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 울산 울주군 작괘천 작천정과 벚꽃길, 새하얀 벚꽃잎 하늘 가리더니…자수정빛 작괘천에 내려앉았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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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08   |  발행일 2022-04-08 제16면   |  수정 2022-04-0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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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정 벚꽃길은 수남 벚꽃길이라고도 부른다. 마을 앞 약 1㎞ 정도의 산책로에 300여 그루의 벚나무가 늘어서 있다. 1937년 봄에 도로로 개설했고 지금은 벚꽃 명소로 이름나 있다. 늘어선 벚나무 줄기 사이로 수남마을이 환하다. 골목길에, 담벼락에, 노랗고 붉은 꽃들이 조용하다.

 '꽃 몸살'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는 '꽃이 필 무렵 갑자기 추워지면서 꽃이 피는데 장애가 일어나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이와 연동되는 말이 꽃샘추위다. 꽃이 피는 걸 시샘한다니 얼마나 깜찍하나. 시샘하던 추위가 슬몃 누그러지면 꽃들은 몸살을 털고 발그레 피어난다. 이제 사람이 꽃 소식에 몸살이 나고 그예 우루루 나서면 길도 꽃 몸살, 사람도 꽃 몸살이다. 꽃 때문에 몸살이다. 꽃비에 흠뻑 젖은 채로 계곡 정자에서 물바람을 맞았으니 오스스 이번 꽃몸살은 꽤나 오래겠다.

수남마을 벚꽃길 1937년 천도교인들 노력으로 조성
농로뿐이었던 곳 봄 소식 전해주는 벚꽃명소 재탄생

작괘천에 세운 작천정, 日강점기때 몰수 위기 처했다가
여류시인 이호경·독립운동가들 노력으로 지켜낸 곳
바위 곳곳 자수정빛 '포트홀' 반딧불이처럼 밤엔 더 빛나


◆수남마을 작천정 벚꽃길

천은 영남알프스 간월산 홍류폭포에서 내려온다. 동남쪽으로 흘러 울주군 삼남면 교동리 수남마을을 지나 상천천에 합류하고 함께 남천이 되었다가 태화강이 되었다가 바다로 간다. 간월산계곡이 시나브로 들로 펼쳐지는 곳이 수남마을이다. 수남(水南)은 '물 너머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순우리말인 '물나미'를 이두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수남마을 입구에 '작천정'이라 새겨진 표석이 서 있다. 그 뒤로 하얀 벚꽃길이 이어진다. 마을 앞 약 1㎞ 정도의 산책로에 300여 그루의 벚나무가 늘어서 있다. 지금은 꽃 터널이다. 터널의 끝에 작천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그래서 '작천정 벚꽃길'이라고 부르고 '수남 벚꽃길'이라고도 부른다.

작천정 벚꽃길에 하얀 꽃그림자가 깊다. 걸음마다 어질하다. 작고 여린 꽃잎이 눈보라처럼 흩날린다. 차갑지 않고 날카롭지 않은 이 봄날의 벚꽃 비에 몸과 마음이 압도된다. 꽃비를 만났다는 것은 절정이 지났다는 뜻이지만 아니다. 꽃은 언제나 절정이다. 이곳의 벚나무는 나이가 백 살 전후라 한다. 둥치가 하도 커 두 사람이 껴안으면 손이 닿을 듯 말 듯하고 두 사람이 기대어도 넉넉히 남는다. 눈부신 꽃 때문에 혹은 깊은 꽃그림자 때문에 더욱 까만 줄기는 차라리 바위 같다. 그 단단한 몸을 뚫고 순이 나오고 꽃을 피웠다.

길가에는 카페와 식당이 늘어서 있다. 커피향이 꽃향이다. 누워서 꽃 하늘에 잠기라고 평상도 펼쳐 놓았다. 무엇이 하늘이고 무엇이 꽃인지 알 수 없다. 늘어선 줄기 사이로 마을이 환하다. 골목길에, 담벼락에, 노랗고 붉은 꽃들이 조용하다. 차들은 가까운 이면도로로 우회한다. 주변에는 주차장, 화장실, 족구장, 축구장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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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은대' 바위 뒤로 작천정이 우뚝하다. '모은'은 '포은 정몽주를 사모한다'는 뜻으로 고려 말 포은이 이곳에서 책을 읽었다고 전한다. '모은대' 뒤쪽에 '이구소' 각자가 있다.

원래는 전부 들이었다. 길은 수남마을 뒤를 관통하는 농로뿐이었다. 길을 내려면 땅이 필요했고 지주들은 쉽사리 응하지 않았다. 설득하는데 10년이 걸렸다. 1937년 봄 이 길이 생겼고 3년에서 5년생 벚나무 묘목이 식재되었다. 천도교인이었던 곽해진 삼남면장을 주축으로 상북면장 김석한과 언양면장 박영한이 합의해 상북과 삼남에서 각 200명, 언양면에서 300명이 노역해 이 길을 만들었다. 벚나무 묘목 자금은 당시 울산군 교육위원 언양면 입후보자였던 하봉철이 선거운동비조로 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길섶에 번듯한 비석 하나가 서 있다. '나주임공휘한동효행(羅州林公諱漢東孝行)'까지만 읽힌다. 마지막 '비(碑)'자는 땅에 파묻혔다. 길을 정비하면서 신경을 안 쓴 모양이다. 벚꽃길 끝 산자락에는 '인내천(人乃天)' 세 글자가 새겨진 바위가 있다. '인내천'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천도교 정신이다. 울산지역에 천도교가 들어온 것이 1910년, 바위글자는 1915년에 새겨졌다. 울산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2일 언양 의거로 시작되었고 주축은 천도교인이었다고 전한다. 그때 일제의 총칼에 상처를 입은 이들이 '손입분, 복득이 엄마, 곽해진의 모친 길천댁, 김종환, 정달조 등'이라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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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원종공신추모비각과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바위. 바위에는 김정서·선극예 등 10인의 이름이 붉게 새겨져 있다(위쪽). 작괘천의 포트홀. 옛 사람들은 접시 모양의 포트홀이 술잔(酌)을 걸어둔(掛)듯 보였나 보다. 그래서 천의 이름은 작괘천(酌掛川)이다.

