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한복 비단에 꽃수 놓으시던 어머니의 마음 '금상첨화'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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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11-20   |  발행일 2020-11-20 제38면   |  수정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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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후 80년대까지 유행 한복수
장미문·모란문·연꽃문 전통문양
손길따라 현대적 미감으로 구성
저고리·치마 색상과 매치한 꽃수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같은 의복


겨울동굴의 입구는 얼마나 찬란한가? 깊고 어두운 동굴 같은 겨울의 동면을 위하여 가을을 이리도 곱게 준비했다. 추운 겨울 서럽지 말라고 곳곳에 수를 놓고 있다.

건물의 입구마다 지치도록 샛노란 은행나무는 대낮에도 촛불처럼 환하다. 마음까지 환하고 따뜻해진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잊지 말아야지, 생각하며 서 있는데.

"어젯밤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춥다고 하셔서 옷을 보내야 할 것 같아"라고 동생이 말했다. "그래 옷을 챙겨 보자"하고 말없이 옷을 챙긴다. 옷가지 사이로 어머니의 생이 또 한 번 우리 앞에 너풀거리며 펼쳐진다. 곱게 보내드릴 옷 한 가지가 제대로 없다. 어머니는 무슨 옷을 입었을까 생각하니 너무 오래 병원복을 입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들 한 명 한 명 배 아파 낳고 또 가슴 아파하며 키우며 보냈을 어머니의 시간이 가슴에 딱딱하게 얹힌다. 먼 곳을 떠난 이에게 옷을 보내주는 방법은 옷을 태우는 일이라고 했다. 4차원의 세상에서 사라진 물체가 다른 차원으로 보내지는 일은 종종 영화에서나 보았지만 이렇게 태움으로써 어머니께 보낼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생전에 변변한 옷 한 벌 지어드리지 못한 죄를 이렇게라도 갚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1960년대 흑백 사진첩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처녀시절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만 기억하며 가시라고 그때의 옷을 지어드리고 싶었다. 그 사진에는 몽실몽실 퍼머 머리에 흰색 면 자수 저고리와 짧은 치마를 입고 양산을 쓰고 계셨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한복 원단들을 펼쳐 보았다. 하지만 이제는 한복에 수를 많이 놓지 않는다. 이 수들은 대개 광복 이후부터 80년대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한복 자수의 변화는 손(手) 자수, 기계 자수, 컴퓨터 자수 등 다양한 기법으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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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한복디자이너
많은 한복디자이너의 손에 의해 전통적인 자수문양들이 현대적인 미감으로 새롭게 구성되어 유통되었다.

그때 한복수를 놓던 장인들의 나이는 지금 대개 90세에 이르렀다. 전통적인 장미문, 모란문, 연꽃문 등은 귀하게 수놓아졌으며 한복 디자이너의 개인적인 미감에 따라 갈대, 코스모스, 모란, 튤립, 맨드라미 등 다양한 소재들로 변화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대구에서는 시화인 목련꽃 자수가 유행하였다. 대구의 박영희(1949년생) 한복디자이너에 의해 채색으로 그려진 목련꽃은 각종 한복대회에 나가 모델들이 대상을 받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작년에 30년 가까이 해오던 직업을 접게 된 소회를 말하면서 그녀는 한복문화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대구에서 수를 놓아 포항, 울산뿐 아니라 서울로 올라갔던 일을 회고하는 모습에서는 그때의 열정이 다시금 느껴졌다.

점차 사라지는 한복문화 안타까움
한복역사까지 뺏는 中의 동북공정
남과북 유네스코 공동등재 힘써야


한편 부산에서는 윤종련(80) 한복디자이너에 의해 자수 한복이 선도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윤종련 한복디자이너는 기모노수를 수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부산의 한복 수에는 원단의 색상과 자수의 색상이 은은하고 섬세한 특징이 있다. 대구의 한복 수는 색채의 대비감이 강렬하고 수가 활달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부산과 대구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같은 본(本)의 연꽃수가 나왔는데 그 표현에 있어서는 부산과 대구의 자수장이 각자의 개성대로 해석한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80년대에는 깨끼바느질의 노방한복이 유행하였는데 점선수로 무늬의 안쪽을 메우는 기법은 정교하고 아름답다. 저고리의 가선에 연속무늬를 배치하고, 치마의 둘레 큰 꽃수를 매치한 한 필의 원단을 펼치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서 금상첨화(錦上添花)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규표일반(窺豹一斑)이라는 말이 있다. 부분적인 관찰만으로 전체를 추측한다는 의미의 말로 쓰이는데, 이처럼 부산과 대구에서 나온 한복자수만으로 한국의 한복자수의 전체 양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빠르게 새로운 유행으로 사라져 가는 한복자수들을 작은 것이라도 모아서 한복 역사의 한 부분을 연결해 가는 일이 한복의 진흥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만 가득하다.

지금 중국에서 한복의 역사를 명대의 복식으로 말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켜가는 일에 서두르지 않으면 한복도 동북공정의 맥락 속으로 빠져들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남과 북이 한복만이라도 마음을 모아 유네스코에 공동으로 등재하는 일에는 모두가 마음을 모아야 할 때다.

어머니의 낡은 옷 사이 내려앉은 먼지가 폴싹일 때마다 자물쇠로 채워졌던 기억의 자락들이 먼지를 털고 나온다.

"내일 모레 시집가야 하는 네가 이렇게 이불을 깁고 있어서 되겠니? 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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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수 관장
이야기는 끝이 없었지만 바느질을 시작한 지점과 끝이 보이지 않게 매듭들을 잘 갈무리해야 한다고 하셨던 것만 기억된다. 한가로이 물을 가르며 떠도는 원앙처럼 다정하게 살기를 기원하며 원앙금침을 해주셨다. 하얀 비단홑청의 매끄러움과 붉은 비단의 화려함이 한방 가득했고 나는 채 바느질이 되지 않은 이불 밑에 몸을 묻고 있었던 것 같다. 가끔 긴바늘에 찔리운 듯 "아야" 하는 낮은 탄식이 들렸다. 마음이 허허로운 어머니의 바늘이 이편과 저편의 허공에서 길을 잃고 그만 손가락을 찌르고 만 것이다. 딸을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이 먼저 불안한 먼 길을 떠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름 하늘의 뭉게구름 같던 몽실몽실한 솜들을 가을하늘 새털구름처럼 얇게 펼쳐서 이불을 꿰매면 부드러운 공기를 품은 솜들의 온기는 봄날 아지랑이 같다.

따뜻한 이불의 온기 아래에서 어머니의 그 떨리는 손끝을 다시는 느낄 수 없지만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몸의 온기와 마음의 온기를 잘 유지하고 살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마음은 잊히지 않는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연꽃수를 놓은 연둣빛 치마와 흰 저고리에 붉은 고름을 달아 드려야겠다. 순결한 마음을 비단처럼 지녔으며 오로지 자식을 향한 모성의 붉은 신성(神聖)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의 마음을 기리는 옷을 지어 드려야겠다. 어머니는 비단에 아름다운 꽃수를 놓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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