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배치'…아베 발언에 일본 정치권 들썩

  • 입력 2022-02-28 16:29  |  수정 2022-02-28 16:32
기시다 "인정 불가"…불안감 고조에 방위체제 재편 가속 가능성
'적 기지 공격 능력' 명칭 변경 검토…연립 여당 반대 피하기 전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국제 정세가 불안정해진 가운데 일본 정치권이 방위력 증강 문제를 놓고 들썩이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발언이 계기를 제공했다.


27일 후지TV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일부가 채택하고 있는 '핵 공유' 정책을 일본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베 전 총리는 소련 붕괴 후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라루스가 핵무기 보유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 러시아, 영국이 주권과 안전보장을 약속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언급하고서 "그때 전술핵을 일부 남겨뒀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논의도 있다"면서 핵 공유에 관해 "일본도 여러 선택지를 내다보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핵 공유는 미국의 핵무기를 자국 영토 내에 배치해 공동 운용함으로써 억지력을 확대하는 군사 전략이다.

냉전 시대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도입됐으며 핵무기가 배치된 국가와 미국이 모두 결단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을 택한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터키 등 5개국이 핵 공유 태세를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전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비춰볼 때 "세계의 안전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현실의 논의를 금기시해서는 안 된다"며 핵 공유를 거론했다.


그는 일본 헌정사상 최장기 총리로 재임하며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안보법제를 정비하는 등 일본의 군사 행동에 가해진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거듭했다.

그런 아베가 최근 정세를 발판 삼아 유일한 전쟁 피폭 국가인 일본에서 특히 민감한 핵무기 문제까지 건드린 셈이다.


피폭지인 히로시마(廣島)를 선거구(지역구)로 두고 있고 '핵무기 없는 세상'을 실현하는 것을 정치적 과제로 삼고 있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논란이 번지는 것을 차단하려고 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2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핵 공유에 관해 "비핵 3원칙을 견지하는 우리나라(일본)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국의 방위를 위해 미국의 억지력을 공유하는, 그런 틀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제조하지 않고, 보유하지 않고, 반입하지 않는다는 일본의 정책이다.

1967년 12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일본 총리가 중의원 예산위에 출석해 비핵 3원칙을 언급했으며 1971년 11월 24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가 비핵 3원칙을 준수한다는 것을 확인하는 결의가 가결된 바 있다.


야당 측은 기시다 총리의 답변에 대해 "전직 총리에게 할 말을 하는 것은 기시다 총리 외에는 없다. 제대로 전하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민영방송 TBS가 전했다.


핵 공유까지는 아니더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일본의 방위 체제 재편을 가속하는 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전 총리의 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이날 참의원 예산위에서 외교·안보정책의 장기 지침인 국가안전보장전략을 개정할 때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영하겠다는 생각을 표명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이 보유 여부를 검토 중인 '적 기지 공격 능력'이 "국민의 이해를 얻기 위해 제대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과제"라면서 명칭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이날 표명했다.


적 기지 공격 능력은 일본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탄도 미사일 발사 기지 등 적국의 기지나 군사 거점을 폭격기나 순항 크루즈 미사일 등으로 공격해 파괴하는 능력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선제공격과 다름없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자민당 등은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반대나 헌법 9조 위반 논란 등을 피하고자 적 기지 공격 능력의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제시해 왔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민영방송 TV도쿄와 함께 일본 유권자를 상대로 25∼27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침공이나 국경 변경을 중단시키지 못하는 경우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 행사로 파급할 것을 우려한다'는 답변이 77%에 달했다.
아베 전 총리는 후지TV 프로그램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범한다면 대만의 유사(有事·비상 사태)가 곧 일본의 유사라는 견해를 다시 한번 피력한다"고 지난해 12월 자신이 했던 발언을 다시 했다.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예전 같으면 헌법 9조나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을 법한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일본 헌법 9조는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무력 행사나 전쟁을 포기하며 전력(戰力)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수방위는 무력 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사용하고 실력 행사방식도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 그치도록 한다는 원칙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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