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벤처, 스타트업, 혁신

  • 최시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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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01  |  수정 2023-06-01 06:56  |  발행일 2023-06-01 제22면

[취재수첩] 벤처, 스타트업, 혁신
최시웅기자〈정경부〉

'Y2K'를 앞둔 1990년대 말. 한국 사회 IT 기술의 혁신적인 발전으로 '벤처붐'이 일었다. 정부가 창업을 독려했고, 이른바 '닷컴기업' 주도로 신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벤처붐은 분명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정보통신 산업의 굵직한 혁신을 이끌었다.

2020년을 전후로 '제2 벤처붐'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ABB(인공지능·빅데이터·블록체인) 등 혁신기술이 바이오와 의료, 유통 등 다양한 업종으로 스며든 덕분에 새로운 생태계가 탄생했다고 자평한 바 있다. 문 정부는 전담부처까지 만들어 붐의 가속화를 지원하기도 했다.

한때 혁신 그 자체를 의미한 벤처는 오늘날 빛을 잃었다. 벤처는 외환위기 사태를 직접 겪은 세대나 알아보는 다소 고리타분한 개념이 됐다. 기업들도 지원 사업 참가 시 가산점을 얻을 목적으로 벤처 인증을 받을 뿐 제도 자체를 혁신성과 동일시하진 않는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혁신을 향한 구애는 스타트업 열풍으로 이어졌다. 사전적으로 '신생 창업 기업'을 뜻하는 스타트업은 IT 기술 기반의 뜻을 내포한다. 벤처와 스타트업이 IT를 공통분모로 우리 사회의 혁신요구를 소화해내고 있는 셈이다.

요즘 정부, 기관, 지자체, 기업마다 스타트업 관련 사업들이 차고 넘친다. 앞다퉈 스타트업을 '유니콘'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도 내건다. 혁신성을 끌어와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프로젝트까지 각양각색이다. 매주 새로운 사업이 시작되고, 또 다른 사업 참여 스타트업 모집 공고가 발표된다. 경쟁적으로 혁신을 부르짖는 모양새가 과거 벤처붐을 연상케 한다.

한 지역 IT업체 대표는 "스타트업, 혁신, 신기술 중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우리 사회와 산업의 발전을 위해선 필요하다. 하지만 산업은 혁신만으로 먹고살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때 혁신을 일으켰던 벤처기업이 휘청이는 데도 이젠 혁신적이지 않다며 아무런 관심도, 지원도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작년까지 잘 진행되던 지자체 지원 사업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유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해당 부서에 확인해보니 스타트업 관련 사업으로 예산이 전용될 예정이라는 설명만 내놨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시끄럽게 이어진 혁신붐은 피로감을 남긴다. 하던 일을 더 잘하는 '조용한 혁신'에도 귀 기울일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때다.
최시웅기자〈정경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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