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나훈아와 '자유로운 영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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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1 07:29  |  수정 2020-10-21 07:29  |  발행일 2020-10-21 제26면
추석 안방 달군 최고의 무대
노래와 공연에 임하는 자세
관객 마음 사로잡기에 충분
국민들에 환호 받고 싶다면
나훈아처럼 온 힘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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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20년 전 별세한 어느 대금 명인이 하루는 제자들의 권유에 못 이겨 전남 구례에서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가서 들어선 곳은 방송국이었다. 국악 공연 녹화를 위한 자리임을 그때서야 안 그는 바로 돌아서서 구례로 내려갔다. 그가 평소 싫어하는 것이 음반을 내고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연주는 언제 어떤 환경에서 하느냐에 따라 흥취가 다르고 맛도 달라지는데, 방송국 무대 연주나 음반으로 같은 연주를 반복해 들려주는 것은 참다운 풍류가 아니라는 지론을 가진 분이었다.

지난 추석 연휴(9월30일) 때의 나훈아 공연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를 다시 생각하며 떠올린 일화다. KBS2 TV를 통해 방송된 나훈아 비대면 공연 녹화방송은 '충격적'이라고 표현된 29%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그 여파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필자도 이 방송을 끝까지 다 보았다. 즐거움과 감동 속에 큰 울림과 가르침도 있었다. 2시간30분 동안 29곡을 열창한 다채로운 무대는 시청자들의 눈과 귀, 마음을 사로잡았다. 각자 감동의 이유도 다양했을 것이다.

이번 무대와 그동안의 일화를 통해 그의 노래와 공연에 임하는 자세를 알게 되면서 존경하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그의 삶은 오로지 관객이나 시청자들에게 즐거움과 위로, 희망과 자긍심을 주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최선의 노래와 무대를 선사하기 위해 개인적 안일과 명예나 권력을 멀리하는,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았다.

공연 중 그의 발언을 두고 각자 자신의 틀 속에서 다양한 해석을 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반응들을 접했지만 대부분 소음으로 다가왔다. 그냥 감동을 가슴에 품고 힘을 내며 다시 일상으로 스며든 보통 사람들의 마음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그는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훈장도 거부했다고. 훈장의 무게까지 어떻게 견디겠냐며. 공부도 많이 하고 가슴에 꿈도 가득해야 하는데, 꿈이 고갈된 것 같아 세계를 돌아다녔더니 잠적했다거나 은둔생활한다고 이야기한다는 말도 했다. 이번 공연도 출연료 없이 하겠다고 제안하며 대신 최고의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고,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관철시겼다고 한다. 노래 발표와 공연을 위해 그렇게 힘을 다 소진하는 삶을 살아온 그가 이번에 '다시 태어나면 가수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그의 말이 각별하게 와닿았다.

그가 재벌 총수나 대통령의 초청을 거부했던 것도 이처럼 좋은 노래와 최선의 무대를 위한 '자유로운 영혼'을 잃지 않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2003년 서울 올림픽공원 공연 때는 간섭을 받고는 할 수 없어 당초 평양 공연을 취소하고 서울에서 공연을 하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훈아는 신비주의자라기보다 진정한 풍류를 아는, 오로지 대중가요를 위해 살고 있는 '유행가(流行歌)' 가수가 아닐까 싶다. 그의 무대를 계속 볼 수 있기 바라는 마음이다.

위정자들, 나훈아처럼 큰 환호를 받고 싶은가. 나훈아처럼 살면 될 것이다. 정파적 이익이나 이념, 사욕을 벗어난 '자유로운 영혼'으로 말 없는 국민을 위해 온 에너지를 쏟으면 반응이 달라질 것이다.
김봉규 문화부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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