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옛 그림을 본다는 것…"그림 감상은 화가 통해 나를 마주하는 일"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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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11-26   |  발행일 2021-11-26 제15면   |  수정 2021-11-26 08:27
저자 김남희 영남일보 연재글 모아 발간…그림에 깃든 작가의 삶 들여다봐
"우리는 작품과 무언의 대화 나눠…그림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지혜의 거울"

인왕제색도
정선 '인왕제색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옛그림을본다는것-바탕
김남희 지음/빛을여는책방/248쪽/1만5천원

이인성의 그림 '해당화'에 대한 저자의 글이다. '무심히 정면을 바라보는 여인과 눈을 감은 소녀가 해당화를 감싸고 있다. 환상적인 바다 위에 먹구름이 잔뜩 깔렸다. 곧 비가 내릴 것 같다. 배가 평화롭게 항해하는 중이다. 금빛 해변에는 그림처럼 말이 서 있다. 소품으로 배치한 소라와 우산, 거친 바위 등 곳곳에 복선이 깔려 있다. 아름다움을 가장한 묵시적인 저항의 메시지를 던진다. 여인은 봄이 왔건만 계절에 상관없이 스카프를 두르고, 두터워 보이는 옷을 입고 있다.'

화가이자 미술책 저술가인 김남희의 그림에세이다. 영남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김남희 그림에세이' 글을 모은 것이다. 옛 그림에 깃든 화가의 삶과 시대상, 작품의 조형세계 등을 살펴봄은 물론,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하기도 한다. 대상 작품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부터 심전 안중식의 '탑원도소회지도'에 이르는 옛 그림 30점과 이중섭의 '흰소'에서부터 이영석의 '작품 2012-24'까지의 근현대 작품 8점이다. 이를 전체 3장으로 나누어 구성하고, 각 장 뒤에는 '덧글'이라는 코너를 배치해 변화와 재미를 더했다.

저자는 말한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한 시대를 만나는 일이자 역사를 마주하는 일이다. 또 화가의 삶과 그 시대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지난 시대와 역사, 그리고 화가의 영혼을 느낄 수 있다."

먼저, 옛 그림을 만난다는 것은 화가의 인생을 만나는 일이다. 겸재 정선은 병든 친구의 쾌유를 기원하며 '인왕제색도'를 그렸다. 표암 강세황과 연객 허필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우정을 쌓았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에 스승 강세황이 화제를 써주기도 했다. 이처럼 그림에는 화가의 삶과 인생의 여정이 담겨 있다. 우리는 이런 그림에서 위로를 받거나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 그림을 감상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한다.

두 번째는 시대를 만나는 일이다. 작품은 시대의 변화를 읽고 보는 역사책이다. 지금 코로나19로 혼란을 겪는 것처럼 조선시대에도 전염병과 외침, 자연재해가 있었다. 수난의 시대를 극복하면서 삶의 지혜를 터득했다. 조선 후기에는 여행 붐이 일고 산천을 유람하는 문화가 유행했다. 관념산수가 대세를 이루던 시대는 가고, 진경산수화가 화단을 이끌었다. 양반 중심의 그림에서 서민을 주인공으로 한 풍속화가 시대의 삶을 기록했다. 정치가 변하고 사람들의 의식과 문화도 바뀌었다. 그림은 화풍의 변화와 유행, 역사를 담고 있는 그릇이다.

세 번째는 조형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작품은 체질과 체형이 제각각이다. 그림의 기법과 구도 등의 조형적인 면을 알면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화가는 색채와 기법을 사용하여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개성적인 체형과 채색은 작품의 맛을 더 깊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화가답게 작품의 기법과 구도 등의 조형적인 설명에 더 신경 썼다.

네 번째는 앞의 세 가지를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옛 그림을 본다는 것은 화가를 만나고, 시대를 만나고, 작품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만나는 일이지만, 결국 조우하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자기 자신이다.

"그림은 거울이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자신과 마주한다. 작품과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작품에서 우정을 엿듣는다. 멋진 풍경을 보며 가슴 벅찬 순간을 경험한다. 그림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지혜의 거울이다."

저자는 앞의 네 가지 사항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길지 않은 글들 속에는 화가의 삶과 시대와 조형세계, 그리고 저자의 모습이 어우러져 있다. 이런 스타일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글을 접하는 독자들이 저자가 그랬듯이 작품을 통해 자신을 만나라는 뜻이다. 독자와 무관한 옛 그림이 아니라 독자의 삶에 의미를 더해주는 재료로서 옛 그림을 가까이하라는 것이다.

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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