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82년생 김지영' 보낼 곳, 동아제약만일까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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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4-19   |  발행일 2021-04-19 제27면   |  수정 2021-04-19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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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논설위원

동아제약 때문에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16년 출간된 이 소설은 1982년생 김지영을 내세워 가정과 직장에서 일어나는 성차별적 상황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국내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됐고 1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베스트셀러가 됐고 최근 미국·유럽에서도 인기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 출간된 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의 '2020년 꼭 읽어야 할 책 100권'에 선정됐다. 올 초 독일에서도 선보여 인기몰이 중이다.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의 성차별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이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것은 여성의 삶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출간 후 수년이 흘렀으니 '82년생 김지영'이 한국에서는 약간 철 지난 책 취급을 받았던 게 사실. 수면 아래로 내려간 듯하던 이 책이 동아제약의 성차별 면접 논란으로 인해 급부상했다. 한 네티즌이 '지난해 동아제약 채용 과정에서 차별을 당했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서 성차별 채용 논란이 불거졌다. 이후 네티즌들의 항의가 잇따르고 시민단체들이 회사 측에 공식 사과를 요청하는 등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결국 동아제약이 공식 사과했다. 피해자는 사과를 받아들이며 "화해 의미로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보낸다"고 했다. "사장님께서 꼭 읽어보시고 다 읽으시면 인사팀장에게도 빌려주시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과거 성차별의 단적인 현상은 남아 선호 사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아들 선호가 급속히 줄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딸을 원한다'는 응답이 '아들을 원한다'는 답의 2배가 넘었다. 가족·친구 모임도 부인 쪽이 더 활발해 '신(新)모계사회'라 부를 만하다. 세상이 변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여성이 살기엔 팍팍하다. 많은 여성이 암묵적으로 강요 받아온 여성 역할에 얽매여 있다. 이 소설이 인기를 끄는 것도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평생에 걸친 성차별에 대한 분노가 주인공 지영을 무너뜨렸다. 성차별이 가해자에게는 별일 아니나 피해자에게는 너무 크고 슬픈 일이다. 이게 쌓여 병이 됐다. 과연 지영만의 일일까. 여성 전체의 문제다. 오죽하면 여성이 겪는 성차별을 '공기 같은 차별'이라 했을까.

과거보다 성차별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을 시작으로 남녀차별금지법 등 여성권익 관련 법들이 잇따라 제정됐다. 제도적 성차별은 줄었지만 보이지 않는 차별이 아직도 여성의 삶을 제약하고 억압한다. 왜 '유리천장' '독박육아'란 말이 나왔겠는가. 많은 이들이 양성평등은 당연하다고 공감하지만 일상에서는 여성에게 차별의 굴레를 씌우고 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 비율은 3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남성 노동참여율은 74%인데 반해 여성 참여율은 53% 수준이다. 그만큼 사회 전반에 성차별이 만연해 있다.

이 사건 이후 정부에서도 성평등한 채용 정책 마련에 부심 중이다. 사후약방문식 대응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이참에 채용을 포함한 직장문화 전반에 성평등 의식을 하루빨리 자리잡게 할 획기적 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한국에서 여성의 경제활동 격차가 해소되면 국내총생산(GDP)의 10%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땅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인재를 차별하는 것은 인적 자원의 국가적 낭비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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