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옥의 그림 같은 집] 사과에서 삶의 교훈을 찾은 집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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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3-06   |  발행일 2020-03-06 제37면   |  수정 2020-03-06
혼란의 시기 희생으로 이웃 위하는 정성
죽음 앞에서도 사과나무 심는 스피노자의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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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 (18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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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가 아파트 화단으로 봄을 살짝 밀고 왔다. 영글었던 산수유 꽃망울도 톡톡 터지는 중이다. 환하게 세상을 밝힐 백목련이 필 날도 멀지 않았다. 봄꽃들은 하나둘 피어서 세상을 밝히는데 마음에는 꽃필 날이 아득해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관한 뉴스속보가 뜰 때마다 하던 일을 멈추게 된다. 거듭되는 비보가 삶의 진도와 집중을 방해한다.

거리엔 인적이 드물다. 개강이 연기되고 회의는 취소됐다. 전시장을 비롯해 대중이 모이는 곳은 문을 닫았다. 외출 자제와 마스크 착용에 손 씻기는 일상이다. 패잔병처럼 집안에서 몸 사리기를 며칠째, 슬슬 갑갑증이 일기 시작한다. 병상의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겪는 고통에는 비할 바가 못 될 것이다.

먼 곳에서 지인들이 안부를 묻는다. 정신건강도 챙겨야 한다며 덕담에 마음의 환기를 도울 이미지들까지 첨부한다. '작은 것의 힘'을 지은 저자는 '중압감이 고통스러운 것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 없는 막막함 때문'이라고 한다. 집안 곳곳을 정리하는 것도 극복의 방법이지 싶어 베란다로 나갔다.

지난 설에 친척들이 보내준 과일부터 손보기로 했다. 싱싱할 때 이웃과 나누는 것도 미덕일 것이다. 조금 상한 것은 골라서 도려내고 종합과일주스를 만들 생각이다. 사과는 대체로 양호했다. 다른 과일에 비해 비교적 싱싱함을 유지하는 사과를 보자 학생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과는요?' 스크린에 세잔(Paul Cezanne, 1939~1906)의 사과를 펼쳐놓고 던진 질문이다.

뉴턴의 사과, 아담과 이브의 사과, 빌헬름 텔의 사과, 파리스의 사과, 백설공주의 사과, 애플사의 로고에 이어 세잔의 사과까지, 저마다 다른 이유로 회자되는 사과를 읊는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그때도 사과를 그렸다. 입시학원 정문 단상 위에는 어김없이 사과가 올라왔다. 기계처럼 왜 그려야만 하는지도 모른 채 합격만을 고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 알게 된 것은 세잔과 사과가 불가분하다는 것이다. 세잔이 사과를 주로 그렸던 것은 오래 두어도 잘 시들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 때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던 사과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세잔만큼 사과를 관찰한 화가도 드물 것이다. 미술사는 세잔의 사과를 특별하게 대우한다. 현대회화의 서막을 알렸기 때문이다.

세잔은 사물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엄청난 시간을 관찰에 투자했던 세잔은 한 시간 이상을 바라본 후에 그림을 그렸다. 인물화를 그릴 때면 아내를 모델로 삼았다. 아무도 긴 시간을 부동자세의 모델이 되어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과 정물화를 그린 것도 그런 까닭이다. 화가에게 정물은 오랜 시간 관찰하기 좋은 최상의 대상이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물체들을 그린 그림을 '정물화'라고 한다. 동양에서는 조선시대 후기에 성행한 책거리가 대표적이다. 유럽에서 정물화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은 역사화나 종교화에 비해 푸대접을 받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그 가치를 새롭게 인정받으며 독립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정물화는 영어로 Still life라고 한다. 형용사 still에는 '움직이지 않는' 이란 뜻이 담겨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침묵을, 프랑스에서는 죽음이란 의미로도 쓰인다. life는 활기, 생기, 생명을 가리키는 명사다. 하여 Still life는 모순된 어법인 것이다. 서로 반대되는 단어의 조합인 Still life에서 인간들의 불멸에 대한 갈망을 읽을 수 있다.

세잔의 사과는 still(죽음)이 life(생명)를 다시 살렸다. 본질을 보려고 한 세잔이 사과를 오랫동안 관찰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자세히 관찰한 결과 현대미술이라는 새로운 문을 열 수 있었다. 다시점(多視點)의 표현은 다양한 위치에서 관찰한 결과다. 여러 각도에서 자세히 오랫동안 살펴서 그린 세잔의 사과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의미하는 바와 같다.

다양한 시각으로 유심히 관심을 기울일 때 가려지거나 숨어 있던 것을 볼 수 있다. 초유의 공포와 혼란을 겪고 있는 지금, 협심하여 한 곳을 유심히 바라볼 이유와 여유를 세잔의 사과에서 배워본다. 봉사와 희생으로 이웃에게 정성을 다하는 관계자들에게서는 죽음 앞에서도 사과나무를 심는 스피노자의 정성을 읽는다.

우리 집 베란다에 있던 사과도, 세잔이 그린 사과도 모두 나무의 열매다. 열매는 기다림 속에서 잉태됐다. 성숙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화가·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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