 가족이 과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황명숙씨 제공>

난 어릴 적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할머니께서 "손자 하나만 낳아라" 하셔서 우리 엄마는 딸을 줄줄이 낳고 여섯 번째 귀하고 귀한 아들을 낳았다. 한 명 더 낳고 싶다는 욕심에 아기를 가졌는데 글쎄 일곱 번째로 태어난 것이 바로 나, 또 딸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는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이라 특히 우리 할머니, 엄마가 아들에 대한 집념이 강하였다. 아버지와 함께 같은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랑 오빠 밥상 따로 할머니 밥상 따로 엄마와 나 언니는 한곳에 이렇게 앉아 밥을 먹었다. 밥 먹을 때는 서로가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아버지랑 한방에 있을 때 아무리 다리가 아파도 발을 뻗어 본 적이 없다. 너무 엄하셨기 때문에 여자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늘 이야기해 주셨다.

나는 스물여섯 살에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음과 동시에 시부모님과 함께 생활했고 지금 19년 동안 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시골에 계셨던 친정아버지랑은 전혀 다른 우리 시아버님. 도시에서 살아오신 분이라서 그런 건지 그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시려고 하는 건지 모든 면에서 친정아버지랑은 반대의 모습인 것 같아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못했다.


조부모 생각하는 두 딸 모습 대견
어른 돼가는 딸 보면서 나도 배워
의무적으로 했던 친정엄마와 통화
이젠 큰딸 대신해 매일 주고받아



시부모님 두 분도 우리 아이들이 어릴 때 직장을 다녔었기 때문에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시간이 되면 난 아이 둘을 데리고 대문 밖에서 늘 기다리면서 부모님을 마중했다. 두 딸들도 아장아장 걸어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안녕하세요." 아침에 일을 나가실 때도 일찍 일어나 "안녕하세요." 유치원생이 되면서 말도 제법 잘하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유치원에서 배웠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먼저 숟가락을 들어야 우리가 밥 먹을 수 있어요. 얼른 숟가락 들어요"하면서 어른들이 먼저 숟가락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밥을 먹는 우리 딸들. 그럼 둘 다 밥 먹으면서 재잘재잘. 부모님도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사실 우리 여섯 가족이 다 같이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저녁 밥상 앞에서다. 내가 어릴 적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을 결혼하고 뒤늦게 시부모님과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하면서 저녁밥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아이들이 밥상에서 떠들고 이야기하면 조용히 밥 먹는 것이라고 야단을 쳤는데 시부모님이 오히려 나를 꾸지람하셔서 밥 먹는 시간이 우리 가족이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고 오붓한 시간이 되었다. 우린 여름에 휴가를 갈 적에도 늘 여섯 명이었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왠지 이상하고 쓸쓸하고 늘 여섯 명이 함께였다. 어쩌다 우리 네 식구가 식당에 갈 일이 있어 가면 우리 딸들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같이 올걸. 자리가 딱 여섯 자리인데 우리 네 명이 오니 두 자리가 남잖아 하면서 다음에는 꼭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오자고 하는 우리 딸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딸들이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끼곤 한다.

큰딸이 다섯 살일 때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혼자 남겨진 외할머니를 위해 우리 딸이 일주일에 한 번씩 외할머니에게 전화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시켜서 억지로 몇 번 하더니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커갈수록 자연스럽게 이제 하루에 한 번씩 통화하는 것 같았다. 친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랑 같이 사는데 외할머니는 혼자잖아 하면서 외로울 거야 내라도 전화해 드려야지 하면서 시작한 것이 벌써 8년이 지났다. 나보다 훨씬 어른이 먼저 되어 있는 딸을 보면서 나도 배우고 있다.

큰딸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외할머니랑 통화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이제 내가 우리 딸을 대신하고 있다. 퇴근하고 하루에 한 번 전화통화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그저 엄마는 고맙다 말만 한다. 당연한 것인데 왜 자꾸 나는 고맙다는 말을 듣는지 모르겠다. 혼자된 엄마를 위해 내가 먼저 나서야 되는 것인데 우리 딸 덕분에 요즘은 내가 성장해 나가는 것 같다. 내가 우리 친정아버지처럼 밥상 앞에서는 말하지 마라 했으면 아마 우리 집은 대화가 전혀 없는 집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인성교육은 배워서 된다기보다 그냥 삶과 함께 묻어가는 것 같다.

오늘도 난 퇴근하면서 여전히 엄마한테 전화를 하고 "밥 묵었나. 반찬은 뭐하고 묵었는데, 춥다 방 따뜻하게 하고 자고 일 많이 하지 마라. 내일 또 전화할게." 그럼 우리 엄마는 "전화해줘서 고맙데이 매일 목소리 듣는 것이 참 좋다." 우리 딸이 해왔던 길을 이제 내가 꿋꿋하게 하고 있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했는데 이제는 정말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은 것이다. 앞으로도 퇴근할 때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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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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