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중산동 김여사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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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09-25 07:59  |  수정 2020-09-25 08:02  |  발행일 2020-09-25 제13면

이정연
이정연 〈작곡가〉

어느 날 친정엄마가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는데 포인트 적립을 한다고 직원이 엄마 이름을 확인했다. 엄마는 대답 대신 당신의 이름을 다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직원이 의아해하며 한 번 더 불렀다. 엄마는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니 참 듣기 좋다며 언젠가부터 누구의 엄마, 아내, 심지어 누구의 할머니로 불린다며 당신의 이름을 불러 줄 사람이 없다고 직원에게 말했다. 참 우습기도 하고 씁쓸한 에피소드다.

70대 중반을 넘긴 엄마는 중산동에 사는 김여사다. 기분이 좋을 때면 나는 한 번씩 엄마를 김여사라고 부른다. 그저 엄마에 대한 애칭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내가 힘들거나 슬플 때 찾는 건 김여사가 아닌 바로 엄마다. 어릴 적 어버이날이면 항상 부모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의 '어머니 마음'을 노래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이 한 소절만 불러도 이미 목이 메어 끝까지 불러 본 적이 없다. 노래 초반부터 부모님의 그윽한 사랑의 향기가 묻어 있어 내 눈물샘을 자극한 듯하다.

안토닌 드보르작 가곡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는 혈육 간의 사랑과 이별을 표현해 우리에게 슬픈 감성을 전달한다. 곡 제목부터 어머니를 연상시키는 이 곡은 드보르작이 1년 반 동안 세 명의 자녀를 잃고 나중에 쓴 작품으로 아버지의 절망과 슬픔을 노래한다. '늙으신 어머니, 나에게 노래 가르쳐 주실 때 어머니 눈에 눈물이 종종 맺혔었네. 이제 내 아이들에게 그 노래 들려주노라니 내 그을린 두 뺨 위로 한없이 눈물 흐르네'라는 독일 시인 아돌프 하이두크의 시에 선율을 입혔다. 부모에게 받은 사랑을 대물림하고팠던 아버지 드보르작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이 곡이 더욱 서글프고 애처롭게 들린다.

작년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할머니를 두고 이제는 '엄마'라고 부를 데가 없어 슬프다고 하셨다. 세월이 흐를수록 나도 엄마와의 이별 시간이 다가오는 거 같아 때로는 이유 없이 슬프고 엄마에 대한 '애가'를 쓰게 될까 봐 두렵다. 엄마를 작은 목소리로 한 번 부르면 묘한 감정이 점점 크게 요동치고, 엄마를 다시 부르면 울컥한다. 한 번 더 부르면 소리 없이 눈물만 흐른다. '어머니는 인류가 입술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는 카일 지브란의 말처럼 중산동 김여사는 엄마일 때 세상의 모든 빛을 내게 안겨준다.

이정연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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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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