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남해도·조도·호도, 해무에 싸인 섬 비경 황홀…고흐 작품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같아

  • 김찬일 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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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29   |  발행일 2022-04-29 제38면   |  수정 2022-04-2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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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 큰섬에서 바라본 죽암도.

새 형상의 소문난 바다낚시터 조도
정상서 내려다본 미조항·남망산 조망
슬쩍 보이는 돌산도 향일암도 장관
치유의 섬 힐링 센터선 '죽암도' 뷰
깎아지른 듯한 해식애 절경인 호도
야자 매트 깔린 길 걸으니 몽환적


시간의 미로를 헤매다 도착한곳, 파란 눈으로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는 미조항 앞바다. 영원한 박자로 철썩이는 파도에 몸을 누인 조도 도선. 오전 11시 10분 도선은 떠난다. 승객이라야 마스크로 얼굴 가린 여덟 분. 마치 시내버스 같은 정원 30인승 배라서, 선실 밖에 나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초행길이라, 앞좌석 할머니에게 조도에 대해 묻는다. 그러나 응대가 석연찮다. 그때 미조우체국 섬 집배원으로 근무한다며 자기를 소개한 김영매씨가 조도와 호도의 현지 상황을 알아듣게 설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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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 큰섬의 트레킹 로드.

"하선은 조도 작은 섬에 하셔서 작은 섬 둘레길 걸으시고, 이어 큰 섬 둘레 길도 트레킹 하시고, 다시 조도호를 타고 호도로 이동해 호도 트레킹을 하시면 됩니다. 조도와 호도 마을이 있지만, 젊은이들은 아들딸 공부 시키려 뭍으로 다 나가고 지금은 노인네만 섬을 지키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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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도 둘레길의 트레킹 로드.

얼핏 들으면 조도와 호도는 마치 노인요양원 같은 섬이라고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바다와 섬, 천혜의 어(魚) 자원, 맑은 물, 깨끗한 공기는 이곳이 노인의 천국이라고 말하면서 그녀의 눈자위가 방긋 피어났다. 그 사이 조도호는 큰 섬 거쳐 작은 섬 선착장에 배를 세운다. 일행인 대구 범어교회 장병선 장로, 작은 섬 주민 두 분, 김영매씨가 같이 내렸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미역처럼 흑갈색 눈인 김영매씨는 섬의 산타가 되어 마을로 사라진다. 그녀가 몽고반점 같은 그림자를 끌고 가는 뒤태에,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유명한 논어 첫 장의 글귀 중 글자 한자만 살짝 고친 '유객(有客)이 자원방래(自遠方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아'이다. 의미는 '관광객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이다.

조도는 새가 날고 있는 형상의 메타포다. 작은 섬은 머리이고, 작은 섬과 큰 섬을 잇는 땅은 목이고, 큰 섬은 몸통에 해당한다. 작은 섬 지바랫길로 간다. 길가에 새섬점빵이 있다. 막걸리, 커피, 과자, 컵라면을 판다. '점빵'인데 정작 빵은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점빵은 만물상회 구멍가게를 말한다. 아련한 추억속의 점빵은 막걸리 잔 놓고 그날 피로를 푸는 활력 장소이자, 사랑방 역할을 했던 휴식 장소였다. 그러나 편의점이 나타나면서 점빵은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났다. 그렇게 철새처럼 사라진 점빵이 이곳에 느닷없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점빵은 세월 따라 잊혀가는 사투리의 해시태그가 되어 버렸다.

데크길을 걷는다. 잔잔한 바닷물, 미니 해수욕장, 큰 섬이 세마치를 이루어 비경을 만든다. 데크 끝나는 곳에 해식애가 나타나고, 섬 밖 외해가 한눈에 포박된다. 저 멀리 돌산도 최남단 향일암이 해무로 아슴아슴하게 보인다. 바닷가 갯바위지대에 낚시꾼이 낚시를 한다. 조도·호도가 소문난 바다낚시터라고 한다. 이내 언덕마루 정상(45.3m)에 오르고, 남해도 쪽으로 애도와 사도, 그 멀리 금산이 조망된다. 우로 미조항이, 그 뒤편에 남망산이, 그 아름다운 해안선이, 2개의 유인도와 16개의 무인도가 옅은 바다 안개에 정말 상상풍경을 만든다.

'아아 하느님. 당신의 천지창조. 거룩하고 거룩합니다.'

눈을 새우로 뜨고 풍경을 애면글면 응시하는 장병선 장로가 그렇게 말을 삼키는 것 같았다. 이제 큰 섬으로 간다. 야자 매트가 보인다. 큰 섬 둘레길이다. 장산곶 정상 코스는 생략하고, 해안 둘레길을 또박또박 걷는다. 큰 섬 고갯길을 넘으면서 본 미조항은 영판 명작 그림이다. 남해의 최남단 어업 전진기지인 미조항, 구불구불한 해안선과 우뚝 솟은 금산, 남해지맥의 끝인 남망산을 다시 줌으로 당겨본다.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처럼, 풍경은 그 이미지가 영적이다. 불과 재건축 아파트 높이만큼의 고도상승인데, 남해섬 최남단 경치는 메타버스 같이 초감각적으로 탈바꿈한다. 그 남해지맥 너머에는 우리의 공허한 꿈들이 떠돌고 있을까.

