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태의 제3의 눈] '세계 최악 대기오염 도시' 타이 치앙마이의 잔인한 3월이여!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방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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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3-29 08:37  |  수정 2023-03-29 08:39  |  발행일 2023-03-29 제24면
골초도 맥 못추는 '연기 지옥'…6월 장마철은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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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북부 도시 치앙마이는 3월 들어 세계 최악의 대기오염 지표를 기록 중이다. 정문태 방콕특파원
잿빛 하늘, 누른 연기, 태양이 사라졌다. 숨이 컥컥 막히고 눈물이 주루룩. 속은 메슥거리고 등줄기엔 이내 땀이 축축.

산길 난전에 자동차를 세우고 물과 고구마를 산 게 기껏 10분, 지옥을 오갔다. 치앙마이에서 꼬불꼬불 1천 고개를 돌아 버마와 국경을 맞댄 타이 최북단 매홍손이 눈에 차오를 즈음.

해마다 이맘때면 세계 최악 대기오염지수(AQI)를 기록해 온 치앙마이에서 스물두 해나 살아온 나는 제법 면역이 생긴 줄 알았더니 웬걸, 매홍손 연기 앞엔 맥도 못 췄다. 오죽했으면 40년 애연가인 내가 담배 한 모금을 빨고는 콜록콜록하며 불을 껐을까.

나흘 전 매홍손은 대기오염지수가 580까지 치솟았고, 초미세먼지(PM2.5)는 500마이크로그램(㎍/㎥)으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연간 대기질 가이드라인값을 100배나 웃돌았다. 이건 숫자에 아주 둔한 나마저 섬뜩함을 느낄만한 지수였다. "뇌졸중, 폐암, 호흡기질환 사망자의 1/3이 대기오염과 관련 있다." 세계보건기구 보고서를 굳이 꺼낼 것도 없이 한마디로 사람이 살면 안 되는 곳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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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최북단 매홍손의 산불 현장. 타이 정부는 산불 진압에 손을 놓았다. 정문태 방콕특파원
3월 들어 타이 북부는 어디 할 것 없이 연기로 뒤덮였다. 우리 동네 치앙마이 상징인 서산(도이수텝)을 못 본 지도 꽤 오래다. 치앙마이는 한 달째 대기오염지수 250~300을 오르내리며 세계 최악을 달려왔다. 한국이나 유럽에선 100만 넘으면 난리 치는 바로 그 지수다. 숨 막힌 치앙마이 사람들은 하루 내 그 지수를 들여다보며 걱정과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초미세먼지는 혈류를 파고드는 흡연과 같은 위험성을 지녔다. 22㎍/㎥마다 어린이와 노약자를 포함한 모두가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다." 치앙마이의대 심장전문의 룽스릿 깐짜나와닛 말은 치앙마이 사람들이 저마다 하루 열 개비도 넘는 담배를 피우며 산다는 뜻이다. 룽스릿은 10㎍/㎥(연평균)이 오를 때마다 총인구에서 사망자 6%가 늘어나고 수명 1.03년이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타이 정부의 대기오염 표준에 따르면 초미세먼지 120㎍/㎥이 한계치다. 300㎍/㎥은 위험 경보에다 비상사태가 떨어지는 지표다. 쉽게 말해 300㎍/㎥이란 건 시내 한복판에서 200~300m 앞을 제대로 볼 수 없고, 비행기가 끊기고, 눈물이 나고, 목이 따갑고 그리하여 학교가 문을 닫는 상태를 일컫는다. 그쯤 되면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총리란 자가 한 번쯤은 나타나 결연한 표정을 짓고 돌아간다. 뭐, 비상사태를 선포한들 싸구려 마스크 좀 돌리고 바깥나들이 줄이라는 훈수 둔 것밖엔 달리 한 일도 없지만, 아무튼 해마다 그 300을 가볍게 넘나드는 치앙마이에서 내가 겪은 최악은 예닐곱 해 전 860이었다. "절망적"이란 건 그럴 때 쓰는 말이었다.

해마다 건기인 12월부터 슬슬 피어오른 연기는 이듬해 3~4월에 온 천지를 뒤덮는다. 사실은 북부만 그런 것도 아니다. 오염지수가 좀 다를 뿐 동북부와 중부를 비롯한 타이 전역이 다 휩쓸려 든다.

30년쯤 전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다. 연기 주범이라는 화전과 산불은 그때도 있었다. 다만 그 시절 화전이란 건 산악 소수민족이나 농민이 산자락에 텃밭을 부쳐 먹는 전통 농작이었다. 타고 남은 재가 칼슘을 보태 땅을 기름지게 하고 병충해를 막는 그 화전은 오히려 생태적으로 환경에 도움을 준다며 숱한 학자들이 북돋우기까지 했다. 으레 내가 먹을 만큼 땅을 일궈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화전민이 문제 된 적도 없고, 요즘처럼 치앙마이를 비롯한 타이 북부가 연기에 시달린 적도 없다.

