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무언가

  • 박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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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2 07:45  |  수정 2021-03-02 09:00  |  발행일 2021-03-02 제15면

이윤경
이윤경〈아동문학가〉

출근하는 여덟시 이십분 즈음의 이 길을 좋아한다. 신천을 우측으로 끼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너른 금호강이 바짝 다가온다. 강변의 아침 풍경은 날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지금처럼 막 봄이 시작되면서 강변에 듬성듬성 서 있는 버드나무 빛깔이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걸 알아채는 일은 경이롭다. 연노랑에서 연두로 다시 연초록으로 점점이 그러데이션 되는 나무들이 보내는, 말 없는 위로의 힘은 하루의 시작을 화사하게 밝히고도 남는다.

출근길 자주 즐겨 듣는 노래는 '무언가(無言歌)'다. 멘델스존의 무언가는 'songs without words' 즉 가사가 없는 노래다. 무언가 중 가장 좋아하는 '봄의 노래'는 귀에 익은 편안한 선율이다. 소리의 높낮이와 길이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흐름을 표현해내기에 인간의 말은 적절하지 않거나,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무언가의 선율은 인간의 말보다는 자연의 소리에 더 가깝게 닿아 있다. 무언가를 들으면 나뭇잎들의 작은 떨림이 느껴지고, 강물에 닿아 부서지는 눈부신 윤슬이 보이기도 하고, 갈대숲에서 바스락거리는 바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선율만으로도 아름답고 경이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것, 무언가(無言歌)를 들으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일은 운전 중에 할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이다.

나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적게 하는 것도 아끼는 것이고 가려 하는 것도 아끼는 것이다. 사람을 베고 찌르는 말, 꼬여 있는 말, 비어 있는 말, 가시 돋친 말, 가식과 위선으로 포장된 말, 그런 아픈 말들을 상대하는 나의 대처는 침묵이다.

말이 아닌 것, 말을 할 수 없는 것, 혹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주는 영감이나 메시지가 때론 사람의 유려한 말보다 더 깊고 선명하게 닿을 때가 있다. 나는 예술이란 말 너머에 있는 대상이나 상황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난무하는 말과 글의 홍수 속에서 적어도 내가 뱉는 말과 내가 쓰는 글이 어지러운 한낱 소음이 되지 않기를, 알맹이 없이 스러지는 먼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깊이 오래 생각하고, 먼저 헤아린 후에 고요히 말하고 적으려 애쓴다. 가득 채우고서야 조금씩 흘려 내보내는 샘물의 지혜를 배우려 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당하고 아름답게 자신을 드러내는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언가를 떠올리며 무언가(無言歌)를 듣는다.


이윤경〈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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