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지산동 고분군...찬란했던 대가야 '잊지 말라'는 듯 1400년간 자리 지켜온 무덤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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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5-07   |  발행일 2021-05-07 제13면   |  수정 2021-06-27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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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44호 무덤. 무려 32명이 순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가야 시대 사람들은 사후에도 현세의 삶이 재현된다고 믿었고, 권력자들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권력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가파르다. 발바닥에 힘을 주고 몸을 잔뜩 기울인 채 조심조심 오르며 살과 뼈의 무거움을 느낀다. 구름마저 회색빛으로 두꺼워 날개뼈를 꾸욱 누르는 듯하다. 곁으로는 아주 오래된 무덤들이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면서 곰비임비 이어지고 있다. 봉분에 자라난 풀꽃들이 가녀린 몸을 흔들며 저 아래 빽빽하고 희끄무레한 마을을 굽어본다. 고령의 중심인 대가야읍이다. 1천400년 전쯤 사라진 대가야가 다시 살아나 저기에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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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의 정상부에 대형분이 분포한다. 맨 앞이 45호 고분으로 13명 정도의 순장자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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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동 고분군 정상부에 오르면 대가야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봉토분 700여 기·작은무덤 수만 기
능선 따라 크고 작은 무덤 분포
분묘 속 수많은 유물 출토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첫 관문 통과

남쪽 능선 아래 대가야박물관
대규모 순장묘 44호분 내부 재현
박물관 맞은편엔 테마관광지 조성


◆지산동 고분군

산은 주산(主山), 고령의 진산이다. 서북쪽의 가야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고령군의 서쪽에서 높이 784m인 미숭산(美崇山)을 이루고, 그 곁줄기 하나가 동쪽으로 뻗어 대가야읍 지산리(池山里)에서 높이 311m인 주산을 이룬다. 주산은 또한 '주인(主)이 묻힌 산', 산의 남동쪽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무덤들이 무리지어 있다. 그들은 서기 400년 무렵부터 562년 사이 대가야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2.4㎞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봉토분은 700여 기, 작은 무덤은 수만 기에 이른다. 산의 능선부를 따라 대형 무덤들이 들어서 있다. 중·소형 무덤들은 경사면에 위치한다. 무덤 자리는 낮은 곳에서 높은 쪽으로 변했다 한다.

삼국사기에 '대가야국은 시조 이진아시왕으로부터 도설지왕에 이르기까지 16대 520년 간 이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4세기 후반 김해의 금관가야가 신라의 세력권 안으로 들어간 이후 대가야는 합천, 거창, 함양, 산청, 하동, 사천 등지를 포괄하는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였다. 쇠를 바탕으로 농업을 발전시키고 군대의 힘을 키웠던 대가야는 백제, 일본, 중국 등과 활발히 교역하며 급속한 경제 발전과 함께 융성한 문화를 꽃피웠다. 대가야는 신라 진흥왕 23년인 562년 신라에 병합되면서 역사에서 사라졌다. 지배층은 뿔뿔이 흩어졌고 신라는 대가야의 사료를 남겨두지 않았다.

각각의 문명은 죽음을 그 나름대로 취급하며, 또 각 문명은 그 분묘의 형식을 갖고 있다. 본질이 무엇이건 간에 묘소는 형상을 낳는다. 높이 솟았건, 바위 아래의 것이건, 모든 분묘들은 항상 기념비적이다. 기념(紀念)이란 '너를 오래 기억한다'는 것이고 공간을 통해 시간을 붙들어 매는 것이다.

모든 형상은 시간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1천400년 전 사라진 대가야는 지금도 이렇게 분묘의 형상으로 존재해 있고, 흩어지고 폐기된 역사는 분묘의 내부에 숨겨져 있었다. 금동제 관모와 귀걸이, 팔찌, 구슬 목걸이 등의 장신구, 철제 갑옷 조각, 투구 등의 무장구(武裝具), 환두대도, 검, 창, 화살통, 화살, 도끼 등의 무기류, 등자, 재갈, 말안장, 말등기꽂이 등의 마구, 항아리, 국자, 청동합, 접시 등의 생활용구 등 무덤에서는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학자들은 이곳의 고분과 유물들을 통해 가야의 최전성기를 읽는다.

