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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 (변호사) |
순우리말인 핫바지는 솜으로 만든 바지다. 품을 넉넉하게 만들어 허리끈만 있으면 누구라도 입을 수 있도록 만든 옷인데, '무식하고 어리석은 촌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주로 쓰인다.
핫바지를 꺼낸 이유는 국민의힘 최고위원인 김재원 때문이다. 여당이 서울 보궐선거판에 무공천을 결정하니 그 당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구 중구-남구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구시장을 넘보던 국회의원 곽모씨가 아들이 받은 퇴직금 50억원으로 물러나는 탓에 치르는 보궐선거에 차마 후보를 낼 염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같은 날 치러지는 대선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발표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 당의 최고위원인 김재원이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 당선되어 복귀하겠다"라고 공표했는데, 이 사태를 두고 국민의힘이 논란 끝에 "복당 불허" 방침을 밝혔고 그 양반은 곧 꼬리를 내렸다. 역시 같은 당 소속이었던 주성영 전 국회의원이 울진에서 대구까지 택시를 타고 온 거냐 아니면 불려 온 것이냐는 이상한 논쟁이 엇갈린다는 후속보도가 나오고, 중구-남구에 출마의사를 밝힌 10명이 넘던 그 당 소속 후보들은 불출마파와 탈당-출마-당선-복당파로 나뉜 것이 작금의 상황임을 대구시민들은 다 안다.
신문보도를 접하면서 '핫바지'가 떠올랐다. 핫바지론은 40여 년 전 김종필 전 총재께서 충청도 홀대론을 빗대어 유명해졌고 지금도 무시해도 괜찮은 존재의 상징처럼 자주 쓰인다. 공당의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이 자신의 당에서 자진 탈당하고 선거에 나선다는 것은 익히 봐온 풍경이니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런 짓을 하더라도 무난히 당선된다는 계산법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당선되면 그 당에서 금의환향자처럼 예뻐하며 받아줄 것이라는 믿음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나아가 복당불허 방침을 접하자마자 출마를 접는 건 또 뭔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지도자를 뽑는 절차이고 나라의 근간을 세우는 중요한 과정이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후보는 겸손해야 하고 유권자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며칠째 진행된 이 작태는 정치와 선거를 저잣거리의 물건 흥정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이고 그들은 중구-남구 유권자를 내심 핫바지로 여기고 있음에 틀림없다 싶다. 게다가 그들이 그렇게 오만한 까닭이 지역에 사는 우리가 너무나 오랫동안 분별심을 잃었기 때문인 것 같아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겠다. 대구 출신이라고 한껏 우쭐댔지만, 알고 보니 머슴들로부터 '핫바지' 대접을 받고 있음에 불과했음을 타 시·도민에게 드러내고 만 것 같아 부끄럽기만 하다.
정재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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