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숙의 실과 바늘 이야기] 바느질에 묻어나는 추억

  • 유선태
  • |
  • 입력 2021-01-15   |  발행일 2021-01-15 제38면   |  수정 2021-01-15
꽃수마다 피어나는 아름다웠던 시간들
노년층 인지 저하, 사회적 비용 증가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프로그램 필요
박물관이 품고있는 삶과 유물 이야기
어르신 심리·육체적 상황 맞춘 교육
한땀한땀 실과 함께 엮는 따뜻한 기억
얼굴 표정속 살아나는 행복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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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틀액자 작업

오후 2시쯤 점심을 먹고 부지런히 길을 나서서 도착한 곳은 어르신들이 계시는 주간보호센터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손 소독은 물론이고 모든 재료에도 소독제가 뿌려졌다. 마스크는 당연하다. 오늘은 조금 일찍 도착했는가보다. 아직 간식시간이 채 끝나지 않았다. 잠시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에게도 간식을 내어오신다. 금방 삶아서 아직 모락모락 김이 난다. 포슬포슬한 감자의 표면이 눈꽃송이처럼 피어올랐다. 고소한 미숫가루와 함께 내어놓은 간식을 마주하며 공간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처음 건물을 들어섰을 때 어두운 긴 복도를 따라 들어오는 길이 다소 폐쇄적인 느낌이 들었다. 엄격하게 관리된 출입구 때문에 무언가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모두 말없이 간식을 드시고 계셨다. 묵직한 공기의 느낌이 발밑을 스치고 지나간다.

지난 1년은 코로나19의 재앙이 박물관의 모든 시스템에도 영향을 주었다. 늘 학교의 학생과 유치원생의 단체 교육으로 생기를 유지하던 박물관의 공간은 무덤처럼 고요해졌다. 한국박물관협회에서 지원해주던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매년 1천500명 정도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는데 그 모든 사업에 어려움이 생겼다. 전국의 많은 박물관이 제때에 사업을 마무리할 수 없어서 사업비를 반납하게 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이 사업은 인근의 학교나 유치원 등의 기관과 연계해 학생들에게 전통문화교육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지역의 규모가 작은 사립박물관이어도 '길 위의 인문학 사업'으로 박물관을 다녀간 인원이 10년이 지나니 2만명에 이른다. 그렇게 만나지 않았다면 이웃에 있는 박물관이라고 하더라도 그저 스쳐 지나는 건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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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완성된 수틀액자

그런 역할을 담당했던 정책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비대면 사회에서 어떻게 문화를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인지가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하나의 정책이 완결된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연구 기간이 3년은 걸리는 것 같다. 박물관이 지역주민들의 삶과 더욱 밀착하기 위해 생애주기별로 다각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래서 노년층의 문화예술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시작한지가 3년째다. 특히 일반 성인의 취미 활동 영역을 벗어나서 돌봄이 필요한 노년층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즉 인지능력이 저하되는 치매라는 현상을 문화예술로 예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노년의 인지저하가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2050년에는 3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인지저하증(치매)의 관리를 위한 전문 프로그램 연구와 이에 따르는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지향해야 한다. 또한 노인 인구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가치를 다시 사회의 생산적 가치로 환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경북도가 지원하고 있는 사업인 '이야기 할머니 사업'은 전통스토리 계승 및 활용이라는 측면과 노년층 일자리 사업으로 매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정책이다. 유치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이 사업은 할머니가 없는 가정의 아이들이 할머니라는 세대에 대한 친숙함을 느끼게 해준다. 그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 내포된 전통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전달해주며 여성인력들에게 양질의 문화일자리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한다. 성공적인 이러한 사례들은 확장해서 적용할 필요가 있다. 전국의 많은 박물관은 그 박물관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사람의 삶을 통해 만들어졌고, 그 유물이 사람에 의해 사용되었기에 어떤 유물이든 그 속에 숨겨진 무형의 이야기가 더 큰 무게로 존재한다. 그러한 것을 발굴하고 전달하는 수용체계를 새롭게 연구해 비대면의 교육현실에 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과 정책도 연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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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색채북 작업
종이집
4 종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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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르신들이 수업하는 장면

