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샐러리맨의 비애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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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27 08:23  |  수정 2021-01-27 08:24  |  발행일 2021-01-27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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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극작가〉

샐러리맨. 우리말로 옮기면 그 의미가 조금 더 직설적으로 와닿는다. '봉급생활자'.

프리랜서에 가까운 필자는 몇 걸음 떨어져 있지만, 친구들 대부분은 어느덧 샐러리맨이 되어 있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는 박완서 작가의 소설 속 문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샐러리맨이 된 친구 다수는 이제 아버지가 되어 있다. 필자 나이 정도의 남자 어른은 아버지인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는 흔하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자녀'와 '가족'은 어떤 의미일까. 샐러리맨에게 말이다.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는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작품을 발표했다. 미국 연극 최대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이 작품의 주 내용은 이러하다. 30년간 오직 세일즈맨으로 충실히 살아온 주인공 윌리 로먼은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다. 가정 안에서는 믿었던 두 아들의 방황으로 갈등을 빚는다. 그의 삶은 점점 구석으로 내몰린다. 결국 그는 가족에게 보험금을 남겨 주기 위해 자살로 삶을 마무리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자본주의의 냉혹함과 동시에 나약한 한 개인, 즉 세일즈맨의 좌절과 허무를 극적으로 그려냈다.

다시 박완서 작가의 소설 속 문장을 떠올려보자. '세월은 유수와 같다.' 하지만 유수와 같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샐러리맨은 여전히 가엽다. 그들은 정해진 유통기한만큼 알뜰하게 소비되고 버려질 것이다. 가정 안에서도 때때로 어떤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윌리 로먼처럼 말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이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오늘날에도 수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여전히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 린다는 말했다.

"윌리 로먼은 엄청나게 돈을 번 적도 없어. 신문에 이름이 실린 적도 없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품을 가진 것도 아니야. … (중략) … 그러나 관심을 기울여 주어야 해. 늙은 개처럼 무덤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돼. 이런 사람에게도 관심이, 관심이 필요하다고."

코로나 19로 어려워진 여건 때문인지 연초부터 심심찮게 '정리해고' 기사를 접하게 된다. 접하게 된들 글쟁이인 필자가 무엇을 할 수 있으리. 그저 지면을 빌려 오늘도 고군분투 중인 '샐러리맨'에게 박수를 보낼 뿐. 그들 모두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라여 줄 뿐.

김민수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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