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Music Story] 롱아일랜드 재즈밴드…"고품격은 노땡큐"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스윙재즈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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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02   |  발행일 2021-04-02 제35면   |  수정 2021-04-02 08:50
조근조근·소근소근…편안한 사운드
기타·피아노부부 신혼집을 연습실로
'유쾌한 이야기' 유튜브 채널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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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인조 롱아일랜드 재즈밴드는 1900년대 초 모던한 콘셉트의 복고풍 스윙재즈밴드다. 드럼·콘트라베이스·피아노·기타·보컬을 기본 구성으로 한다. 멜로디카 연주도 포함시켜 대중성을 증폭시켰다. 관객이 듣기 편안한 사운드, 그리고 맴버들의 유쾌한 이야기가 있는 그들만의 무대는 최고 강점으로 평가 받는다. 연주를 하는 동안에 생동감 넘치는 인터플레이, 웃음이 끊이지 않는 밝은 분위기, 그게 고스란히 무대 밖으로 전달되어 더 큰 긍정 시너지를 발생시킨다.

지역의 한 재즈밴드를 만나러 간다. 팀 이름은 '롱아일랜드'. 먼 미래를 향해 등속도 운동을 하는 밴드. 20세기 초 미국 빅밴드 시절 어마무시한 실력의 태동기 재즈뮤지션의 추억도 물씬 풍겨나온다. 하지만 너무 고품격은 노땡큐! 그냥 조근조근~ 소근소근~. 한국 그리고 대구 정서에 맞는 그냥 '틱한 재즈'를 다루고 싶어한다. 너무 진지하지는 말자. 그러면서도 너무 가볍지도 말자. 그게 이들 음악의 모토인 것 같다.

이들을 만나러 간다. 경북대 근처 주택가 2층에 전혀 재즈스럽지 않은 연습실이 있다. 2층 양옥 독채 신혼집 같다. 젠틀한 기타리스트 김승민과 정숙한 뜨거움을 가진 피아니스트 박시연은 부부. 이 연습실은 부부가 신혼시절 살던 공간인데 긴 여운이 있어 다시 연습 공간으로 찜했다. 여기서 '롱아일랜드재즈밴드 유튜브TV'도 촬영 중이다.

마이크를 잡은 보컬 수안이 단아하게 따박따박, 너무 재즈스럽지 않으면서도 멜로디 속에 그녀만의 스캣라인을 슬쩍슬쩍 집어넣는다. 조금은 대차면서도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심정을 1㎝ 양보해줄 것 같은, 묵직하면서도 살가운 눈미소가 인상적인 수안의 목소리. 드러머 황윤현은 곧고 정중하다. 베이스(콘트라베이스) 만지는 곽병린은 훤칠한 훈남 스타일. 어두우면서도 맑다. 암울하면서도 진중하다. 그래서 더욱 재즈스럽다.

◆창단 IN & OUT

2018년 봄쯤 김승민은 대구예술대 실용음악과 선배이자 드러머 황윤현으로부터 롱아일랜드 기타리스트 제안을 받는다. 당초 황은 그보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그의 아내에게 먼저 합류 제안을 하러 왔다가 덜컥 그도 함께 러브콜하게 된다. 그간에 연주 공백이 많아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김·박 부부의 첫딸이 태어난 2018년 5월16일 황이 병원으로 찾아온다. 그날 공식적으로 밴드 창단이 선언된다. 베이스 주자였던 김찬옥은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고 대신 그의 친구 곽병린, 그리고 마지막에 보컬 수안이 가세한다.

창단 3년째 맞는데 공연 횟수는 110회가 넘는다. 지역의 한 재즈 밴드가 이렇게 짧은 기간 많은 공연을 한 경우는 거의 없다. 개런티가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았다. 재즈 인 대구,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행정안전부 전국 사회혁신 한마당 등에 초대받고 제주도 연주투어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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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민...젠틀한 선생님 같은 기타리스트

