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육] 우리에겐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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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5 07:33  |  수정 2022-08-15 07:36  |  발행일 2022-08-15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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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예년과 다르게 빨리 8월 초에 개학을 했습니다. 2학기 첫 수업은 고전소설 '춘향전'으로 시작합니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춘향이의 목소리를 응원하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리베카 솔닛이 쓴 에세이의 일부분을 같이 읽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에서 리베카 솔닛은 "이제 우리는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미투 운동, 미국의 대선, 우익화, 반지성주의, 기후 위기 등의 이슈에 대해 날카롭고 비판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이 책에서 그는 현 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생각의 변화는 이전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싸워서 만든 귀한 선물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그 위로 우리가 쌓고 있는 변화에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을 초청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강조하지요. 독점되었던 이야기의 주체가 조금씩 변화하는 시대, 한쪽으로 향하던 귀가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하는 시대인 지금, 오래되고 진부한 이야기들은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세상과 싸우는 '춘향의 목소리'가 가진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또 다른 책을 소개하였습니다. 바로 '목소리 순례'입니다. 이 책은 농인 사진가 사이토 하루미치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 진정한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두 살 때 청각장애를 진단받은 뒤 바로 보청기를 끼고 발음훈련을 시작합니다. 일반학교에 다니며 들을 수 있는 사람인 척 스스로를 속이며 고독한 성장기를 보내던 저자의 삶은 고등학교를 농학교로 진학하며 변화합니다. 농인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농학교에서 '보이는 목소리', 수어와 만난 저자는 비로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고 진심으로 타인과 대화하는 법을 익힙니다.

사진가가 된 저자는 서로가 다르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소통하는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장애와 다른 몸이 경계가 아니라 새로운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화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다름을 서로 받아들이면서 관계를 맺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정의합니다. 춘향, 리베카, 사이토. 이 세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서 학생들이 자기만의 목소리를 지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길 바랍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서 요즘 제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디지털 리터러시입니다. 2021년, OECD의 국제 학생 평가 프로그램인 PISA는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이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피싱 사기 등을 구별하는 역량 평가에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읽기 능력 자체는 비교적 준수하지만 글에 담긴 맥락에 대한 고도의 통찰력이나 이해력은 부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해력의 핵심은 내가 모르는 것을 새로이 받아들이고 상상하며 이해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는 문화에 익숙해지면 문해력의 핵심을 놓치게 됩니다. 실제로 이는 우리 사회의 각종 집단 갈등, 혐오, 차별의 원인이 됩니다.

또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타인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결국 문해력이란 나와 타자가 속한 맥락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과 다르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다양한 입장과 맥락을 이해하기 전에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닫힌' 콘텐츠를 통해 누군가를 함부로 규정하는 일에 길들고 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 모두가 걱정하고 있는 문해력의 위기는 학생들이 다양한 목소리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에서 시작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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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동 경북대 사범대 부설고 교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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