이내 큰 섬 마을이 나오고, 마을 뒤 언덕배기에 다이어트 보물섬 사업 장소 '치유의 섬 힐링 센터' 건물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공 250억, 민자 150억 투자하여 호텔, 빌라, 다이어트 센터, 카페, 전망대, 치유의 숲을 2023년 완공 계획이라 한다. 거기서는 죽암도와 작은섬, 쌀섬과 해안벼랑길이 보인다. 낚시꾼들도 제법 보인다. 그리고 먼 바다와 황홀한 풍경은 사업가들이 왜 여기에 투자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제1데크 전망대에 도착한다. 오션 뷰 포인트다. "오 마이 갓!"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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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 큰섬 전망대로 가는 도장갯길.

해가 정오에 설핏해 가져온 빵으로 점심을 먹는다. 끼니를 때우고 자리를 턴다. 트레킹 로드는 꿈과 환상으로 새끼를 꼰다. 강화강판 다리를 건넌다. 바닥아래 아찔하게 바다가 보이고, 나도 모르게 떨리는 목젖으로 사도신경이 튀어 나온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 이 사도신경은 사라지지 않고 대자연에 고스란히 저장된다. 그게 영혼의 게놈이 된다. 오늘따라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그걸 내가 믿어야 된다는 경험이 너무 절실해 집중력으로 마음에 사경(寫經)을 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이어지는 로드는 꿈과 별, 섬의 삼각편대다. 제2데크 전망대도 거치고, 큰 섬 내린봉길이 끝나면서 우리가 하선한 작은 섬 선착장에 도착한다. 잠시 후, 조도호에 승선해 호도로 떠난다. '아아아 새야. 영겁의 바다에 누워있는 새섬아. 네가 날아오르는 미래의 날에도 이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울까.'

호도는 해변의 해식애가 가파르다. 마치 우람한 근육을 자랑하는 성체 수호랑이처럼. 단 하나 마을가는 길은 포장도로이지만, 옆에 모노레일도 있다. 애줄 없이 걸어서 마을로 간다. 과거 초등학교 분교로 보이는 건물 뒷길로 가다가 우측으로, 한 번 더 우측으로 튼다. 야자 매트 깔린 트레킹 로드가 로맨스 영화 첫 장면처럼 클로즈업 된다. 파노라마 바다 풍경은 정신마저 멍멍하게 한다. 오늘따라 저 바다가 왜 그리 가슴에 조곤조곤 스며드는지. 앞서가는 장병선 장로가 혼잣말을 한다. 아마 성경을 독백하는 것 같다. 나도 청년 백수시절 교회에 다닌 적 있다. 교회는 우리 동네 뒤 언덕배기에 있었는데, 목사님은 정말 가난한 분이셨다. 그러나 설교할 때, 그 형형한 눈빛은 반딧불이 같았다. 어느 주일날 그의 설교는 지금도 귓속에서 징글벨 방울처럼 딸랑딸랑 울린다.

"지난밤에 꿈을 꾸었지요. 꿈속에서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은 텅 비어있고, 돌아가신 목사님 중 아시는 분은 한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암니옴니 물어 보았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왜 여기에 목사님이 안보이십니까. 하느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돈으로 내 아들을 시험하는 자는 절대 나의 나라에 올 수 없느니라. 아버지 그럼 저는 어떻게 됩니까. 내 아들아 너는 나의 나라에 올 수 있다. 네가 올 때쯤에는 지옥이 만원이 되기 때문에 천국 입주권 없이도 나의 나라에 올 수 있느니라." 이렇게 말하고는 폭소를 터트렸다. 우리도 참았든 웃음을 기어코 터트리고 말았다. 그의 설교는 나의 기억에 칩으로 남아 곧잘 나를 흔들어 깨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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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그렇게 여행객이 그러하듯 걷는데, 동백숲길이 나오고, 거기를 지나면서 동백꽃향기가 코를 쥐어박아 어지럽기도 했다. 버덩 묵밭에 검은 염소 두 마리가 서 있다. 다가가도 반응이 없다. 무의미하다. 고개 마루를 넘고, 마을을 지나니 선착장이 나온다. 방파제 너머 조도호가 들어오고 있다. 미지의 여행지였든 조도·호도 트레킹. 기대와 불안감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기쁨과 즐거움만 회상되는 오늘 트레킹. 수많은 손과 눈을 가진 아름다운 바다는 약하고 고통받는 자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과 눈이기도 했다.
글·사진=김찬일<시인·대구힐링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문의 : 조도 호도 도선 조도호 선장 / 010-9908-7587
☞내비 주소 :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168-44 (조도호 선착장)
☞트레킹 코스 : 미조-조도 작은섬 둘레길 - 큰섬 둘레길- 호도이동-호도 둘레길
☞인근 볼거리 : 독일마을, 해오름 예술촌, 상주 해수욕장, 송정 해수욕장, 보리암, 관음포 이 충무공 전몰 유허, 용문사, 다랑이 마을, 남해 충렬사, 남해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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