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광장] 나 정치할 거예요

  • 이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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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2-28   |  발행일 2020-02-28 제23면   |  수정 2020-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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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정치하겠다고 나서면 일단 주위 분위기는 대체로 부정적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여러 사례를 통해 국회의원 배지라는 게 각종 특권의 도구이자 찬란한 스펙의 하나라는 걸 익히 보아왔으니 기본적으로 정치하겠다는 사람이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정치권 진입이라는 게 문열고 들어가기 전부터 고공플레이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열심히 일하는데 누군가 알아주고 모셔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특정진영의 구미에 맞게 피에로 춤이라도 추면서 나를 보아달라고 외쳐야 길이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 진입의 디딤돌이 된 양심 중 어디가 소신이고 어디가 피에로 춤인지 혼동스럽다. 이번 총선을 한번 보자.

지난 탄핵 이후 온 나라의 이슈가 적폐들 심판이었던 탓에 이번 각 당의 인재영입과 관련해서는 유난히 법조인에 대한 논란이 많다. 첫 번째 논란은 법복입은 정치인이다. 법복을 벗자마자 부리나케 정치권에 뛰어 들어간 것 자체는 들어줄 명분이 있으면 넘어가 줄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 명분이라는 것이 사법개혁이라고 한다. 정치권이 사법부를 개혁한다? 사법권 독립에 대한 기본은 불개입아닌가. 연이어 무죄판결이 나오고 있는 전 법원 내 주류세력에 대한 청산을 계속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법원도 정치권을 닮아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건가. 다음에 사법개혁 명분 자체를 인정하더라도, 문제는 이들 얘기의 진실성이란다. 못된 적폐들의 블랙리스트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 게 맞는지, 정말 법원 내 민주화를 위해 기여한 게 맞는지 당장 동료판사들이 언론과 법원 내 게시판을 통해 지적을 하고 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두 번째 논란은 청년정치인이다. 한 청년변호사가 조국 수사는 인권탄압이라며 검찰을 개혁하자고 외쳤다. 조국수호와 개혁을 같이 보는 논리가 혹시 여권의 진짜 속내는 아닐까 궁금하다. 어쨌든 그는 열성 여권 지지층들의 지지를 받더니 '빨간 점퍼 입은 배신자'에게 도전장을 냈다. 역풍이 불까 다급해진 당 지도부는 다른 전략 지역으로 공천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참 이런 코미디가 없다. 지역구를 이리저리 옮겨가는 자체가 지역 민원에는 별 관심없다는 거 아닌가. 또 다른 데 가서 검찰개혁을 얘기하며 조국을 수호하자고 할건가. 본인은 부인하겠지만 어쩌겠나. 이미 이미지는 조국이 되어버린 것을. 지도부는 지지층과 중도층을 다 잡았다 자평하나본데, 어차피 지지층의 목표는 빨간점퍼 쫓아내기였고, 조국 프레임은 계속될 거라는 생각은 안 들까.

누구를 선택하는 게 쉽지는 않다고 봤는데 그래도 써놓고 보니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가려낼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한 번 다른 사례를 보자. 묵묵히 생활형 검사로 수십년을 일하다가 본인 상식에 어긋나는 개혁안에 '대국민 사기극'이란 말을 남기며 나온 사람이 있다. 검찰 개혁의 포장을 뜯어보면 나오는 건 정권의 욕심과 권력기관의 야합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 사람에게 정치권 진입을 위한 쇼가 필요했다면 더 빨리 움직이지 않았을까. 최소한 소신이 정치보다 먼저인 건 맞는 것 같다. 그가 말하는 개혁이 전부 옳지는 않겠지만, 수 십년 경험에서 나오는 관점은 한 번 경청할 만하다. 어떤 사람인지는 동료들이 가장 잘 알텐데 응원을 하고 있다.

적어도 만인의 대표가 되겠다면 가슴에 손을 얹고 떳떳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걸까. 누구나 적어도 합리적 상식이라는 게 있다. 그저 욕심쟁이들의 스펙을 만들어주는데 이바지해야 되나. 고해성사를 강요할 수도 없고 가끔 뻔히 보이는 레퍼토리에 부아가 치민다.

전지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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