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 자신의 실수로 발생한 손실 시민에게 떠넘겨...재판 통해 구상금 청구

  • 서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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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11 18:38  |  수정 2021-03-11 19:18  |  발행일 2021-03-12 제2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자신의 실수로 발생한 손실을 시민에게 떠넘기고 재판을 통해 돈을 받아내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LH 투기 사태'에서 촉발된 공공기관의 존재 가치 논란이 다른 공공기관으로도 옮겨붙는 모양새이다.


지난 2015년 한국정보화진흥원(이하 진흥원)은 대구 동구 신천역 까사밀라 103채를 전세 계약했다. 문제는 103채 가운데 '갭 투자' 형식으로 주택을 매입한 31명이 39채를 2018~2019년 '사기꾼 일당'에게 매도하면서 벌어졌다. (영남일보 2020년 10월 12일 14면 보도)


일당은 전세 입주민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금융기관 등으로부터 30억 원이 넘는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잠적했다. 일반적으로 세입자가 있고 전세금이 있다면 대출한도가 제한적이지만, 사택으로 활용되는 법인 전세 아파트 입주민은 통상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서류상으로 '빈집'이나 마찬가지다. 일당은 이 점을 악용한 것이다.


수십억 원의 전세금을 날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진흥원은 전세금 34억 원을 되돌려 받았다. HUG가 진흥원에 '보증서'를 발급해줬기 때문이다. 불똥은 원소유자에게 튀었다. HUG는 34억원을 진흥원에 지급한 후, 원소유자 31명에게 주택당 8~9천만 원대 규모의 구상권을 청구했다. 원소유자들이 아파트 매각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문제가 불거지자 HUG는 지난해 8월, 전세권 설정을 하지 않으면 보증서를 발급하지 않는 것으로 내부 규정을 바꿨다. 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재광 HUG 사장은 "원소유자들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실은 약속과 달랐다. HUG의 소 제기로 부산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 31명의 재판 30여 건 중 3월 현재까지 13건이 패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들은 재판과정에서 "임대차계약상 임대인의 지위는 (사기꾼에게) 승계됐으므로 임대차보증금반환의무가 없다"며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는 임차인인 진흥원의 승낙 하에 (사기꾼에게) 면책적으로 인수됐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구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들(피해자·사기꾼)은 연대채무관계에 있다"며 피해자와 사기꾼이 연대해 돈을 갚을 것을 명했다. 금액은 8천600만~9천500만원 규모이다.


패소한 재판 모두는 항소 제기가 이뤄졌다. 공탁을 걸어야 이자가 붙지 않는 탓에, 피해자들은 1채당 9천300만~9천700만원 대 공탁금을 걸고 항소심 재판 대기 중이다. 2채를 가졌던 피해자는 공탁금만 2억 원 가까이 되는 셈이다. 항소심 진행까지 필요한 변호사 선임 비용도 적지 않다.


피해자들은 "공공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할 공공기관이 보증서 발급을 허술하게 해놓고 그 손실을 아무 잘못 없는 시민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목소리 높이고 있다.


HUG는 강 건너 불구경이다. HUG 관계자는 "'피해자'라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공동 채무자'이다"라며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인데 '받지 않고 봐주겠다'고 하면 공기업으로서 배임죄에 걸릴 수 있다. 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돈을 안 받겠다 할 수 없다"고 했다.


서민지기자 mjs85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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