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제8일의 밤' 이성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공격 받는 연기, 적잖이 당황스러워"

  • 윤용섭
  • |
  • 입력 2021-07-23   |  발행일 2021-07-23 제39면   |  수정 2021-07-23 08:37

Netflix_The8thNight_Final_004_re

산 자와 죽은 자, 모두가 번뇌와 번민의 사슬에 붙들려 분노하고 절망하며 살아가는 끝을 알 수 없는 밤의 세상. 이를 지옥으로 명명한 '제8일의 밤'은 현재의 한국을 무대로 2천500년 전의 전설과 마주한다. 배우 이성민이 귀신이 될 때까지 귀신을 천도해야 할 숙명을 지닌 진수 역으로 극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영혼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던 전직 승려지만 진수 역시 끔찍한 과거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어 숙명을 거부한 채 살고 있다. 영화는 동자승 청석(남다름 분)으로 인해 '지키는 자의 숙명'을 거역하지 못하고 결국 봉인해제를 막기 위해 나서는 8일간의 사투를 담았다. 그 과정에서 이성민은 예의 묵직한 카리스마와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이야기의 여백을 빼곡히 채워간다. 인물의 복합적인 감정을 오롯이 담아낸 강렬한 눈빛 연기가 그중 압권이다. 덕분에 '제8일의 밤'은 종교적 색채와 장르적인 재미가 제대로 어우러진 신박한 한국형 오컬트 영화로 탄생했다. 지난 2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다.


"양자역학 관심 갖고 있던 중 시나리오 받아
인간 능력 초월한 존재 다뤄 흥미롭게 다가와"


▶시나리오의 어떤 점에 끌렸나.

"유튜브를 통해 접한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원자가 무엇인지, 본다는 게 무엇인지, 또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있던 차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양자역학을 타고 가다 보면 불교경전인 금강경과 맞닿은 지점이 있는데 마침 시나리오 표지에 금강경 구절이 적혀 있었다. 되게 반갑더라. 그래서 좀 더 호기심을 갖고 보게 됐는데, 사람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인지하는 것과 다른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존재가 있다면 과연 우리의 눈에 어떻게 비쳐질지 궁금했다. 내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닐 것이란 생각을 평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새롭고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았다."

▶불교에 기반한 오컬트 영화다. 이런 장르에 익숙해진 대중에게 '도끼 들고 퇴마하는 스님'이라는 설정이 흥미롭게 다가갈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 오컬트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다. 공포물을 잘 못 보는 편이라 이런 장르의 영화를 딱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상적이지도 않고 상상이 잘 안 가니까 궁금하긴 했다. 다만 처음 접해보는 장르라 어떻게 묘사되고 표현될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런 고민을 (김태형) 감독님에게 얘기했더니 참고가 될 만한 여러 이미지와 자료들을 보여주며 극중에서 어떻게 표현될지를 나에게 세세히 알려줬다. 그제서야 납득이 되더라. 나중에는 이 영화가 반드시 징그럽거나 무서워야 한다고 감독에게 당부할 정도로 상상력을 키울 수 있었다."

▶직접 스님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고 들었다.

"서울 종로에 있는 조계사를 찾아가 스님을 두세 번 뵈었다. 스님 중에도 구마를 하는 분이 계시지만 퇴마보다는 구명이나 천도에 가깝다고 하더라. 진수처럼 귀신을 하늘로 돌려보내는 거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상상을 더했다. 영화에서 보면 진수가 방에 앉아 있을 때 등에 손을 얹는 귀신을 포함해 그가 극중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실은 귀신인 경우가 많다. 감독님이 그 지점을 의도적으로 수수께끼처럼 만들었으니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나.

"그런 존재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 내가 보고 느끼는 게 다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물리학적으로 인간이 본다는 건 빛이 원자덩어리에 반사된 것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인간에게 국한된 얘기이고 만약 다른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그는 우리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좀 더 부연하자면 내 종교가 가톨릭이긴 하지만 '제8일의 밤'을 촬영하면서 부처님 말씀이 많이 떠올랐다. 성철 스님도 양자역학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부처님은 아마 우주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지점에서 본다면 인생이 참 덧없음을 느낀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하정 스님(이얼 분)이 '생은 그냥 풀싹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시간이 길게는 100년, 짧게는 60년이다. 하루살이의 짧은 생이나 인간의 생이나 우주의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는 얘기지. 대체 우리의 시간이란 어떤 의미일까. 이 영화의 주제가 그런 내 생각과 겹쳐지는 지점이 있었다."

▶영화는 인간의 번뇌와 번민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이 궁금하다.

"'번뇌'와 '번민'은 누구나 다 있을 거다. 그래서 우리가 고통 속에서 사는 것이고, 그게 없다면 아마 다 부처가 되어 있겠지. 나도 마음속의 번뇌와 번민이 있다보니 참지 못하고 드러내거나 표현한 적이 많다. 그럴 때마다 좀 더 겸손하고 양보하고 덜 탐내며 살지 못한 걸 후회하고 반성한다. 인간이라 그런지 늘 반성하고 후회하면서도 제대로 실천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도 주변을 돌아보면서 착하게 살려고 매일 다짐하고 노력한다."(웃음)


"영화에서 가장 빛났던 배우는 남다름이라 생각
호흡도 잘 맞아…성인되면 더 매력적 연기 기대"


▶넷플릭스를 통해 대중과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느낌이 어떤가.

