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의 클래식 오딧세이] 파가니니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24개의 카프리스 op. 1'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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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5   |  발행일 2021-03-05 제37면   |  수정 2021-03-05
악마의 기교…진정한 비르투오소가 되는 지침서

NiccoloPaganini
파가니니

파가니니는 19세기를 대표하는 비르투오소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다. 비르투오소란 '특별한 지식, 뛰어난 기량을 갖춘 예술가'를 뜻하는데 19세기 이전에는 음악가에 대해 이런 수식어로 표현하는 일이 없었다. 음악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한 것이다.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지난 유럽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회가 되었다. 왕실과 귀족은 더 이상 시민 계층의 사회적 지배력을 견제하기 어려워졌고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한 시민 계층의 문화적 욕구는 이 시기에 폭발하게 된다. 18세기 중엽까지 시민 문화를 대표했던 '살롱'은 '시민연주협회'와 같은 새로운 단체로 성장했고 연주회의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청중의 수가 늘어나 판매 수익이 생기자 곳곳에 대규모 극장들이 세워져 많은 연주자들이 보수를 받고 연주하게 되었다. 시민 계층은 자녀들이 악기를 배우도록 했고 음악가들은 악보 출판, 레슨과 같은 또 다른 수입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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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나 미술에 비해 늦게 형성되었던 음악 시장은 19세기에 가장 큰 시장이 돼 음악가들은 궁정이나 교회에 고용된 전속 음악가보다 프리랜서 활동을 더 선호했다. 일부 연주자와 작곡가는 유럽 전역에서 스타가 되었고 비르투오소 연주자들은 영웅과 같이 여겨지며 어느 측면에서 예술가를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예술가에 대한 인식 변화에 또 다른 계기는 미학의 등장이다.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은 자신의 저서 '시에 관한 몇몇 철학적 성찰'에서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면서 처음으로 'aesthetica'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미학을 '감성적 인식의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여러 학자들은 예술 작품을 예술가의 정신적 활동의 산물로 보았고 단순한 예술 노동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면서 예술가들의 사회적 지위를 한 차원 위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탄생한 비르투오소는 음악가에 대해 일반적인 기능인 이상의 특별한 존재를 뜻하는개념이 되었고, 파가니니는 비르투오소 그 자체였다. 바이올린 음악 역사에서 파가니니의 등장은 상당히 특이한 현상인데 그것은 파가니니 이전과 이후 어느 때에도 이 정도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뤄진 시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관객은 그를 사랑했고 그의 연주에 감탄했다. 그는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으며 파가니니를 능가하는 연주자는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은 그를 질투했고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기교를 얻었다는 루머로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는 바이올린으로 말이 우는 소리, 휘파람 소리, 종소리, 피리 소리를 묘사하는 듯한 다채로운 음색으로 연주했으며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유려한 테크닉으로 관객은 전율을 느꼈고 그의 아름다운 선율로 사람들은 감동받았다.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곡 안에는 왼손 테크닉과 활을 사용하는 주법이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그리고 24곡의 선율에는 오페라 가수의 아리아와 같은 서정성과 지중해의 햇볕을 연상시키는 열정이 담겨 있다. 이것은 파가니니가 이 작품을 통해 강조했던 것이 단순한 '기교의 과시'만이 아니란 것을 의미한다. 그가 말한 기교란 보다 아름다운 음악을 효과적이고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논증에 가깝다. 마치 아름다운 그림이 미술가의 한 번의 선 긋기에서 출발하듯 바이올린 음악 역시 하나의 음을 어떻게 연주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파가니니의 작품을 연주하는 후대의 바이올리니스트들은 테크닉을 연마하는 어려움과 동시에 바이올린 연주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 즉 하나의 음정을 연주할 때 한 번의 활 긋기를 명확하게 해야 하며 하나의 프레이즈를 구상하고 표현하려는 이미지에 따라 어떠한 테크닉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훌륭한 연주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성실하게 기본기를 단련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방법으로 훈련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으며 더불어 연주자를 끊임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24개의 카프리스 op.1'은 많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진정한 연주자로 가는 길목에서 꼭 만나게 되는 중요한 지침서다. 바이올린을 잘 다루는 연주자는 많지만 진정한 비르투오소가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다원예술그룹 ONENES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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