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op.47 '크로이처'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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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2   |  발행일 2021-01-22 제37면   |  수정 2021-01-22
새로운 활의 탄생…바이올린, 피아노와 어깨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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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활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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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1797년부터 1812년까지 10곡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작곡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전통을 이은 고전음악에서 출발해 낭만주의의 문을 열었던 베토벤의 확장성은 9곡의 교향곡, 32곡의 피아노 소나타와 함께 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특히 바이올린 소나타의 중요한 의미는 바이올린의 역할을 확대해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관계를 동등하게 배치했다는 점에 있는데 이는 바이올린이 두 악기 간의 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음악의 주제를 두 악기가 번갈아가며 연주할 때 바이올린이 더 많은 부분에 개입하게 되면 두 악기에 의한 주제는 단순한 반복을 넘어서야 한다. 주제는 다른 조성으로 옮겨가면서 변화를 보여주고 선율 역시 다양하게 변화해 음악은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담게 되는 것이다.

베토벤이 바이올린이란 악기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작곡가로서의 실험정신'을 자극한 것은 당시의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맞이한 혁신적인 변화, 즉 '전혀 새로운 유형의 활의 개발'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8세기 말 파리에서 투르트 형제가 새로운 활(이것은 현재까지 모든 현악기 활의 기본 모델로 사용되고 있다)을 개발했다. 기존의 활대는 직선이거나 밖으로 휘어진 모양을 하고 있어 활의 중간 부분으로만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었기 때문에 한 음을 길게 지속하거나 여러 음들을 한 번의 활 긋기로 연결하는 레가토가 힘들었다. 하지만 투르트의 활은 활대가 현이 있는 부분에 가깝게 굽어져 활의 모든 부분으로 고른 소리를 낼 수 있었고 레가토도 훨씬 쉬워졌다. 이것은 프레이징이 길어지는 효과를 가져왔고 서정적인 음악을 표현하는데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또 이 새로운 활은 탄성(elasticity)이 강해서 활로 현을 빠르게 혹은 짧고 강하게 누르는 식의 연주 등 새로운 기법들을 가능하게 했고 바이올린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적 효과는 훨씬 다양해졌다.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연주자들은 크로이처, 바이요, 로데 등의 바이올리니스트들로 모두 비오티의 전통을 이어 프랑스 바이올린 학파를 구성한 연주자이자 교육자였다. 그들은 파리음악원의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바이올린 테크닉 연구서와 악보를 출판했는데 투르트의 새로운 활의 장점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바이올린 연주 기법을 고안하는 등 근대 바이올린 연주와 교습법의 발전에 기여했다. 베토벤은 이들과 친분이 있었으며 바이올린 작품을 쓸 때 이들이 작곡한 바이올린 음악을 참고했고 특히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크로이처가 작곡한 '그랜드 소나타'와 많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베토벤은 이 소나타에 '거의 협주곡처럼, 매우 협주곡풍으로 쓰여진 피아노와 바이올린 오블리가토를 위한 소나타'라는 부제를 붙였다. 독주 악기와 오케스트라의 대립 혹은 경합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음악을 협주곡이라고 하는데, 이 곡에 '협주곡풍으로 쓰여진'이라는 부제를 붙였다는 것은 바이올린을 더 이상 피아노에 종속된 악기가 아닌 피아노의 음악적 파트너와 같은 위치로 격상시킨 작곡가의 새로운 실험이란 것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이러한 베토벤의 시도는 투르트 형제의 새로운 활, 프랑스 바이올린 학파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열린 '바이올린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음악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의 피아니스트이자 작가인 찰스 로젠은 자신의 저서 'The Classic Style'(1972)에서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의 1악장은 그 명확성·장엄함과 매우 극적이라는 측면에서 이전의 베토벤 작품들의 1악장과는 전혀 다른 음악을 보여주고 있으며 2악장의 서정적인 선율이 가진 우아함과 4개의 변주를 통해 보인 변화무쌍한 상상력에 대해 언급하며 베토벤의 음악이 이전의 고전 작곡가들과 다른 그만의 독자성을 갖고 있음을 설명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의 위대함은 분명 작곡가의 역량과 실험 정신, 그의 예술성에 있다. 하지만 투르트 형제의 호기심과 노력, 그 결과물이 열어준 새로운 가능성과 이 새로운 도구를 관찰하고 연구했던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행보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바이올린이 존재했을까?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이 음악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상상이나 했을까? 모든 출발이 대단한 결과에 대한 확신일 수 없듯 바이올린 음악의 위대한 발전 역시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호기심과 실험'에서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예술이 그렇듯이 말이다.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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