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더 나은 삶으로의 초대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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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12 08:16  |  수정 2020-10-12 08:21  |  발행일 2020-10-12 제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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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아프면 학교에 오지 않습니다.' 두 달간의 온라인 수업이 끝나고 등교수업이 시작될 즈음, 이 문구가 학교 정문에 걸린 걸 보았을 때 무척 불편했다. '너희가 와서 새로 봄이다. 보고싶었다'는 환영 현수막을 먼저 걸고, 등교지침은 정문 입구 나무 사이로 옮겼다. "약 먹고 어서 학교 가야지." 평생 그렇게 학교에 다녔고 내 아이도 그렇게 학교에 보냈던 우리 세대는, 십여 년 전 유럽 우수학교 탐방 시 아픈 아이를 어떻게 학교에 보내느냐는 말이 무척 놀라웠고 지금에서야 그럴 수 있겠다 싶을 만큼 우리도 조금씩 바뀌었다.

이웃 학교에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이 보도되던 날, 우리 학교도 휴교하지 않느냐는 전화가 불이 나도록 왔고 해당사항이 없다고 하자 보호자 동의 가정학습을 바로 신청하는 가정이 많았다. 며칠 전 1학년 수련활동을 실시했으나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이 코로나 임시생활시설이라는 안내가 되자 수십 명이 수련활동을 접고 가정학습을 신청했다. 등교수업 초창기에는 식사를 꺼리는 학생도 있어서 등교 학생 수는 절반인데도 잔반이 많아 특별 훈화방송도 했다. 등교한 평범한 학생마저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얌전히 앉아 있으니 밥맛이 있을 턱이 없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생수를 사 먹는다는 유럽 이야기가 낯설었다. 학급 뒤편 식수대 자리에는 2리터 주전자에 오찻물 컵 4~5개가 있었다. 이제 개인 생수병을 가지고 칸막이 사이에서 말하지 않고 조용히 식사하고 일렬로 줄줄이 복도를 지나 교실로 들어간다. 친구의 목에 팔을 감고 소리 지르며 장난을 치다가는 난리가 난다. 호흡을 잠시 잘못해 잔기침이라도 하면 일제히 주목한다. 그저 제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야 화장실에 갈 수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한 학교생활인가.

영국의 음악가이며 혁신가인 브라이언 이노는 '지금까지 문화적 대상물 자체에 가치의 근원을 두었지만 문화에 대한 새로운 사고법은 우리가 대상물에 가치를 부여해 그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다시 사물을 가치 있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이러한 사고가 문화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까지 빠르게 바꿔 놓았다. 내게 의미가 있다면 기꺼이 금전과 시간과 청춘을 바치지만 그렇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는다. 교육현장도 변하고 있다. 본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면 잡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거창한 명분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며 살길 원한다. 그래서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중요하고 준비하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부담 적은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사진으로 남겨 '좋아요'를 받으며 스스로 의미를 재구성한다.

그런 만큼 교장·교감의 소통 방법과 언어는 무척 중요하다. 밀레니얼 세대는 권위적인 어투와 강요하는 확신을 끔찍해 한다. 따뜻하고 포용하는 말이 더디지만 그래도 사람을 움직인다. 진정성 있는 교육적 가치를 부여하고 확실한 명분과 의미를 공유해야 한다. 이제 나이가 들수록, 지위가 올라갈수록 불편한 이야기도 일방적 주장도 수용하며 들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남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친절해야 한다. 부드럽지만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길인가.
김희숙 〈대구 새론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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