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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체육주간부장 겸 NFT 팀장) |
얼마 전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극장을 찾았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온 '슬램덩크'를 보기 위해서다. 심해지는 노안과 늘어나는 백발로 우울감이 심해질 즈음 젊은 시절 가슴을 뛰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는 사실에 2만원 이상의 거금을 투자했다.
1990년대를 거친 40~50대에게 슬램덩크는 단순한 만화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외환위기로 인해 이전까지 상상도 못 했던 재벌계열의 대기업과 은행들의 줄도산 그리고 이어지는 구조조정이라는 천지개벽의 현실 앞에서 그때의 젊음은 무기력과 좌절 그리고 패배감 그 자체였다.
이런 상황에서 슬램덩크라는 만화는 많은 젊은이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었다. 주인공의 성장을 매개로 하는 스포츠물로서시대와 세대를 뛰어넘는 뜨거운 공감을 준 것이다.
개인적으로 슬램덩크의 부활은 반갑다. 돈 때문에 쉽게 목숨을 걸고, 이유 없이 남을 괴롭히고, 또 복수를 위해 더욱 잔인해지는 자극적인 이야기 홍수 속에서 우정과 노력 그리고 승리로 이어지는 단순하면서 순수한 스토리는 잊혔던 신선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전체 스토리를 관통하고 있는 '언더도그의 반란'에 대한 기대감도 또 다른 카타르시스다. 북산의 주전 5인방은 모두 언더도그이다. 운동신경은 뛰어나지만 자존심 센 풋내기, 팀플레이에 미숙한 1학년 에이스, 리더의 무게에 고뇌하는 주장, 화려한 과거와 불안한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옛 'MVP', 농구선수로 치명적인 단신의 가드 등. 이들 다섯 명의 언더도그가 각자의 약점을 이겨내 가면서 정상을 향해 한발 한발 성장하는 것은 '땀'과 '노력'의 가치와 결과를 보여줬다.
얼마 전 DGB대구은행파크에서는 대구FC가 현실판 슬램덩크를 연출했다. 개막 이후 3경기에서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던 대구FC가 강호 전북 현대를 홈으로 불러 승리를 기록한 것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대구FC는 시즌 전적 2무1패로 연이어 승리를 눈앞에서 놓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더구나 상대는 국가대표급 뎁스를 자랑하는 강호다. 당연히 승리에 대한 기대보다는 패배에 대한 걱정이 앞섰지만 많은 이의 예상을 뒤엎고 대구FC는 경기를 가져왔다.
'언더도그' 대구FC의 승리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승리에 대한 노력, 1만2천명 홈 관중의 노력에 대한 열정적 응원이 뭉쳐진 드라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X세대 이후 한 세대가 지나 MZ세대가 출현했다. 하지만 고달픈 현실은 되풀이되고 있다. 외환위기 사태 여파 속에서 취업 전선에 나서야 했던 X세대와 역대 최악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MZ세대의 모습은 거의 데칼코마니 수준이다.
하지만 힘들어하는 MZ세대에게 북산고의 성공은 좋은 타산지석이 될 것이다. 자존심 센 풋내기는 단순한 점프슛을 익히기 위해 2만번의 연습을 했고, 이기적인 에이스는 최후의 순간 앙숙에게 공을 돌린다. 주장은 주장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철저히 팀을 위한 플레이를 택하면서 절대강자를 이겨가는 '성장'을 보여준다.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도전하는 '언더도그' 북산이며, 영광의 순간은 언제나 지금이다.
홍석천 (체육주간부장 겸 NFT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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