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의 연필의 무게 걸음의 무게] 시인 김춘수

  •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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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7   |  발행일 2021-05-07 제38면   |  수정 2021-05-07 08:57
"어느 계절이나 어느 곳에서나 심금(心琴) 울린 그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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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서, 박미영, 김춘수 시인(왼쪽부터).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통영 소년'
유년시절 보모가 유치환시인의 부인
시인부부 결혼식에 화동으로 서기도

일왕·총독정치 비방 혐의 취조받은후
종교 초월 '인간예수' 고뇌·희생 詩作
수년동안 경북대·영남대 교수로 역임
고향만큼 편안해하며 대구 즐겨찾아

서구 실존주의 영향 '꽃' '무의미 시론'
내년 김춘수 탄생 100주년 뜻깊은 해


밤새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포르스름한/ 달개비꽃만 한 이스탄불 (-'2004년 7월2일의 비망(備忘)' 전문)

이 시를 쓰고 한 달 뒤인 8월4일, 시인은 기도폐색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는다. '올 여름에는 부쩍 어머니 무덤에 가고 싶다 하셨는데….' 거의 매일 건너편 아파트의 아버지를 찾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주무실 즈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는 큰딸이 유고시집이 된 '달개비꽃' 후기에 남긴 글이다. 딸은 '저녁 불빛에 쓸쓸함이 배인 아버지 모습이 어른거리는 게 싫어 어느 때는 일부러 고개를 돌릴 때도 있었다'고 썼다.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의 마음 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을 벗는 여리디여린 순결이다/ 3월에/ 젊은 느릅나무 잎새에서 이는/ 연두빛 바람이다(-'나의 하느님'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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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金春洙) 시인은 1922년 11월25일 경남 통영읍 서정 61번지(현 통영시 동호동 61번지)에서 아버지 김영팔, 어머니 허명하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의 장남으로 유년시절 유치원 보모였던 분이 청마 유치환 시인의 부인이었는데 춘수 아동(兒童)의 오줌 치레와 그들 결혼식의 화동(花童)이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내 고향은 경남 통영이다./ … 봄에는 바닷물이 연두색이 되었다가 신록과 함께 짙은 초록으로 바뀐다. 한려수도를 건너서 불어오는 바람은 봄에는 진달래꽃 빛을 하고 느릅나무 어린 잎사귀를 흔들어준다.(-산문 '향수'중에서)

경기공립중학을 중퇴하고 니흔대학 예술창작과에 입학하지만 1942년 일왕과 총독 정치를 비방했다는 혐의로 퇴학당해 요코하마와 도쿄의 헌병대에 7개월간 유치되어 취조를 받았다. 그때부터 종교를 초월한 '인간 예수'의 고뇌와 희생에 대한 천착이 시작(詩作)의 기저에 자리한 듯하다.

이럴 때(고문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을 때) 우리는 예수가 하나의 차원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예수가 왜 그리스도가 되었는가를 알게 되고, 왜 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도 알게 된다. / …이런 패배적 처지를 실감하게 될 때 예수는 나를 스쳐 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만이 그것을 할 수 있었다고…(-산문 '나를 스쳐간 그 3' 일부)

서울로 송치되어 풀려난 뒤 금강산 장안사에서 요양하다가 1944년 명숙경과 결혼한다. 광복 이후 유치환, 윤이상, 전혁림 등과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해 근로자를 위한 야간 중학교와 유치원을 운영하면서 예술운동을 전개하고 극단을 결성해 경남지방 순회공연을 했다. 1946년 시 '애가(哀歌)'를 발표하고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를 자비(自費)로 출판한다.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소련제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순간/ 바숴진 네 두부는 소스라쳐 삼십 보 상공으로 튀었다./ 두부를 잃은 목통에서는 피가/ 네 낯익은 거리의 포도를 적시며 흘렀다./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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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구름과 장미'

1949년부터 마산중 교사, 해인대(현 경남대 전신) 국문학 교수를 지내다가 1961년 경북대 교수, 1979년부터 1981년 국회의원(문공위원)에 피선될 때까지 영남대 교수, 1988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맡았던 여러 자리들에 대해 두고 두고 자책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바람이 불면 승냥이가 울고/ 바다가 거멓게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가고 있었다./ 승냥이가 울면 바람이 불고/ 바람이 불 때마다 빛나던 이빨,/ 이빨은 부러지고 승냥이도 죽고/ 지금 또 듣는 바람 소리/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나이지리아' 전문)

김춘수 시인은 릴케의 영향과 서구 실존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꽃'과 '무의미 시론'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말년까지 여러 시작법을 실험하며 도스토예프스키의 비관주의에 천착한 일련의 시를 통해 관념과 무의미가 변증법적으로 지양된 새로운 시세계를 펼치기도 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꽃' 전문)

시집 및 시선집으로 '늪' '기(旗)' '인인(隣人)꽃의 소묘' '타령조' '처용' '남천' '비에 젖은 달' '처용 이후' '라틴 점묘 기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처용 단장 이후' '서서 잠자는 숲' '호(壺)' '들림, 도스토예프스키' '의자와 계단' '거울 속의 천사' '쉰한 편의 비가(悲歌)'와 수많은 시론집을 냈다.

샤갈의 마을에는 3월의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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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시인

기도폐색으로 쓰러진 시인은 끝내 의식을 찾지 못 한 채 2004년 11월29일 아침 세상을 뜨고 만다. 서정주 시인이 지어주었다는 '크게 모자란다'는 뜻의 호, 대여(大餘)를 아주 흡족해 하던 시인은 생전에 대구를 고향 통영만큼 편안해하며 즐겨 찾았다. 내년이면 김춘수 시인의 탄생 100주년이다. 수많은 이의 심금(心琴)을 울린 시인의 시들이 도처에 있으니 누가 그를 기억하지 않고 뒤돌아보지 않을 것인가.

물또래야 물또래야/ 하늘로 가라/ 하늘에는/ 쥬라기의 네 별똥/ 흐르고 있다/ 물또래야 물또래야/ 금송아지 등에 업혀/ 하늘로 가라(-'물또래'전문)
박미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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