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응상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모로코 아틀라스 산맥 아이트 벤 하두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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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0-23   |  발행일 2020-10-23 제36면   |  수정 2020-10-23
신들의 이야기가 깃든 산맥…탁 트인 곳에 우뚝 선 성채는 견고하고 몽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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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트벤하두 전경. 아이트벤하두로 진입하는 다리가 보인다.

마라케시의 메디나는 아침부터 분주하다. 실핏줄 같은 좁은 골목 사이로 사람들이 스며든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손수레를 대기하고 있던 호텔 안내원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주차장까지 가는 사이에 벌써 골목은 심장을 향하는 혈류처럼 급박하게 광장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이 혈류가 모여든 제마 엘프나 광장은 '고동치는 심장'이 되어 또다시 힘차게 뛸 것이다. 벽돌처럼 포개져 있던 차들도 어느새 대부분 빠져 나가 주차장도 휑하다. 오늘은 모로코의 자연을 만난다. 마라케시의 심장 소리가 그리워질 때까지 달려볼 작정이다.

마라케시의 메디나 성벽을 뒤로한 채 아스라이 보이는 아틀라스 산맥으로 향했다. 금방 도심의 흔적이 사라져 버렸다. 간간이 보이는 민가 사이로 목동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나 나무 짐을 머리에 인 아낙네의 무심한 표정이 정겹다. 산기슭에 옹기종기 터 잡은 촌락들은 베르베르 원주민 주거지란다. 강인함과 순박한 미소가 함께 어우러진 인상이 우리 촌로와 꼭 닮았다. 한동안의 목가적 풍경이 흘러간 후 이내 아틀라스의 매서운 굽이길이 나타났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에 걸쳐 있는 길이 2천㎞의 아틀라스 산맥은 북쪽으로 지중해에서 남쪽으로 사하라 사막까지 이어져 있다. 우리가 출발한 마라케시에서는 남쪽으로 약 80㎞ 떨어져 있다. 4천167m의 최고봉 투브칼 산을 비롯하여 평균고도가 3천300m에 이르는 하이아틀라스가 중앙에 위치하며, 북쪽의 미들아틀라스, 남쪽의 안티아틀라스 등 세 산맥을 중심으로 작은 산맥들이 이어져 있다.


알제리·튀니지에도 걸친 2천㎞ 산맥
북으로 지중해 닿고 남으로는 사하라
모로코엔 모래바람 막아주는 어머니

군데군데 하얀 눈 박힌 높은 봉우리
巨神 아틀라스의 정수리 투브칼 산
만년설이 내린 개울따라 마을 형성



아틀라스는 원래 신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 산맥에는 신들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아틀라스는 티탄 신족과 제우스를 중심으로 한 올림피아 신들과의 싸움에서 티탄 신족 편을 들었다는 이유로 제우스로부터 형벌을 받아 지구의 서쪽 모서리에서 하늘을 떠받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잠자리 부탁을 거절당한 페르세우스가 아틀라스에게 보기만 하면 곧장 돌로 변해버리는 메두사의 머리를 내보였고, 아틀라스는 그 순간 거대한 바위로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두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틀라스는 하늘을 떠받치는 듯한 높고 웅장한 바위 산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 울퉁불퉁한 산길은 아틀라스의 거친 피부 같기도 하고, 가지런한 능선과 움푹 파인 협곡은 그의 고난을 상징하는 주름살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젖줄 같은 만년설도 이고 있어서 생물을 품어주는 따뜻함도 느껴진다. 아틀라스 신은 한때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벗어날 기회가 있었지만 간교한 프로메테우스에게 속아서 계속 하늘을 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야기인 즉, 프로메테우스가 하늘을 대신 떠받치겠다는 약속을 믿고 신들의 정원에서 황금 사과 3개를 따주었지만 사과를 받아든 프로메테우스가 머리가 아프니 잠깐만 대신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 달라는 부탁에 덜컥 다시 하늘을 받았다는 것이다. 인간을 꼭 닮은 신들의 이야기에 절로 쓴웃음이 나왔다. 인지상정, 아틀라스의 우둔함에 더욱 정이 가며 묘한 애정이 생기기도 한다.

모로코 사람들에게도 이 산맥은 사하라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아주는 어머니 같은 존재다. 실제로 이 산맥 덕분에 산맥 북쪽의 대서양과 지중해 연안 도시들이 발전할 수 있었다. 최근 사하라 사막투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하이아틀라스와 미들아틀라스 사이에 도로 건설공사가 한참이었다. 파헤쳐진 산길은 차를 엉금엉금 기게 만들었고, 그나마 있는 도로도 대부분 비포장이었다. 더구나 아찔한 절벽을 끼고 급회전하는 구간이 많아 운전에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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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산맥의 협곡. 곳곳에 베르베르족의 주거지가 보인다.

아찔한 굽이를 몇 차례 돌자 군데군데 하얀 눈이 박힌 높은 봉우리가 나타났다. 아틀라스 산맥의 최고봉인 투브칼 산이었다. 그럼 저 투브칼 꼭대기가 아틀라스의 정수리가 아닌가. 희끗희끗 쌓여 있는 만년설을 보니 이곳이 아프리카 대륙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산 아래 계곡물도 저것이 녹은 것이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베르베르 족의 크고 작은 마을들은 투브칼의 만년설이 내려주는 개울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다. 저 만년설은 이곳에 사는 베르베르인의 젖줄이었다.