지산동고분군은 일제강점기 때 11기가 발굴되었다. 그들은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가야 고분들을 파헤쳤다. 일본계 유물이 가야 고분에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발굴은 도굴에 가까웠고 당시 수천 점의 유물이 일본으로 반출되었다. 또한 조사된 고분들 중 지산동 47호분의 위치만 알 수 있고 나머지는 발굴 자료만 전할 뿐 위치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광복 후에는 모두 434기가 발굴 조사되었다. 그중 1977년과 1978년에 발굴된 대형 봉토분 2기는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순장을 행한 무덤임이 밝혀졌다. 주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한 44호, 45호 무덤이다. 44호에서는 무려 32명이 순장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45호에서는 13명 정도의 순장자가 확인되었다. 대가야 시대 사람들은 사후에도 현세의 삶이 재현된다고 믿었고, 권력자들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권력이 계속되기를 원했다.

현재 지산동 고분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최종 신청서를 제출하고 완성도 검사를 통과한 상태다. 남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등 가야연맹의 각 권역을 대표하는 7개 고분군과 함께다. 등재 여부는 2022년에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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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 신인 정경모주상. 그녀는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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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박물관 맞은편에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테마로 조성한 관광지가 있다.


◆대가야박물관과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주산의 남쪽 능선 아래에 대가야박물관과 대가야왕릉전시관이 있다.

대가야박물관은 대가야를 비롯해 고령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전시한 곳이다. 대가야왕릉전시관에는 대규모 순장묘인 지산동 44호분의 내부가 재현되어 있다. 무덤의 축조 방식, 주인공과 순장자들의 매장 모습, 껴묻거리(부장품)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순장된 이들은 각각의 석관에 매장되었다. 시녀의 것, 일반 백성의 것, 말을 다루는 남성의 것, 창고지기의 젓, 무사의 것 등이다. 합장한 것도 있다. 부녀로 보이는 30대 남성과 8세 여자 아이의 것, 10대 소녀 2명이 함께인 것 등. 별도의 석관을 만들어 준 것은 대가야 순장의 큰 특징이다. 그러한 형식이 뜻하는 바를 알 수는 없다. 의미나 가치들은 그들 공동체의 것이다. 우리는 사후를 알 수 없으므로, 상징 또한 공동체의 것이다.

대가야박물관 맞은편에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테마로 조성한 관광지가 있다. 지산동고분군의 남쪽 자락 동편에 길게 자리해 있다. 가야인의 의식주 생활상을 영상과 빛, 음향 연출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유물 체험관, 직접 제작 체험을 해볼 수 있는 토기, 철기방 체험관, 숲길을 거닐며 퀴즈를 풀어보는 대가야 탐방 숲길과 야외무대, 책방, 펜션과 캠핑장, 최신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도 있다.

공원 가운데에는 가야산의 신인 정경모주 상이 높이 솟아 있다. 착하고 무척 아름다웠다는 그녀는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의 어머니다. 그녀의 눈에는 대가야의 고분들이 환히 보일 것이다.

무엇보다 꽃과 나무가 무성해 더 없이 청량하다. 좁은 물길에는 맑은 물이 세차게 흐른다. 출입 금지 되어있는 물놀이장과 놀이터가 찡하다. 사람은 드물지만 꽃과 나무를 가꾸고 시설을 정비하는 분들의 움직임이 이따금 눈에 띈다. 공원의 끝에 고분 전망대가 있다. 멀리 지산동 고분군이 환히 보인다. 전망대에서 지산동 고분군의 남쪽 자락을 거슬러 44호, 45호 고분이 있는 주산 정상부까지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그 길을 걸어 왔어도 좋았겠다 싶다. 살과 뼈의 무거움을 느끼며. 전망대 옆 임종 체험관에 자물쇠가 걸려 있다. 임종 체험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에서 화원·고령 방향 5번 국도를 타고 간다. 논공 지나 위천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26번 동고령로를 타고 간다. 고령교차로에서 대가야로를 타고 직진하면 왼편에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오른편에 지산동고분군과 대가야박물관이 있다. 대가야박물관 입장료는 일반 1천원, 학생 및 군인은 700원이다. 왕릉전시관 관람이 포함되어 있다. 현재 박물관은 새로운 전시 준비를 위해 6월 초까지 임시 휴업 중이다. 왕릉전시관은 관람할 수 있다.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 입장은 무료다. 대가야 박물관을 중심으로 양쪽에 고분군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산책로가 있고 박물관 뒤편에서도 올라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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