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자기만의 방

  • 박종문
  • |
  • 입력 2020-03-23 07:49  |  수정 2020-03-23 07:37  |  발행일 2020-03-23 제17면

2020032001000829300037281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개학 연기로 학교에서는 많은 학부모들의 문의 전화를 받습니다. 아이들의 학습 지도나 생활 지도를 위해 필요한 정보는 없는지를 묻습니다. 한편으로 이 기간 동안 자녀와의 대화 시간을 많이 가지고, 개학 전까지 스스로 자기 생활을 통제하는 법을 익히는 기간이 되도록 돕겠다는 말씀도 하지요. 아이들은 학습 활동으로 제시된 진로 독서 활동을 통해 바이러스와 싸우는 의료진, 소방관, 각 부처 공무원,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고 직업인의 올바른 덕목을 배우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요즘 저는 부쩍 '자기만의 방'을 생각합니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과 함께 머물렀던 시골 집 몽크 하우스. 부부가 영국 동부 서식스주의 작은 농가를 사들여 개조한 이곳에 그녀의 작업실 '글 쓰는 오두막'이 있습니다. 버지니아는 작가를 꿈꾸는 모든 여성이 사회적 편견과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습니다.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격언은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이 거의 없던 1920년대 그녀가 했던 연설문의 한 대목입니다. 에세이 '자기만의 방'의 기초가 되기도 했던 연설문은 남성에게만 허용된 창작의 자유가 모든 역사에 걸쳐 여성에겐 금지되어 왔다는 현실을 강조합니다.

자기만의 공간이 있으면 숨을 고르듯 마음이 차분해지고 상상력이 공간을 가득 채웁니다. 방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 때 미친듯이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으며 누군가 그 상황을 깰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해방됩니다. 자기만의 방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요? 문이 하나 있고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마음속의 어떤 특별한 공간일까요? 크기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방의 진정한 의미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남녀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생각의 발전과 성숙이 허락됩니다. 그런 공간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모든 작가는 자신의 본질적인 내면의 고요에 다가갈 수 있어야 하며, 생각하고 꿈꾸고 계획할 수 있는 정신적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언제든 물러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고요한 안식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쟁에서 비롯되는 불안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것이 비단 작가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자기만의 방'은 어떻게 열 수 있을까요. 특별해지려고 노력하는 대신 내가 진정 원하는 것,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무언가는 특별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하지만 꼭 특별한 무언가가 되거나 반드시 1등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가장 빛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조건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일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특별할 것을 요구하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18세기 이탈리아 토리노. 한 장교가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한 죄로 42일간 가택 구금을 당합니다. 즐거운 행사가 많은 사육제가 시작될 무렵이어서 젊은 청년에게 내려진 벌 치고는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가 집 안에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쓴 책이 '내 방 여행하는 법'입니다.

책은 좁고 별것 없는 내 방 안에서도 여행은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진정한 여행은 새롭고 낯선 것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발견'함으로써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새롭고 낯설게 보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지요. 그 경험은 조금 늦게 시작하는 새 학기를 잘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입니다.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기자 이미지

박종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