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승리호' 송중기 "한국 첫 우주영화에 매력…넷플릭스 세계 1위 눈물 날 정도로 좋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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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19   |  발행일 2021-02-19 제39면   |  수정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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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2년 환경오염으로 지구는 병들고 우주 위성궤도에 인류의 새로운 보금자리인 UTS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곳은 선택된 5%만이 거주할 수 있다. 대다수 사람들은 황폐화된 지구에서 여전히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위성궤도에서는 넘쳐나는 우주 쓰레기를 주워 돈을 버는 청소부들이 나름의 생존방식을 꾀하며 살아간다. 한국 국적의 우주 쓰레기 청소선 승리호도 그중 하나다. 지난 5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승리호'는 장대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다. 독창적인 해석과 시선이 돋보인 '늑대소년'(2012)에 이어 송중기는 또 한 번 흥미롭게 구축된 '조성희 월드'의 초대에 기꺼이 화답했다. '최초'라는 수식이 본능처럼 그를 자극했고 신뢰가 쌓인 감독과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승리호'에서 송중기는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 달려드는 승리호의 조종사 태호를 연기했다. 하루하루 밥벌이를 걱정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궁핍함이 그를 설명하지만 내면의 아픔을 지닌 인물이다. 이번에도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역할보다 위험이 따르더라도 새롭고 재미난 모험에 승부수를 던졌다. 그리고 결과물이 전 세계에 공개된 지금, 그들의 호의적인 반응에서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늑대소년' 때부터 감독이 '승리호' 얘기
위험이 따르더라도 새로운 모험에 승부수
우주선 새겨진 태극기·한글 이름에 소름

돈에 집착 조종사 태호는 기회·현실주의자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부성애 연기 고민
인성 좋은 베테랑 배우들과 호흡해 든든

 한국 스타일 내부 공간 자연스럽게 몰입
우리말로 대사하는 우주SF 장르에 뭉클


▶'승리호'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자마자 인기 영화 세계 1위에 올랐는데 기분이 어떤가.

"우리 영화 얘기를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얼떨떨하다. 기사나 댓글을 보면 좋다는 평가와 반응이 많은데 솔직히 피부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외국에 계신 한 관계자가 보낸 피드백을 보고 제대로 실감했다. '모든 영화는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갖게 마련인데 '승리호'는 그런 생각을 다 잊을 만큼 박수를 치면서 봤다'는 평이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기분이 좋았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늑대소년' '아스달 연대기' 그리고 '승리호'까지 모두 최초라는 수식이 붙어 있는 판타지 영화들이다. 은근히 이런 장르의 도전을 즐기는 것 같다.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은 욕구가 굉장히 큰 편이다. '늑대소년'을 할 때도 늑대소년을 소재로 한 판타지 영화에 대한 부담과 기대가 좋은 긴장감과 흥분을 일으켰고, 사극은 많지만 고대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아스달 연대기'도 반가웠다. '승리호' 역시 한국 최초의 우주영화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보면 조성희 감독님도 은근히 그런 도전을 즐기는 것 같다. 토속적이지만 개성 있고 모험적인 부분이 나와 비슷하다."

▶조성희 감독으로부터 '늑대소년' 때부터 '승리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건 아니었고 지금과는 다른 버전의 '승리호' 얘기를 들려주셨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굉장히 도전적이고 자신감이 많은 분이라고 느꼈다. 그때만 해도 조 감독님은 '늑대소년'으로 상업영화에 데뷔한 30대 초반의 신인감독이었다. 말수도 별로 없고 쑥스러움도 많이 타는 분이라 솔직히 '승리호' 같은 기획을 하고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한편으론 되게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도 했다. 개인적으로 '늑대소년' 때의 기억이 좋았는데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신 것 같다. 감독님, 나, (박)보영씨 모두 신인 때라 뭔가를 함께 시작한 동지애 같은 느낌이었고, 그만큼 서로에게 많이 의지했다. 그런 신뢰가 있다 보니 '늑대소년' 때보다 소통이 잘 됐고 작업도 훨씬 편했다."

▶'승리호'는 극장 개봉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작품이라 극장에서 봐야 온전한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승리호'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후 지금까지 네 번을 봤다. 집에서는 TV로, 드라마 현장에선 아이패드로 봤는데 별다른 아쉬움은 느끼지 못했다. 성격상 상황에 맞게 즐기고, 발생하지 않은 일을 굳이 가정하거나 넘겨짚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없이 어디서든 바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태호의 부성애 스토리가 중요한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태호의 감정엔 어떻게 접근하려고 했나.

"태호는 승리호에서 우주선 조종을 맡고 있고 조종 실력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인물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가 돈이라고 생각하는 기회주의자이자 현실주의자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멋부리지 말자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밝은 면도 있지만 안에는 엄청난 슬픔을 가진 캐릭터여서 두 가지를 잘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순이에겐 다정한 아빠, 꽃님(박예린)에겐 차가운 아저씨로서 뭔가 콘트라스트를 줘야 했다. 관건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부성애 연기다.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은 됐다. 자녀를 가져본 적이 없고 실제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어서 상상만으로 연기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일단 아역 배우들과 호흡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실제 생활에서도 그들과 진심이 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카들이 있어서 간접적으로 상상을 해본 부분도 있지만 가급적 그들의 시선으로 보려 했고, 현장에선 실제로 존재하는 아기 소품들이 큰 도움이 됐다."