그러던 게 한 15년 전부터 옥수수와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같은 대규모 농산자본이 파고들면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바로 타이 사람들이 연기에 골병들기 시작한 출발지였다.

현실을 보자. 지난해 타이에서 생산한 옥수수가 520만t에 이른다. 그 520만t이란 건 오직 알갱이만 가리킨다. 옥수수 하나에 알갱이는 22%쯤 된다고 하니 2천만t 웃도는 몸통과 이파리가 해마다 연기로 변하는 셈이다. 그 옥수수를 최대 농산기업인 짤른 포카판(CP)을 비롯한 대형 업체들이 주로 짐승 먹잇감으로 사들였다.

옥수수·사탕수수 대규모 경작지
15년 전부터 파고들며 골병 들어
이파리 등 수천만t 이르는 부산물
해마다 불에 태워져 재앙 되풀이
타이 정부는 애꿎은 화전민 탓만
이웃나라 라오스 등에 떠넘기기도


그동안 환경 연구자들한테 뭇매를 맞아온 짤른 포카판이 내놓은 '2021 옥수수 개황보고서'란 게 있다. 얼핏 보면 사회적, 환경적 책임을 앞세운 듯하다. "산간과 보호림 지역 식재를 장려하지 않고…, 2016년부터 토지 소유권이 없거나 정부 인증을 안 받은 지역에서 생산한 옥수수 구매를 중단했고…." 대충 이런 내용인데 정작 내세운 20여 개 관련 프로젝트의 기간과 그 결과에 대한 보고는 어디에도 없다. 눈 가리고 아웅이란 뜻이다.

지난해 9천200만t을 생산한 사탕수수도 마찬가지다. 그 경작지가 경북도보다 1억평쯤 더 큰 58억평에 이른다. 2~6m에 이르는 대나무 같은 줄기에서 자당을 뽑고 나면 이파리부터 모조리 연기로 변한다. 모두 거대 농산자본들이 소농을 주무르며 벌어진 일이다.

이건 전통 화전민들한테 연기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뜻이다. 정부가 내세운 화전 금지법이란 걸 보자. '경작지에 잡초를 태우는 이들은 2천~1만4천밧(7만6천~53만원) 벌금이나 1월~7년 형에 처한다.' 애초 연기 주범인 농산기업의 플랜테이션을 겨냥한 법이 아니다. 그러니 큰 고기는 다 빠져나가고 늘 잔챙이들만 잡아 가뒀다. 그게 전통 화전 농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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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 10년 넘게 해마다 되풀이되는 연기 사태를 정부가 다잡을 맘도 없다는 뜻이다. 여태 또렷한 정책도 대안도 내놓은 게 없다. 걸핏하면 이웃 나라 버마니 라오스니 캄보디아에서 연기가 날아온다고 떠넘겼을 뿐.

연기, 크로스 보더(cross border) 맞는 말이다. 그러면 버마를 비롯한 이웃 나라에 진출한 타이 농산자본이 날리는 연기는 누구 책임인가. 그네 나라 정부가 툭하면 둘러앉지만 세금만 축냈을 뿐 연기는 해마다 더 짙어지기만. 시민이 숨 쉴 자유도 마련해 주지 못하는 이런 걸 정부라고.

화전만 문제도 아니다. 3월이면 온 천지가 달아오른다. 저절로 피어오르는 산불도 연기 주범 가운데 하나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기후 탓에 자연 발화 산불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들 한다. 3월 들어 국립공원야생동식물보전국은 번져나가는 산불 3천768개를 보고했다.

실제로 타이 북부 빠이, 매홍손, 매사리앙을 거쳐 치앙마이로 되돌아온 지난 사흘 여행길에 스무 개도 넘는 산불을 보았다. 한데, 단 한 군데도 소방 인력이나 진화 장비가 투입된 곳이 없었다. 정부 기능이 무너졌다는 뜻이다. 방콕만 붙들고 앉은 채 북부 사람들은 불에 타 죽든 연기에 숨 막혀 죽든 눈도 깜빡 않는 정부의 정체가 드러났다. 하긴 어제오늘 일도 아니었지만.

그러니 오늘도 치앙마이와 북부 사람들은 날짜만 꼽는다. 비라도 내려야 이 지옥이 끝날 텐데 6월 장마철은 아직 너무 멀기만.

눈이 따갑고 눈물이 찔끔찔끔, 목은 칼칼하고 메케한 냄새는 허파를 들락거리고. 화요일 오전, 이 칼럼 마감이 코앞까지 다가왔지만 도무지 뇌가 작동하지 않는다. 커피 잔만 늘어날 뿐,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치앙마이의 이 잔인한 3월을 어이할까나!

〈국제분쟁 전문기자·방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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