아틀라스의 허리쯤 되어 보이는 곳에 가만히 협곡을 내려다보는 휴게소를 만났다. 큰 버스는 정차하지 않는 작은 휴게소다. 사람보다 차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시동을 껐다. 모로코 커피는 '누스누스'라고 불렀다. '누스'는 '반'이라는 뜻으로, 커피와 유유를 반씩 섞는단다. 부드러운 맛이 카페라테 같았다. 사람도 자동차도 다시 여유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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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라스 산간도로에 펼쳐진 기념품 난전.

잠깐을 더 달리니 도롯가에 차들이 줄지어 정차해 있었다. 도로 안전블록 위에 기념품을 늘어놓고 파는 난전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도 그 틈에 섞여 기념품을 골랐다. 계곡 아래로 베르베르족의 전통 가옥도 있었다. 이 산간 마을 사람들이 유목 대신 기념품 장사에 나선 것 같았다. 아틀라스를 넘는 관광객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리라.


베르베르족의 '카스바' 아이트 벤 하두
마라케시와 사하라 잇는 카라반 거점
198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교각 없던 때 강 역시 훌륭한 방어선
영화·드라마 촬영장소로 이름 떨쳐
성벽안 가옥, 기념품가게·카페 변신



아틀라스에서의 산길 운전이 익숙해질 무렵, 내리막을 만났다. 그리고 금세 다음 목적지 아이트 벤 하두(Ait Benhaddou)에 도착했다. 아이트 벤 하두는 베르베르족의 카스바다. '카스바'는 아랍어로 성채라는 뜻인데, 주로 술탄이 기거하는 성과 그 일대를 지칭한다. 아이트 벤 하두는 건조한 암석사막 위에 붉은 흙벽돌로 세운 성채 마을로, 사방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요새이기도 했다. 서부 모로코 건축의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곳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마을은 11세기에 사막의 대상(隊商) 길, 즉 카라반 루트 위에 건설되었다. 대상들은 보통 낙타에 소금을 싣고 남쪽 사하라 사막을 건너 마라케시로 갔다가 다시 상아나 금, 노예 등을 싣고 돌아오곤 했다. 아이트 벤 하두는 마라케시와 사하라를 잇는 중간 거점으로, 상인들은 이곳에서 며칠 쉬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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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트 벤 하두의 성채 모습

강을 두르고 있는 아이트 벤 하두는 현재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다리가 없었던 과거에는 이 강 역시 훌륭한 방어선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작은 마을을 지나 성채로 가는 다리에 올랐다. 이 마을은 성채 마을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생긴 마을이다. 1977년경에 관리 소홀로 진흙으로 만든 건물들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나, 모로코 정부가 복구공사를 진행해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다. 당시 주민들 대부분이 이주를 했고, 지금은 네 가구만 남았다고 한다.

다리에서 바라보는 아이트 벤 하두의 성채는 마치 프랑스의 몽생미셸 섬처럼 견고하고 몽환적이었다. 아마도 탁 트인 공간에 우뚝 솟은 성채가 주는 웅장함과 생경함 때문일 것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이곳은 할리우드 감독들의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았다.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를 필두로 <나자렛 예수>(1977), <나일의 대모험>(1985), <007 리빙 데이라이트>(1987),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쿤둔>(1997), <미이라>(1999), <글래디에이터>(2000), <알렉산더>(2004), <킹덤 오브 헤븐>(2005) 등의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최근에는 미국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촬영하기도 했다.

즐겨 부르던 '카스바의 여인'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카스바'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불렀던 이 노래가 새삼스레 신선하게 느껴졌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다리를 건넜다. 성채 입구로 들어가는 좁은 골목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섰고, 담벼락은 가게에서 디스플레이 해놓은 형형색색의 카펫이나 스카프·젤라바 등으로 뒤덮여 여행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성벽 안 개인 가옥 역시 지금은 기념품 가게나 카페로 변신하여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마을 전체를 둘러싼 방어벽 네 모퉁이에는 망루가 우뚝 솟아 있다. 방어벽 안쪽에는 카스바라고 불리는 궁전과 성채를 겸한 대저택, 일반인들의 주택, 다락과 지하저장고, 회당, 학교, 모스크, 시장, 마구간 등이 예전 모습을 보존하고 있었다. 건물의 문은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내부는 창문이 거의 없었다. 벽에 뚫린 작은 구멍들을 통해 내부를 환기시키고, 좁고 긴 복도로 빛이 들어오는 구조다. 1층은 마구간, 2층은 식량창고로 쓰이며 3층부터 주거 공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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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응상 (대구대 교수)

이런 건물들이 얼기설기 좁은 골목길을 만들고 있었다. 허물어져 내린 흙벽은 말없이 세월의 깊이를 웅변하고 있었고, 돌을 깎아 만든 반듯한 거리만이 전성기의 화려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굽이를 돌아 높아질수록 하늘은 넓어졌다. 20분쯤 오르니 마침내 성채 정상에 도달했고 사방이 발 아래 굽어보였다. 시선이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것이 왜 이곳이 요새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노을은 환상적일 것 같았다. 그러나 목적지가 있는 나그네가 한가하게 노을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카스바 너머로 스러지는 옅은 햇살이 마음을 급하게 만들었다. 다데스 협곡으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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