"많이 어색하다. 제작보고회도 그렇고 지금처럼 화상으로 인터뷰하는 것도 굉장히 낯설다. 그리고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본다고 하는 넷플릭스 공개라 인터뷰할 때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더 신중해진다. 극장 개봉을 하면 어제 관객이 얼마나 들었냐, 주말에는 몇 만 찍었냐는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내게 되는데, 넷플릭스는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내심 마음이 편하긴 한데 궁금하다. 사실 누구보다 안타까운 건 감독님일 거다. 첫 연출한 영화였는데 큰 극장이 아니라 TV로 봐야 하는 영화라 아쉬운 마음이 들 거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관객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쉼없이 작품활동 하던 코로나 이전이 그리워
찍은 영화 더 남아…어서 극장 관객과 만나길"


▶현장에서 체감하는 코로나19 위기를 말한다면.

"사람들을 자주 못 만나고 작업할 때 더 예민해져야한다는 게 불편하다. 특히 내가 조심하지 않으면 주변 스태프들이 일을 못하거나 스케줄이 꼬이는 문제가 생겨버리니 더 철저하게 조심하고 있다. 중요한 일 말고는 집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자제를 하는 편이다. 나처럼 많은 관객을 만나야 하는 직업군들은 그래서 더 충격이 크다. 배우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극장 상황이 연계되기 때문에 굉장히 안타깝고 빨리 해결되었으면 한다."

▶진수는 별다른 대사 없이 눈빛만으로 그의 상황이나 상태, 분위기를 짐작하게 만든다. 어떤 점에 주목했나.

"많은 분이 눈빛만으로 연기를 하는 게 어렵지 않느냐고 궁금해 하던데 나는 오히려 대사가 없어서 편했다.(웃음) 다만 진수 혼자 있을 땐 무리가 없었지만 청석과 함께 있을 때, 나 대신 남다름이 계속 대사를 쳐야 하는 부분에선 아무래도 부담이 되더라. 다름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많이 필요했던 장면인데 기대 이상으로 잘 해줬다. 우리 영화는 단순히 귀신을 퇴마하는 영화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되묻는 영화다. 그 부분이 다른 오컬트 영화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진수가 전직 스님이었다는 점, 그리고 그가 다른 세계에 관여하고, 그 세계에 들어가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해 캐릭터에 접근했다."


"영화 내용처럼 번뇌와 번민은 누구나 있어
나도 못참고 표현한적 많아…매번 후회·반성"


▶청석 역의 남다름 배우와는 드라마 '기억'(2016)에서 부자지간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와의 호흡은 어땠나.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났던 배우는 다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영화는 그 아이가 빛나야 빛날 수 있었는데 그렇게 보여진 것 같아 만족스럽다. 물론 호흡도 좋았다. 다름이 워낙 점잖고 진중해서 모범생 느낌이 있다. '제8일의 밤'을 찍을 때는 좀 더 순수하고 순박한 모습이었으면 했는데, 이에 더해 그의 쾌활하고 유쾌한 이미지까지 보여줄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후반부에는 건장한 청년의 모습도 보이는 것 같아서 앞으로 성인이 됐을 때 더 매력적인 배우가 되지 않을까 기대된다."

▶퇴마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산스크리트어로 계속 주문을 외우고, 보이지 않는 상대와 몸싸움도 해야 했는데 힘들진 않았나.

"복잡한 주문은 아닌데 반복하는 게 입에 안 붙어서 조금 힘들었다. 사실 그보다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 연기하는 게 더 어려웠다. 감독님과 미술감독이 어떤 이미지를 대상으로 할 건지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상대 배우의 리액션이 없으니 낯설더라. 그러다보니 보이지 않는 존재로부터 공격을 받는 연기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과정도 앞으로는 종종 마주쳐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해서 더 집중했다."

▶보편적이고 평범한 중년의 얼굴로 진솔한 감정을 토해냈던 것과 달리 이번엔 장르적 색채가 강한 인물이다. 해보니 어떤가.

"이 영화를 하고 나서 장르영화와 캐릭터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묘한 쾌감이 있더라. 리얼하고 현실적인 캐릭터 연기와 달리 판타스틱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느껴지는 매력이 있다. 영화 '콘스탄틴'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맡았던 역할을 우리식으로 해석하면 이런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쉼없이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지치진 않나.

"외려 쉼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가던 코로나19 이전 상황이 그립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제작이 거의 완료된 영화가 아직 몇 편 남아 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언제 개봉될지 미정이다. 다시 극장에 걸릴지, 어떤 순서로 걸릴지, 아니면 이번처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될지 예상이 안 되는 상황이다. 농사를 짓고 수확해 창고에 쌓아 놓은 농산물이 많은데, 아무도 안 사 먹으니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하나 그런 고민도 하게 된다. 그래서 현재는 영화 촬영을 잠시 미뤄두고 있다. 그런데 쉬고 있으니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몸도 아프고 건강도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다. 아무쪼록 밀려있는 영화들이 빨리 극장에 걸려서 관객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야 관객이 다음 작품을 기대할 수 있고, 나 역시 그런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작품으로 또 찾아 뵐 수 있으니 말이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넷플릭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