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내 몸 내 뼈…머리부터 발끝까지 변덕스러운 '내 몸 관찰기'

  • 최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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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5   |  발행일 2021-03-05 제14면   |  수정 2021-03-05
레지던트 시절 집필 기록 담아
신체 부위별 32가지로 분류
안에서 밖까지 들여다본 구조
몸에 밴 인간성에 대한 고찰도…

의사가 쓴 인체에 대한 글이라면 딱딱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의학 용어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라거나 "술과 담배를 줄여야 한다" 같은 권고사항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라는 짐작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예상을 빗나간다. '난생처음 들여다보는 내 몸의 사생활'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의사가 썼지만 쉽게 읽히고 솔직담백한 이야기도 담고 있다.

저자는 대만의 문학상을 휩쓴 베스트셀러 작가이면서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그의 첫 번째 책인 '닥터 노마드'는 의대생, 임상 실습, 인턴을 거쳐 군의관으로 성장해나가는 에피소드를 주로 담았다. 이번 책은 저자가 레지던트 시절에 집필한 만큼 실제 진료 이야기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환자의 몸과 병을 대할 때 보통의 의사라면 이성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것이다. 작가이기 때문일까. 그는 자신이 가진 의학적 지식에 감성적인 시선을 더해 신체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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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언 지음/ 진실희 옮김/ 유노북스/ 300쪽/ 1만5천원

책은 신체 부위별로 챕터를 나눠 구성했다. 저자는 머리와 목, 가슴과 배, 몸통과 사지 등 32가지로 분류해 살핀다. 그가 전하는 우리 신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변덕맞은 몸과 섬세한 내장, 우직한 뼈가 어찌 됐건 각자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에서 밖까지 신체 기관을 들여다보며 몸의 구조에 대한 지식도 전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고찰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저자가 다루는 신체 부위는 그의 머리 모양에 관한 기호, 누나와 정반대인 성장 스토리, 꽉 막힌 코로 하루를 시작하고,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무좀으로 고생하는 사연 등 의사의 시선이라기보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생활 속 잔잔한 이야기다.

그는 20세기 초 화가 모딜리아니의 그림에 그려진 여성의 길게 늘어진 목으로 모딜리아니의 삶을 추정해보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담배를 피우게 된 사연을 통해 타인과 인생을 나누는 '폐'라는 장기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한다.

인체는 너무 정교한 탓에 그 안에 직조된 모든 일이 무척 번잡해 삶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신체발부는 각자의 이력이 있고, 각자의 은유가 있으며, 각자의 취향도 지녀 인생을 다채롭고 굴곡지게 장식한다"고 말한다.

의사로 진료를 하고 있지만, 저자는 환자를 100%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가 만난 당뇨병을 앓고 있던 한 노부인의 이야기는 의사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이 부인은 인슐린 주사를 거부하고 약도 먹지 않겠다고 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후 저자가 이유를 묻자 부인은 울음을 터트렸고 몇 주전 아들이 불의의 사고로 덤프트럭에 치여 아내와 초등학생 자녀를 두고 떠났다는 이야기를 털어놨다. 저자는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으니 하루빨리 빠져나오시길 바란다. 힘드셔도 혈당은 잘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며 진료를 끝냈다. 그러나 이후 저자는 깨닫게 된다. 이 부인에게 아들이 사라진 세상에 혈당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기록은 저자가 꼼꼼하게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자는 머리카락, 얼굴, 어깨, 허리, 엉덩이 등 신체 부위 하나하나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느낀 후 빠르게 메모하면서 적어 내려가며 정리했다고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혀로 맛보는 등 우리 신체에서 이뤄지는 일련의 행위는 단순해 보이지만, 우리 삶의 여러 부분과 상호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그는 메모한 내용을 다시 천천히 읽어내려가면서 고치는 것을 4년 동안 반복했고, 그 결과 32편의 몸에 대한 기록을 완성했다. 이처럼 진지한 태도로 써 내려간 책이지만,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어조라는 특성 때문에 어렵게만 읽히지는 않는다. 

최미애기자 miaechoi2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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