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박진만과 이승엽의 라이벌전

  • 홍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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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26 06:48  |  수정 2023-04-26 06:53  |  발행일 2023-04-26 제26면
라이벌은 공존하는 경쟁자
라이벌 가치가 나의 가치
동갑내기 박진만과 이승엽
삼성의 또 다른 성장 기대
열정·감동 주는 관계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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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천 체육주간부장 겸 NFT 팀장

우리 사회에서 외래어로 자리 잡은 '라이벌(rival)'이란 말은 원래 '강물을 함께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라틴어 '리발리스(rivalis)'에서 유래했다. 하나의 강을 함께 쓰는 두 마을은 강물이 풍족하면 나눠 쓰는 이웃이자 친구가 되지만, 부족하면 싸움을 벌이는 라이벌이 된다. 강을 따라 형성된 두 마을은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강을 놓고 늘 같이 쓰며 갈등할 수밖에 없다.

라이벌은 삶의 동반자이기도 하며, 때로는 넘어야 할 산이 된다. 우리나라 정치나 경제, 문화 분야에도 많은 라이벌이 존재했다.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을 '세기의 라이벌'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영남의 거두인 YS는 서울대를 거쳐 최연소 국회의원 등 전형적인 엘리트의 길을 걸은 반면 호남의 거목인 DJ는 상고를 졸업한 서민형 정치인이다. 성격적으로도 격정적인 YS와 진중한 DJ는 성격처럼 정치 스타일도 완전히 달랐다. 군사정권과 민주화 등 수많은 정치 역정을 거치며 비판과 갈등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했다고 한다. DJ가 야당 총재 시절 "내가 죽었을 때 제일 슬피 울 사람이 김영삼 총재이고, 김영삼 총재가 돌아가실 때 가장 슬피 울 사람이 이 김대중"이라고 말했던 것도 이와 의미를 같이한다.

특히 경쟁에서 이겨 승리를 쟁취해야 하는 스포츠에는 무수한 라이벌이 존재했다. 이들의 라이벌전은 많은 팬을 끌어모을 수 있었고, 역사에 길이 남을 경기나 선수로 기억된다. 피겨스케이트의 동갑내기 맞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테니스의 오른손 황제 로저 페더러와 왼손 천재 라파엘 나달, 한솥밥을 먹으며 동양인 최다승 경쟁을 펼쳤던 메이저리거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 대학부터 프로까지 라이벌이라 불리며 서로를 성장시켰던 한국농구의 기린아 서장훈과 현주엽, 축구 황제를 놓고 끝없는 경쟁을 펼쳤던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대표적이다.

KBO리그 출범 이후 한 번도 이름이 바뀌지 않은 역사 깊은 원년 구단인 삼성 라이온즈에게도 많은 라이벌이 존재했었다. 1980년대 중후반 해태 타이거즈나 1990년대 후반 롯데 자이언츠, 2010년대 두산 베어스 등과 정규리그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수많은 감동을 연출했다.

라이벌과의 경쟁을 이겨낸 삼성 라이온즈는 2011~2015년 5년 연속 정규시즌 우승과 2011~2014년 4년 연속 코리안시리즈 제패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1997~2008년 1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역대 1위)과 1984~1993년 10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역대 2위)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이런 삼성이 대내외적인 환경변화와 맞물려 점점 무색무취의 팀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팬으로서 마음이 아프다. 성적과 열정으로 팬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추억을 남기지 못한다면 프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삼성을 자극할 만한 라이벌이 등장했다. 바로 이승엽 두산 감독이다. '라이온 킹'이라는 애칭처럼 삼성의 상징이었던 선수가 적장이 돼 대구를 찾았다. 언론에서는 이승엽 감독과 삼성의 관계를 통해 박진만 감독과 동갑내기 라이벌전을 만들고 있다.

삼성으로서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좋은 호재다. 라이벌은 대립하면서도 때로는 협력하는 공존공생의 대상이다. 라이벌이 없다는 것은 자신에 대한 갈망이 없다는 것과 동의어다.

이승엽이라는 불편할 수도 있는 라이벌을 통해 또 다른 성장 에너지를 갖기를 40년 된 팬의 입장에서 바라고 또 바란다.
홍석천 체육주간부장 겸 NFT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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