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팔방보리떡'…아무 맛도 안나는데? 그 맛에 자꾸생각나!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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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0-01   |  발행일 2021-10-01 제34면   |  수정 2022-05-23 06:44
투병중이던 아버지가 좋아했던 맛 구현
단맛 1%…건강식·환자간식용으로 인기
병아리콩 넣은 다이어트 콩국도 선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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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즐기던 보리떡. 아들이 시행착오 끝에 보릿가루와 막걸리의 황금 배합비율을 알아냈다. 코로나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최근 인터넷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보리떡 옆 현미가래떡과 뽕잎밥알찹쌀떡도 추억의 포스로 앉아 있다.

우린 예전 그걸 못생긴 '빵떡'이라 했다. 떡인지 빵인지 궁금한 그 떡. 바로 추억의 보리떡. 그 옆에 설 만한 간식거리는 요즘 교외 도로변 길목을 점령한 옥수수 술빵이다. 기자도 보리떡을 무척 좋아해 이런저런 가게를 자주 찾는다. 하지만 뭔가 1% 부족한 맛이다. 보릿가루를 너무 사용해도 원가가 부담되고 이윤을 위해 밀가루 등을 첨가하면 촉촉한 맛이 사라지고 물먹은 건빵 같은 질감이다.

◆어쩌다 보리떡 장수

최근 북구 유통단지 근처에 있는 '팔방보리떡'을 발견하게 됐다. 김현조(54) 사장은 성주군 출신으로 전문대 전산학과를 나와 지역의 모 무역회사 전산실에서 5년 머물다가 덜컥 '보리떡 인생'의 주인공이 된다.

그의 부친은 위암에 걸려 3년간 식사 관리하는 과정에 평소 좋아하시는 보리떡을 많이 먹게 된다. 나중엔 이 집 '내림음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회사냐 사업이냐를 놓고 방황하던 시절,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제대로 된 식사가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눈여겨 둔 보리떡 가게에서 허기를 채웠다. 그 집이 바로 현재 그가 운영하는 가게다.

팔방보리떡의 전 주인은 떡보다 목공예에 심취해 있었다. 그도 거기서 목공 레슨을 받다가 주인의 권유로 가게를 인수하게 된다. 2015년 3월이었다.

주인이 가르쳐 준 레시피는 빛 좋은 개살구랄까….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었다. 먹을 땐 쉬운 것 같았는데 막상 만들려고 하니 모든 과정이 걸림돌이었다. 보릿가루와 막걸리, 거기에 밀가루를 적당량 섞어 넣고 쪄내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여름과 겨울철의 배합 비율이 다를 뿐만 아니라 떡을 만드는 날 습도와 온도를 감안해 황금비율의 배합률을 적용해야만 했다.

◆최적의 막걸리를 찾아라

보리떡에 최적화된 막걸리부터 찾아야만 했다. 지역의 모 막걸리를 사용했다. 하지만 반죽이 제대로 부풀지 않았다. 문제는 제대로 된 발효균이 부족했던 것이다. 답답한 나머지 직접 담가 사용해 보기도 했는데 비효율적이었다. 직접 공장에 전화를 걸어 담당 연구원에게 '왜 이 막걸리로는 보리떡 반죽이 잘 부풀지 않는지' 질문을 했다. 알고 보니 예전 막걸리와 달리 현재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진 공장표 막걸리에는 효모균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잘 부풀지 않았다. 그날부터 일반 슈퍼에 유통되는 여러 막걸리를 갖고 일일이 실험을 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게 부산의 모 막걸리였다.

가급적 외국산에 의존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보릿가루도 고향에 있는 계정정미소 것만 사용한다. 한때 국산 보리쌀을 갖고 와 직접 분쇄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보릿가루만 사용하면 식감이 떨어질까 싶어 통보리에 통밀과 현미도 조금 섞었다.

그는 시중 보리떡은 건강한 사람을 겨냥한 것이지만 자기는 '웰빙 보리떡'이라 홍보했다. 당뇨병 등 성인병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단맛이 거의 없는 신개념 보리떡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막걸리 발효력을 증강시키는 소다도 다른 곳보다 5분의 1 정도만 사용한다.

단맛도 최소로 설정했다. 설탕 대용제로 등장한 사탕수수 원당이 가미된 스테비아를 선택했다. 단맛 비율은 거의 1% 정도. 일반인에겐 거의 단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밍밍하게 조정했다. 항상 '환자 전용 보리떡'이란 생각을 잊지 않았다. 콩도 병아리콩을 사용했다. 솔직히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씹는 과정에 특유의 맛을 감지하게 된다.

◆거친 밀가루가 좋아

시루도 스테인리스스틸보다 소나무 시루를 사용해 떡을 쪄낸다. 밀가루도 시중에 유통되는 걸 사용하지 않는다. 일반 농가에서 도정한 껍질이 살아 있는 거친 밀가루를 사용한다. 모친은 남편 때문에 보리떡 장인이나 진배없었다. 이젠 자식이 새로 시작한 떡 작업을 뒤에서 도와준다. 모친은 그에게 최강의 사업 파트너인 셈. 지금도 작업장 2층에 모친이 기거한다. 7남매 중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제2인생을 위한 보리떡, 모친의 맘이 얼마나 짠하겠는가.

모친은 평생 단맛에 길들여 있었다. 아들이 만든 건강 보리떡은 '당최 싱거워' 못 먹겠단다. 그럼 아들은 모친에게 넌지시 '이젠 맛있는 것보다 건강한 빵이 최고'라며 모친을 놀린다.

생각잖은 단골도 생겨났다. 이민 간 자식이 고향 부모 드리려고 그가 최근 가동하기 시작한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와 배송 주문을 한다. 전남 고흥군 나로 우주센터연구실 연구원, 의사, 교사 등은 물론 수행 중인 스님들도 이 떡을 자주 주문해 사 먹는단다.

◆상품 다각화

현장 판매대만 믿고 손님을 무한정 기다려선 밥 먹고 살기 어려운 게 보리떡이다. 아직 어느 정도 연세가 있는 분들한테 더 익숙하다. 그래서 온라인판매망을 강구했고 제품도 다각화했다. 한때 인근 병원 앞에 좌판을 깔기도 했다. 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대백프라자, 롯데백화점 대구점 등에도 진출해 봤지만 비효율적이었다.

2016년 새로운 판매망을 찾는다. 바로 '인터넷 판매'다. 병원 방문할 때 알맞은 선물용, 농가 새참용, 환자 간식용 등으로 팔려나갔다. 이밖에 돼지감자현미가래떡, 돼지감자 현미떡국떡, 귀리에 쪄낸 현미를 건조한 뒤 롤러로 압축해 만든 오트밀은 국내 첫 유통상품이었다. '뽕잎밥알찹쌀떡'도 연구의 산물이다. 뽕잎을 소금물에 삶아 건조한 뒤 분쇄하고 거기에 찹쌀을 섞어 외피를 만들고 병아리콩에 흰 강낭콩을 1대 1로 섞어 삶아 소로 사용한다. 지난 8월부터는 병아리콩에 땅콩을 20% 짓이겨 넣은 다이어트 콩국까지 만들었다. 

글·사진=이춘호 전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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