이러한 고민 끝에 작년에 '박물관과 함께하는 바느질 이야기'로 길 위의 인문학 기획공모사업에 지원했다. 전국적으로 10곳이 선정된 기획공모사업이었다. 그래서 시작된 1년간의 여정은 의료전문가, 뇌 과학 전문가, 치매안심센터와 협력해 교육과정에 대해 연구를 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박물관의 교육과정들은 노년층의 심리적 특성과 육체적 상황에 맞게 재구성됐다. 그다음은 현장이다. 이렇게 연구된 과정들이 현장에서 어르신들과 만났을 때 어떤 결과물을 낼 수 있는지에 대한 기대와 의문이 동시에 있기 때문이다. 늘 어르신들을 옆에서 돌보고 계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의견도 중요하다. 그분들은 할머니들의 표정과 변화해 가는 심리적인 상황을 더 잘 읽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업이 진행됐다. 바느질이라고 하는 것이 가지고 있는 보편성 때문에 기억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매우 수월했다. 그분들의 삶에서 바느질을 해보신 분이든 해보지 않았던 분이든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실내에 차츰 익숙해질 무렵 어르신들의 표정이 한 분 한 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마스크 쓰고 있는 꽉 다문 입술이 느껴진다. 누구에게든 삶이 그저 수월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이만큼 오는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꼭 다문 입술 너머에 머물고 있을까?

말줄임표 같은 바늘땀들을 이어나가며 어쩌면 영원히 침묵하고 갈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들은 한 땀의 바느질 속에 꼭꼭 묻어두고 갈 것이다. 강사 선생님들의 밝은 몸짓들이 전등 스위치를 올리듯 어르신들의 얼굴에 표정이 살아난다. 환하다. 행복했던 한때의 순간들이 얼굴 위로 겹친다. 미소 속에는 어릴 적 간직했던 순수함과 반짝이는 호기심이 엿보인다. "오늘은 멋진 집을 만들어 볼 거예요." 이야기는 두꺼비집의 동요로부터 어르신들이 그동안 살아오신 집과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삶의 집으로 이동한다. 많은 이야기가 마스크 너머로 소곤소곤 흘러나온다.

강사 선생님이 어르신 한 분을 향해 이야기를 한다. "어르신 이제 그만 붙이셔도 돼요. 충분히 지붕 위에 붙이셨네요. 예쁘네요." 하지만 그분은 천을 오려서 지붕을 덮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지붕은 많이 붙여야 해, 비가 새면 안 되거든…. 예전에는 비가 참 많이도 왔지, 비만 오면 나는 지붕위에 올라가서 비새는 곳을 찾아 비닐 장판을 덮어두고 했지. 그런데 어디 그게 쉽게 되나…. 부인한테 미안했지." 잠시 말을 잊은 선생님이 다시 묻는다. "지금은 어떠세요." "아 지금은 괜찮지, 비가 안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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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들의 마음이 먼저 비에 젖는다. 그랬다. 지붕에 비가 새서 힘들었던 시간들과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애 쓰셨던 순간들이 아직도 마음 한 쪽에 갚지 못한 빚처럼 남아 있으신 것이었다. "오늘 멋진 집을 한 채 가지고 가서 할머니에게 보여 주셔요." 그 말에 아이처럼 웃으신다. 아마도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와 함께 옛 기억들을 꺼내서 지금 따뜻한 이 순간들과 다시 바느질을 곱게 하실 것이다.

오늘 가슴속에 혼자 숨겨 놓았던 이야기를 꺼내며 힘들었던 그 순간들을 어루만지고 계셨을 것이다. 누구에게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던, 위로받지 못했던 그 비 오던 날의 지붕 위의 처연한 시간들을 위로했을 것이다. 사랑합니다.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의 어머니. 오늘 선생님들의 어깨 위에도 노을 빛처럼 고운 평화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함께하는 일의 보석 같은 순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경숙 박물관 수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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