◆작괘천 작천정

천으로 내려간다. 넓디넓고 하얗고 하얀 바위, 그 위에 툭툭 놓인 거석들, 그리고 수많은 포트홀에 우뚝 서버린다. 선경이다. 현실 같지가 않다. 너럭바위의 가장자리에는 수천 수억 년 흘러내린 물살의 흔적이 치마 주름처럼, 선녀의 머리카락처럼 펼쳐져 있고 계류의 가운데에는 도랑형의 포트홀이 놀이동산처럼 미끄러진다. 그리고 그들 주변으로 사발 같은 접시 모양의 포트홀이 줄지은 듯 흩어져 있다. 옛 사람들은 저 사발 같은 포트홀이 술잔(酌)을 걸어둔(掛)듯 보였나 보다. 그래서 천의 이름은 작괘천(酌掛川)이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가 이곳에서 책을 읽었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도 작괘천은 명승이어서 바위마다 시인 묵객의 이름이 숱하게 새겨져 있다.

고종 32년인 1895년 봄, 언양 현감으로 부임한 정긍조(鄭肯朝)가 여러 선비를 초대해 이곳에서 시회(詩會)를 열었다. 시회를 마친 후 그들은 헌산시사(窟山詩社)를 결성하고 성금을 모아 정자를 건립하기로 결정한다. 정자는 1902년이 돼서야 완공되는데 그것이 바로 작천정(酌川亭)이다. 현판 글씨는 서예가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이 썼다. 정자 맞은편 산자락에 작천정 건립에 관여한 헌산시사 회원 135명의 이름과 호가 새겨져 있다. 작괘천과 작천정은 모두의 것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토지 조사가 시작되자 작천정은 몰수 위기에 처했다. 그때 작천정 기문을 쓴 오병선(吳昞善)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를 내고 이후 울산 거부 김홍조(金弘祚)에게 팔아버린다. 김홍조가 첩인 구소(九簫) 이호경(李頀卿)과 즐기기 위해 정자를 사유화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가 독립운동가였다는 기록도 있고 작천정 일대가 일제강점기 언양 청년들의 비밀결사 장소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특히 이호경은 뛰어난 여류시인으로 김윤식, 장지연, 한용운, 이해조, 유길준, 김규진 등과 활동했다고 한다.

작천정에서 가장 먼저 커다랗게 보이는 각자가 '이구소(李九簫)'다. 바위 뒤편에는 근명(謹銘) 송찬규(宋璨奎)의 '모은대(慕隱臺)'와 '모은대기(慕隱臺記)' 각자가 있다. '모은'은 포은 정몽주를 사모한다는 뜻이다. 어둑한 숲 그늘에는 '선무원종공신추모비' 비각이 있다. 비각 앞 계곡의 커다란 바위에는 공신들의 이름이 붉게 새겨져 있다. 호군(護軍) 김정서(金廷瑞), 그는 동래성 전투와 곽재우가 이끈 화왕산성 전투에서 활약한 분이다. 대호군(大護軍) 선극예(宣克禮), 그는 경상좌수사로 순절했다. 정(正) 이언량(李彦良), 그는 이순신 휘하의 군관으로 옥포해전에 돌격장으로 참전해 대승을 거둔 분이다. 이 외에도 7분의 이름이 선명하다. 작천정은 1922년에 다시 모두의 것이 되었다. 곽해진 등의 천도교인과 지역 지도자들의 노력이었다. 이후 작천정으로 향하는 벚꽃길이 생긴 것이다.

포트홀에 꽃잎이 떠 있다. 고인 물빛은 더러 붉다. 녹청빛·청보랏빛의 각석들이 자주 보인다. 작괘천 너럭바위는 백악기 화강암이다. 천 남쪽에는 '자수정 동굴'로 유명한 '옥산'이 있다. 자수정은 불화칼슘(CaF2)을 주성분으로 하는 형석이고, 형석은 화강암의 부성분이다. 그래서 달 밝은 밤이면 바위의 형석이 반딧불이처럼 반짝 거린다고 한다. 이구소는 이렇게 노래했다. '이토록 흰 바위가 또 있을까/ 그 사이로 맑은 내가 흐르네./ 달빛은 눈처럼 펄럭이며 비치고/ 여름 하늘에는 가을이 서렸네.'

작천정에 꽃비가 내린다. 꽃 때문에, 눈부시게 흰 바위 때문에, 끝없는 물소리 때문에, 그리고 생각하게 하는 수많은 이름 때문에 오스스 몸살이 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 Tip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가다 밀양 분기점에서 14번 밀양울산고속도로 울산방향으로 간다. 서울주 분기점에서 1번 경부고속도로 대구방향으로 가다 서울산IC로 나가 35번국도 양산·삼남 쪽으로 1.2㎞정도 직진하면 수남마을사거리가 나타난다. 마을입구 도로 가운데에 작천정 표석이 서있고 우회전해 들어가면 수남마을 벚꽃길이며 차량은 초입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 마을입구에서 국도 진행방향으로 180m 더 가면 오른쪽으로 작괘천 변을 따라 등억알프스길이 나 있다. 이 길로 들어가면 공용주차장이 있고 작천정 앞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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