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스스로 선택한 외딴섬, 아니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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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5-23   |  발행일 2022-05-23 제26면   |  수정 2022-05-23 07:10

[하프타임] 스스로 선택한 외딴섬, 아니 늪
노인호 사회부기자

6월 지방선거에서 대구시민 10명 중 7명가량은 자기 손으로 대구시의원을 뽑지 못한다. 29개 지역구 중 20곳(68%)에 국민의힘 소속 후보 단 한 명만 등록, 무투표 당선됐기 때문이다. 대구 중구청장과 달서구청장도 국민의힘 후보 단독 출마로 당선자가 이미 결정됐다. 경북에서도 예천군수, 55개 경북도의원 지역구 중 17곳(30%)이 유권자의 선택 없이 국민의힘 공천자가 도민의 대표자로 결정됐다.

상당수의 대구시민, 경북도민이 합법적으로 자신의 참정권을 빼앗겨 버린 셈이다. 무투표 당선자가 몰린 곳은 특정 정당이 선출직을 독식해 온 곳이다. 광역의원을 기준으로 무투표 당선자가 2자릿수 이상인 곳은 대구, 경북, 광주, 전북, 전남 등 5곳이다. 광주는 시의원 20곳 지역구 중 10곳(50%), 전북은 도의원 36곳 중 22곳(61%), 전남은 도의원 55곳 중 26곳(47%)이 '더불어민주당 공천=당선'이다. 기초단체장 무투표 당선자가 나온 곳도 대구, 경북, 광주, 전남 4곳이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 대구(12명)와 경북(13명)에선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한 홍준표 의원을 제외하면 지역구 모두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됐다. 호남지역에서도 무소속으로 당선된 전북 1명을 제외한 나머지 광주 8명, 전북 9명, 전남 10명 등 27개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런 탓에 대구시의회에는 시민의 선택을 단 한 차례도 받지 않고 재선 시의원이 되는 사례까지 나왔다. 시의원 재직 당시 시청에 부당한 청탁을 했다가 직권남용죄로 벌금형을 받았음에도 3선에 성공해 대구시민의 대표가 되는 경우도 생겼다. 시민의 선택 없이 정당공천만으로 당선된 이들이 누구를 위해 일할지는 뻔한 것 아닌가. 선택권도 없는 시민보다 공천권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이나 정당의 눈치를 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한 정당에 '몰빵' 한 대구경북, 그리고 호남 유권자들은 그들의 선택권을 스스로 특정 정당에 넘겨줘 버린 꼴이 된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받아들일 건가. 이게 정상적이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그칠 게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단독 입후보한 광역의원과 기초단체장은 투표자 3분의 1 이상 득표하도록 공직선거법을 다시 개정하자. 없던 게 아니다. 2006년까지 있던 규정을 부활, 좀 더 확대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 적어도 시민의 참정권이 제한되는 일 따위는 없어진다.

더 나아가 정당 공천 폐지나 비례대표 형태로 한 정당이 지역구를 독식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시장 독과점을 당연히 제한하는 것처럼 정치 독과점을 막을 안전장치는 당연히 필요하지 않을까.
노인호 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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