▶승리호에 함께 탑승한 김태리(장 선장), 진선규(타이거 박), 유해진(업동이)과의 연기호흡은 어땠나.

"기본적으로 (유)해진 형과 (진)선규 형, 그리고 태리씨 모두 워낙 베테랑이고 인성도 너무 좋은 분들이라 든든했다. '마음대로 해. 내가 다 받아줄 게'라는 느낌이랄까. 어떤 실수가 있어도 메워줄 것 같은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강했고, 각자의 좋은 욕심과 배려심의 밸런스가 잘 맞았던 현장이었다. 그래서 '넷이 너무 친해보여서 보기 좋다'는 말이 가장 듣기 좋았다."

▶'승리호'는 가족에 관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당신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세상에서 최고 중요한 가치다. 그래서 다른 장르보다 가족영화를 더 좋아하고 끌린다. 내가 조성희 감독님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감독님의 모든 작품에 늘 가족 코드가 깊이 자리해 있어서다."

▶CG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영화라 많이 낯설고 생소했을 것 같은데, 가장 힘들었던 건 뭐였나.

"사방이 초록색 천으로 가려져 있는 곳에서 혼자 연기하는 게 힘들었다. 모든 배우들이 똑같이 느끼는 감정일 텐데 그냥 막막했다. CG로 처리되는 나노봇 얘기를 들었을 때도 모두 '나노봇이 뭐지?'했다. 텍스트로만 접하다보니 상상만으로 연기를 펼쳐야 하는 장면이 많았고, 바로 이어지는 컷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연결이 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감독님이 10년 넘게 준비해온 작품이라 감독님의 머릿속엔 이미 구체적 그림이 다 그려져 있었다. 이를 토대로 준비한 방대한 자료들과 빠른 피드백 덕분에 바로바로 이해를 하면서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런 작업 하나하나가 매우 흥미로웠다."

▶레퍼런스로 참고한 영화가 있었나.

"우주영화를 참고한 건 없다. 워낙 결이 다르기도 하고 우리 영화만의 독특한 부분이 있어서 오히려 방해만 될 것 같았다. 다만 영화 '디스트릭트9'은 이미지를 떠올리기 위해서 그리고 기술적으로 참고했다. 그리고 '승리호'와는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정서적으로 캐릭터를 구하고 막힐 때마다 보는 영화가 있다. 브래드 피트가 신인 때 찍은 '가을의 전설'인데 지금까지 50번 넘게 본 것 같다. 가족 코드와 관련해선 항상 보게 되는 영화다."

▶평소 생각하는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우주선 세트 조종석에 앉았을 때 들었던 느낌도 남달랐을 것 같다.

"세트에 처음 들어섰을 때 애니메이션 같다는 느낌이었다. 우주영화에서 그동안 봐왔던 비주얼과 달리 유니크한 면도 좋았다. 미술팀·소품팀 등 모든 스태프가 영화의 콘셉트에 딱 맞게 아기자기하고 정교하면서도 예쁘게 한국적인 우주선 내부를 잘 구현해 놓았다. 덕분에 '승리호'가 어떤 결의 영화일지 감이 잡히더라. 우주의 이미지는 사람마다 각기 다를 텐데 나는 겁이 좀 있는 편이라 신비하다는 생각보다는 왠지 무섭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세트를 보고 나서 우주가 되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설정 자체도 투박하면서 인간미 넘치는 친숙함을 지향하기 때문에 공간에 대한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었다."

▶기존에 우리가 봐온 '미국이 세계를 구한다'는 할리우드 SF기조에서 벗어나 한국인이 리드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함께 세계를 구한다는 설정이다. 그 변화에서 오는 쾌감도 있을 것 같다.

"한국영화 중에서는 우주를 무대로 한 작품이 거의 없었는데 아마도 비주얼을 구현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승리호'는 단지 우주를 소재의 일부로 사용한 것을 넘어 우주 공간을 누비고 다니는 본격 우주 SF영화다. 하지만 화려하고 날렵한 우주선이 아닌, 고철덩어리에 가까운 청소선에 한글로 투박하게 '승리호'라고 적혀 있고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처음 텍스트로만 접했을 때도 소름이 돋았는데 실제로 보니 마음이 뭉클해지더라. 한국인이 세계를 구한다는 의미보다는 우주를 소재로 한 장르 영화가 한국말로 진행된다는 게 더 반갑게 다가왔다."

▶tvN 드라마 '빈센조'도 곧 방영된다. 어떤 역할인가.

"공교롭게 시기가 겹쳤는데, 어찌됐든 오랜만에 드라마와 영화로 동시에 인사를 드리게 돼 반가운 마음 한편으로 부담감도 크다. '빈센조'에선 이탈리아에서 평생 살아온 마피아 고문 변호사 역할이다. 생긴 것만 한국 사람이지 뼛속까지 이탈리아인 인물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마피아를 소재로 다루는 게 생소하다보니 결국 또 그 새로움에 끌렸다."(웃음)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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