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행에도 재미·공감…여성 빌런 전성시대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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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5 07:33  |  수정 2021-08-05 07:38  |  발행일 2021-08-05 제15면
막장극 바라보는 시선 달라져
매력있는 캐릭터에 대중 환호
SBS '펜트하우스' 대표 작품
복수극의 카타르시스 진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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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빌런 전성시대다. 이른바 '악녀'로 불리는 여성 캐릭터들이 펼치는 드라마틱한 쇼맨십과 욕망이 TV 드라마의 주요 관전 포인트로 작용하며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탁월하지만 나쁘고, 영리하지만 제정신이 아닌 듯 보이는 이들 캐릭터 대부분은 안방극장을 붉은빛으로 물들일 독기 어린 복수심을 동력으로 삼는다. 갖은 악행을 일삼거나 일부러 위악의 행위를 벌이는 단순한 구도를 탈피함으로써 색다른 재미와 공감을 형성하는 그들이다.


◆재밌으니까 본다

단순한 빌런 캐릭터는 재미없다. 아닌 척 등장해 드라마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는 지능적인 빌런이 보다 주목받는 시대다. 이는 곧 시청률로 통한다. 시즌3까지 방영되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SBS '펜트하우스'(시즌2 순간 최고 시청률 31.5%)의 경우만 보더라도 "막장이지만 재밌으면 본다"로 수렴된다. 타깃이 젊은층이든 중장년층이든 결국 충성도 높은 시청자를 더 많이 확보한 콘텐츠가 자본주의 시장에선 보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통하는 게 사실이다. 그 중심에 처음부터 악이었거나 혹은 악의 영역으로 서서히 침범하는 여성 빌런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펜트하우스'는 대한민국 최고 화두인 '부동산'과 '교육'을 둘러싼 가진 자들의 핏빛 욕망, 그 민낯을 꼬집는 스토리로 극강의 강렬함을 선사했다. 더불어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실들이 드러나면서 가해지는 복수와 이를 통해 추락하는 악인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는 서스펜스 복수극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빌런으로 지칭되는 여성 캐릭터들에게 진부한 악녀의 이미지에서 한발 더 나아가 뚜렷한 개성과 생명력을 부여한 게 주효했다. 부와 명예를 향한 일그러진 욕망으로 악랄함의 끝을 표현했던 천서진(김소연 분), 자식을 지키기 위한 애끓는 모성애로 깊은 여운을 선사했던 오윤희(유진)와 심수련(이지아)은 선악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인과응보를 거쳐 결국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막장 드라마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달라졌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가 마구 쏟아지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막장극의 경쟁력을 단순히 "자극적이기 때문에 본다"는 식의 해석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저 많은 자극을 준다고 현혹될 만큼 대중은 우매하지 않다.

한 외주 제작사 관계자는 "해외 작품과 비교하면 국내 작품은 '막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그들의 폭력성과 선정성 수위는 높은 편"이라며 "다양한 OTT 플랫폼이 등장하고 다양한 작품을 소비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막장극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게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캐릭터와 이야기가 좋아야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소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악녀는 진화한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대중의 시청 행태는 바뀌었다. 이제 본방 사수를 위해 TV 앞에 앉아 정주행하지 않는다. OTT나 IPTV, 케이블 채널 등을 통해 시청하거나, 그도 여의치 않을 때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거나 유튜브 등을 통해 엑기스만 짜깁기한 장면을 몰아본다. 그 점에서 자극적 설정과 장면, 흥미로운 대사가 많은 막장극이 좀 더 어필하기 좋은 환경인 건 분명하다.

'펜트하우스'에 이어 안방극장이 한동안 여성 빌런들로 넘쳐났던 이유다. 지난달 종영한 KBS 2TV '미스 몬테크리스토'는 한 여인의 독기 어린 복수를 다뤘다.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였던 오하라(최여진 분)의 질투와 탐욕으로 고은조(이소연)는 죽음까지 내몰리게 되고, 이후 파멸과 복수의 여신으로 돌아온 은조가 빼앗긴 인생을 되찾게 되는 과정을 다뤘다. 이소연이 개연성 있는 빌런이자 파멸의 여신으로 분해 전무후무한 복수의 쾌감을 선사했다.

'반전의 빌런' 으로 남다른 존재감과 임팩트를 선사한 SBS '모범택시'의 대모 백성미(차지연)도 빼놓을 수 없다. 대모는 '무지개 다크히어로즈'가 추구하는 사적 정의 구현의 그림자로 통했다. 때문에 대모의 등판은 '공적 정의가 피해자들의 아픔에 얼마나 공감하는가'에 질문을 던진 전반부의 문제 의식을 '사적 복수가 옳은 것인가'라는 고민으로 확장시키며 극의 완성도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최적화된 캐릭터 해석력과 아우라로 역대급 빌런을 소화해낸 차지연의 연기력이 발군이었다.

중년 여성들의 욕망을 전면적으로 다룬 tvN '마인'의 서희수(이보영)와 정서현(김서형)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빌런보단 센 캐릭터에 가까운 희수와 서현은 재벌가 며느리라는 환경에 주눅들기보단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여가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슬픔과 고통을 체화하고 나의 것이라 믿었던 것들에서 용감하게 벗어나 진짜 나를 찾아 나가는 단단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환호를 이끌어 냈다.

tvN '악마판사'에는 빌런이지만 천진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한 정선아(김민정) 캐릭터가 있다. 가상의 디스토피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악을 처단하는 이가 악마판사라는 독특한 설정의 이 드라마에서 정선아는 악마판사 강요한(지성)의 최대 숙적이지만 우아하면서도 무자비한 면모를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다만 그녀에게는 인간의 위선, 탐욕, 어리석음에 대한 분노 따위는 없다는 점에서 여타 빌런들과 차별된다.

김광원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 빌런들은 더욱 확실한 콘셉트로 승부함으로써 시청자에게 각인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더 매운맛의 악행과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자극적인 이야기와 볼거리에 천착하는 것 이상으로 시청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개연성 있는 캐릭터 구축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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