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과 대구천 "대구 신천의 물길 변화는 있었다"

  • 백승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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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13   |  발행일 2022-05-13 제14면   |  수정 2022-05-13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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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언근·강경택 지음/교육과학사/308쪽/2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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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도심을 관통하는 신천(新川)과 관련된 논란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신천이 새로 생긴 하천이냐'이고, 둘째는 '신천의 물길(유로)이 변했느냐 아니냐'이다.

첫째 논란은 신천이 새로 생긴 하천이 아니라 '사이천, 샛내(또는 샛강)'라 불리던 것이 한자로 표기되는 과정에서 '신천(新川)'으로 오기된 것으로 어느 정도 일단락됐다. 하지만 '신천의 유로가 변화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여전히 논란이다.

신천의 유로 변화와 관련된 논란은 1924년 발행된 '대구읍지'에서 비롯됐다. 대구읍지에는 '원래 신천은 대구부의 서쪽에 있었다. 판관 이서가 수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아 동쪽으로 흐르도록 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1977년 대구시에서 간행한 '달구벌'에도 '신천의 유로를 돌렸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流路 논란 다각도 심층연구
"1778년 쌓은 제방으로 인해
동쪽만 흐르는 획기적 변화
대구천은 신천의 분류하천
삼정골 발원說 잘못된 해석"


반면 신천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대부분의 문헌에는 '신천은 대구부의 동쪽4리(또는 5리)에 있었다'라고 적혀있다. 이들 기록을 볼때 '신천은 유로 변경 없이 원래부터 동쪽으로 흐른 하천'으로 해석된다.

이 책은 신천의 유로 변화 여부를 두고 이를 심층적으로 다룬 연구서다. 현장 답사는 물론 다양한 고지도를 분석해 신천의 물길이 바뀌었는지 바뀌지 않았는지를 추적한다.

1부에서는 신천 충적평야 지형 특징과 하식애의 분포 특성을 통해 유로 변화의 가능성을 추론한다. 저자들은 "신천 좌안 충적평야 특성과 서부 침식저지 동쪽 말단에 발달한 하식애들의 분포 특성을 볼 때, 과거 어느 시기에 신천은 지금과 달리 흘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2부에서는 1부의 조사를 토대로 신천의 유로 변화 여부를 살펴본다. 이를 선상지성으로 발달한 신천 충적평야의 특성을 고려해 신천 본류와 신천에서 분류한 하천들로 나누어 검토한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대구시민의 삶과 불과분의 관계를 가졌을 신천 분류 하천들의 흐름 특성을 살피고, 이어서 신천 본류의 유로 변화 특성을 조사한다.

3부에서는 신천 논란의 원인인 이공제를 대상으로 향교와 읍성을 침수시킨 하천의 존재를 알아보고, 이를 토대로 이공제 건설 목적과 위치 및 규모 등을 밝힌다. 나아가 이공제 건설이 신천 좌안 충적평야의 하계망에 미친 영향도 살펴본다.

4부에서는 오늘날 대구 시가지의 토대가 형성된 대구읍성 축성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구 시가지의 시·공간적 발달 특성을 신천 본류 및 분류와의 관계를 통해 살펴본다.

5부에서는 신천 관련 논란들을 재해석한다. 이를 위해 신천 유로 변화의 핵심이자 대구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대구천을 대상으로 이공제 건설 이후 대구민들의 인식 속 대구천의 변화를 살펴본다. 이를 토대로 1924년 대구읍지의 특징과 1977년 달구벌의 문제점을 분석한다. 또 분석 결과를 종합해 신천 유로 변화와 그것에서 비롯된 신천 지명과 이공제의 위치 등 다양한 논란들을 재해석한다.

다양한 연구 분석을 통해 저자들은 "'신천의 유로 변화는 없었다'라는 주장은 잘못됐다. 이 같은 주장은 대구천을 신천의 분류하천으로 보지 않고, 앞산의 삼정골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보면서 생긴 잘못된 해석이다. 대구부의 동쪽과 서쪽으로 흐르던 신천은 1778년 이서가 쌓은 신천 제방(이공제)으로 인해, 대구부의 동쪽으로만 흐르게 되는 획기적인 유로 변화가 발생했다"고 결론 낸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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