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일상으로 돌아간 그 다음날

  • 박종문
  • |
  • 입력 2020-10-19 07:57  |  수정 2020-10-19 07:58  |  발행일 2020-10-19 제12면

김언동수정1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전학년 등교가 시작된 날, 슬라예보 지젝의 말을 생각합니다. 그는 책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로 돌아간 그 다음날'이라고 하면서 '대안을 생각하는 게 가능해졌다는 점을 기억하자'고 말합니다. 이제 학교에서 비대면 생활 방식은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이 되었습니다. 화상 회의 시스템과 온라인 출결관리 시스템, 클라우드 기반 공유 문서와 같은 비대면 기술들은 전례 없이 인기를 모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불안과 우려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대면 만남이 주는 섬세한 감각을 모두 구현하지 못하는 비대면 기술이라는 불평을 비롯해서 학생과 교사의 교육 동선을 모두 감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비판, 나아가 녹화된 콘텐츠나 프로그래밍된 커리큘럼의 자동화에서 오는 부작용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교사들의 불안은 자신의 교육 현장이 기록되어 공개된다는 점에서, 학습자들의 불안은 온라인 상태에서 변별력 있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점에서 지속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불안과 우려는 사실 우리 내부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개인 정보 침해, 온라인 수업 중 트롤링(다른 사람들이 화를 낼 만한 행동을 의도적으로 해서 실제로 원하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행위를 말함) 등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폐쇄된 회로로서 강의실, 그 안에서 학생들을 솎아 내기 위해 도입된 정량화된 평가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환기시키는 증거로써 이 사례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급하게 해결하기보다는 우리들이 고수하고 있는 과거의 습관을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고(事故)는 막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사고로부터 더 급진적으로 출발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더 이상 과거처럼 통제되는 존재들이 아니며 전통적인 교실 안에서 사용되던 경쟁 구도 만들기는 더욱 불가능합니다. 인격적 만남이 어려워지니 감정을 유도하기 위한 교사의 다양한 의사소통 테크닉들이 무의미해집니다. 우리는 전통적인 교실 안에서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통제되고 훈련받는 것에 가까웠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통제와 경쟁은 교육의 본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교육의 핵심이 되어 왔습니다. 새로운 기술 앞에서 우리가 두려워했던 이유가 이런 것들 때문은 아닐까요?

오프라인에서 사회적 거리가 유지될 때에도 디지털 공간에서는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디지털 공간은 오프라인과 연결되거나 오프라인을 보조하는 공간이 아니라 중요한 생활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서 위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디지털 공간을 '가상' 공간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오프라인이라는 물리적 한계를 갖던 자유학기제와 고교학점제는 디지털 공간 안에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양한 학습의 설계와 실행이 가능해졌습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변화가 학교를 강타했고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교사의 수업 콘텐츠 제작과 소통이 일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기술에 대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현재는 어떻게 기기를 보급하고 그 기기를 활용하여 수업을 하도록 할 것인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단순히 기존의 활동을 새로운 기술을 결합하여 다른 방식으로 하면 된다는 인식을 넘어, 기술이 삶의 형식이 되어 활동의 맥락을 바꾸고 우리의 존재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인간은 늘 그 시대의 기술과 함께 새로운 삶의 형식을 만들어 왔습니다. 수업 내용이 상수가 되고 학습 시간이 변수가 되어 자기만의 속도대로 공부를 했던 우리 아이들이 모두 돌아온 오늘, 오늘 다음날에 아이들에게 줄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김언동 〈대구 다사고 교사〉

기자 이미지

박종문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