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체르노빌 1986, 보이지 않는 공포스러운 재난에 맞서는 영웅들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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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02   |  발행일 2021-07-02 제39면   |  수정 2021-07-02 08:36
옛 연인과 만나고 싶어 소방관 일 그만둔 알렉세이
원전 사고 발생하자 2차 폭발 막기 위해 현장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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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26일 새벽, 당시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동북부의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원전 직원이 전력통제 시스템을 시험하던 중 원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이 사고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약 400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유출된 역사상 최고 7등급 원전 폭발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만 약 3천500명이며 40만명 이상 암과 기형이 발생했다. 영화 '체르노빌 1986'은 그날의 끔찍하고 긴박했던 재난현장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베테랑 소방관 알렉세이(다닐라 코즐로브스키)는 미용사로 일하며 아들 알렉스를 키우고 있는 옛 연인 올가(오크사나 아킨쉬나)와 우연히 만난다. 이를 계기로 그녀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고 싶은 알렉세이는 소방관일도 그만둔다. 그러던 중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소련 정부는 2차 폭발을 막기 위해 긴급 대책반을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알렉스가 방사능에 피폭된 사실을 알게 된 알렉세이는 아들의 치료를 조건으로 현장에 지원한다. 누구보다 발전소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알렉세이는 대책반 대령 보리스(니콜라이 코작), 발레리(필리프 아브데예프)와 함께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한다.

재난 영화로서 '체르노빌 1986'이 공포스러운 건 재난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폭발 사고로 유출된 방사능은 공기에 섞여 멀리 날아간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양의 방사능이 언제, 어떤 경로로 사람과 동물들의 몸에 침투될지 알 수 없다. 단편적으로 공포의 실체를 육안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건 온몸에 물집이 잡히고, 피를 토하고, 육체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겪는 소방관들의 모습이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상황이지만 영화가 주목한 건 재난의 스펙터클이 아닌 살신성인의 용기를 보여준 체르노빌 3인의 영웅이다. 이들은 전 세계를 위협할 2차 폭발을 막기 위해 원전 안으로 들어가 배수밸브를 열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는다.

이 사고는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른 인류 최악의 인재다. 하지만 애초 설계부터 잘못됐다는 전문가의 비판에 당 관료는 "체제와 싸우려는 건가, 방사능처럼 보이지도 않고 영원히 존재하는 상대"라며 나라의 체면을 중시하는 강압적인 스탠스만 취할 뿐이다. 사고 이후 35년여가 지난 지금도 체르노빌은 사람도 동물도 살지 않고, 또 살 수 없는 유령도시가 됐다. 그만큼 재난이 남긴 대가와 교훈은 값비쌌다. 연출과 주연을 맡은 다닐라 코즐로브스키는 "이 영화는 희생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사람들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며 "그들이 어떤 위대한 일을 해냈는지 감사의 마음을 담았다"고 전했다.(장르:재난 등급:12세 이상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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