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 교육] 사섭(四攝)-교사의 자세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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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7-27   |  발행일 2020-07-27 제15면   |  수정 2020-07-27

우리가 끊임없이 상념에 시달리는 것은 무명(無明), 즉 깨닫지 못해서 어두운 상태가 부지불식간에 우리 마음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훈습(薰習)이라고 부른다. 훈습은 마치 연기나 냄새가 몸에 배듯이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의미한다. 삼겹살을 구워먹고 들어가면 식구들이 금방 알아차리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명만이 내 마음을 훈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불성(佛性)이 있고 그것을 진여라고 한다. 진여도 무명과 같이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훈습한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다가 문득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가?' 혹은 '산다는 것이 정말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이 진여가 훈습하기 때문이다.

진여의 훈습에는 두 가지가 있다. 그 한 가지는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진여가 훈습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다른 사람의 진여가 훈습하는 것이다. 전자를 진여자체상(眞如自體相) 훈습이라고 부르고, 후자를 진여용(眞如用) 훈습이라고 부른다. 불교에서는 전자가 인(因) 즉 내적 원인이 되고, 후자가 연(緣) 즉 외적 계기가 되어 이 두 가지의 결합에 의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불교의 교육목표가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불교의 교육방법이란 결국 진여의 훈습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진여의 훈습 중 진여자체상 훈습은 학습자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고, 진여용 훈습은 교사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진여용 훈습 중 대표적인 것이 사섭(四攝)이다. 사섭은 베푸는 일(布施), 격려하는 말(愛語), 바른 행동으로 이끄는 일(利行), 학습자의 수준에서 함께 하는 것(同事)을 말하는데, 이를 '교사의 자세'라고 부른다. 교사의 자세 중 첫 번째인 보시는 3가지로 나뉜다. 재(財)보시, 법(法)보시, 무외(無畏)시가 그것이다. 재보시는 재물을 베풀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법보시는 진리를 베풀어주는 것이며, 무외시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시이다. 물론 3가지 보시 중에서 교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법보시와 무외시이다.

진리를 베푸는 법보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외시이다. 우리는 언제 두려움을 느끼는가?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오직 나 혼자라고 느낄 때,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느낄 때이다. 아무리 캄캄한 밤에 공동묘지에 있다고 해도 수천, 수만 명이 함께 있으면 두렵지 않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네 곁에 남아 있겠다는 교사의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무외시는 사섭 중에서 애어(愛語)와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모든 보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여야 한다. 무언가 대가를 바라는 보시는 집착이지 보시가 아니다. 집착한다는 것은 내가 보시함으로써 무엇인가를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거래이지 보시가 아니다. 보시는 흘러넘치는 것이다. 깨달음은 샘물과 같다. 그것은 끊임없이 솟아난다. 그 때 주는 사람도 없고 받은 사람도 없다. 왼손이 오른손에게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주는 것도 없다. 그래서 무착 문희(無着 文喜·821~900년) 선사는 보시란 보시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그리고 물건이라는 대립적인 관계로부터 마음을 차단하는 일이라고 했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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