상주 출신으로 고교 스쿨밴드 활동을 하면서부터 기타리스트의 꿈을 키웠다. 이후 대구예술대 실용음악과에 진학한다. 대학 시절 접한 재즈에 매료돼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는 것을 나름으로 기대했지만 현실적으로 엷은 향유층, 인프라, 재즈에 대한 인식 등이 부족해 그 영역을 확대하는 것을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 기간에 음악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활동을 유지하는, 음악으로 수익창출 하는 방법을 몰랐다. 좋은 롤모델도 주위에 보이지 않아 회의를 느끼고 연주의 끈을 놓아 버렸다. 이후 실용음악학원에서 기타강사로 일했다. 당시 쎄시봉, 슈퍼스타K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 특수로 인해 평생 가르칠 정도의 학생을 만나 나름 호황기를 보냈다. 계명대 대학원의 음악이론 석사, 그리고 음악학 박사과정을 거쳤다. 조만간 나올 박사학위 논문에 집중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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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연...정숙하면서도 뜨거운 피아니스트

5세 때 피아노, 7세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불안했던 사춘기 시절 아이리버 MP3플레이어와 소리바다가 위로됐다. 장르에 상관없이 리듬과 선율이 좋으면 외울 때까지 듣곤 했다. 성당 반주하는데 신디사이저가 필요하다 하니 부모가 선뜻 'Korg Triton'(250만원)을 사주었다. 그때 전자음악에 입문한다. 성당에서 CCM밴드생활을 하면서 재즈를 배웠다. 그때 즉흥연주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F 블루스를 종일 쳤다. 재즈화성학을 공부하다 근본이 궁금해 음악의 기원까지 찾아봤다. 철학과를 졸업 후 음대 편입시험을 준비했다. 클래식 작곡과에 합격했다.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거장들의 연주를 몸으로 느꼈다. 학교 다닐 때도 그리고 지금도 재즈와 클래식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녀는 오히려 중간에 있어 양쪽을 넘나들 수 있게 된다. 장르 불문하고 음악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모두 챙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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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윤현...곧고 정중한 드러머

부모를 졸라 CD와 테이프 구입은 물론이고 감상용 오디오 컴포넌트까지 구비하고 베짱이처럼 매일 음악을 들었다. 이 모든 게 10세 남짓한 그가 가진 취미였다.

연주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TV에서 드럼연주를 처음 봤다. 가슴이 마구 뛰는 감정을 느낀다. '21세기 뮤지션은 로커로 시작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음악의 시작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록뮤직이었다. 고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재즈연주를 접하면서 비트와 사운드의 본질을 파고들게 된다. 재즈에 빠져든다. 강력한 심벌즈 소리 대신 매력적인 심벌즈의 사운드를 추구 했고, 가슴을 때리는 비트보다는 가슴을 어루만지는 비트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참 많은 재즈음반을 듣고 연구·연주한다.

대구예술대를 졸업한 뒤 실용음악학원, 문화센터, 밴드보컬, 합창단 등에서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보람도 있었지만 부족함을 더 알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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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단아하면서 정곡 찌르는 보컬리스트

재즈음악에 대해 잊힐 때쯤 우연히 여성 재즈보컬리스트 '말로'의 음반을 들었다. 워낙 유명해서 원래 알고 있던 가수였는데 다시 음악을 들었을 때 정말 큰 감동을 받는다. 너무 잘했다. 말로의 음악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느껴진다. 그냥 정통 스탠더드곡을 들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 와중에 SNS로 말로의 수업을 수강할 수 있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기회가 생겼다. 신나는 마음에 신청을 하고 서울로 향했다. 말로의 재즈에 대해서, 스캣에 대해서, 또 그의 음악을 더 깊게 듣게 되었는데 그때 절감하게 된다. 이 사람은 음악 자체가 삶이고, 그 삶도 철학적으로 재미있게 만들어 가는구나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말로와의 만남으로 인해 희미하게나마 가지고 있던 재즈에 대한 마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러다 우연히 지금의 롱아일랜드 재즈밴드 멤버들과 팀을 이뤄 스윙재즈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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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병린...어두우면서 맑은 콘트라베이시스트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어했지만 부모의 반대가 심해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남몰래 힙합의 세계에 매료되기도 했다. 고교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에 손을 댄다. 베이스기타를 죽어라 연습했다. 1년 만에 백제예술대에 들어갔고 그때 생애 처음으로 운명의 콘트라베이스를 잡게 된다. 2학기가 되던 해에 100만원대의 콘트라베이스를 구입한다. 하루 평균 12시간, 밥 먹는 시간을 제하고는 거의 매일 연습했다. 2019년 롱아일랜드재즈밴드에 들어왔다. 향후 여러 악기를 배워서 혼자서 음악을 총괄하는 '원맨밴드'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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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춘호 음식·대중문화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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