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지대] 중년의 현자들

  • 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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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5 07:05  |  수정 2024-01-15 07:08  |  발행일 2024-01-15 제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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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변호사

동네의 작은 한증막 구석에 누워서 벽을 보고 뒤돌아 있었던 적이 있었다. 내 등 뒤로 아주머니들이 차례로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 아주머니들은 한동네에 살면서 친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그중 한 아주머니가 모시떡을 들고 왔으니 다들 있다가 함께 먹자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 다른 아주머니가 모시 절편이냐고 물었다. 그분들은 모시 송편, 모시 절편, 모시 개떡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모시떡은 모시풀 잎을 재료로 하는데, 모시옷을 만들 때의 그 모시풀이라고 한다. 나는 누워서 '아…. 옷의 원료가 되는 풀로 떡을 만드는구나' 하며 듣고 있었다.

그분들은 자신이 가진 모시에 대한 모든 상식을 풀기 시작했다. 모시떡은 쑥떡과 다르게 다 자란 모시를 데쳐 쓰기 때문에 맛이 진하다든가, 원래 모시는 식용이 아닌데 예전에 먹을 것이 없을 때 모시 개떡 같은 것을 만들어 먹으면서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분들은 모시떡을 만드는 자신의 방법을 얘기했는데 결과적으로 모시떡은 그냥 모시만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모시로 만드는 부각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아, 그렇구나' 하면서 듣고 있었다. 모시가 혈관에 좋다더라, 뼈건강에 좋다더라는 얘기를 하자 나는 솔깃해졌다. '떡을 사 먹을 일이 있으면 모시떡을 먹어야지….' 그러다가 누군가가 모시옷 얘기를 했다. 한산모시는 삼베보다 더 짜임새가 곱고 비단 같은 광택이 있어서 고급으로 쳤다는 것이다. 나는 그럼 모시랑 삼베는 어떤 차이가 있지? 하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물을 뻔했다.

그 순간 누가 시댁이 안동인데 어르신들이 '대마'로 삼베인 안동포를 짰다고 했다. 그리고 모시나 삼베 짜기가 얼마나 고달픈 작업인지를 서로 얘기하면서 모시풀을 이로 째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이가 벌어지고 안 좋아지게 되는데 여기서 '이골이 난다'는 말이 나왔다고 하지 않냐고 했다.

'아…. 이골이 난다는 말이 거기서 유래되었구나' 어떤 아주머니가 모시랑 삼베가 너무 비싸서 윤년에 수의를 미리 지으려고 해도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했다. 그러다가 모시랑 삼베만큼 시원하면서도 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인견' 얘기가 나왔다. 그러고는 또 인견에 대해서 각자 아는 이야기를 풀었다. 인견은 풍기 인견이 제일 좋다며, 동네 어디에 풍기 인견 이불을 파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산 이불이 시원하고 좋더라는 말을 했다.

나는 뒤돌아서 자는 듯했지만 내 귀는 거의 기지국 안테나처럼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를 흡수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모시떡을 먹기 위해 우르르 나갔을 때는 '나도 인견 이불 사고 싶은데, 이불집 상호라도 알려 주고 나가셔야지요'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가끔 5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일상과 건강, 살림, 인생의 꿀 정보들을 얻을 때가 있다. 가족의 안전을 위해 안전지향적인 삶을 추구했던 주부들은 과학적 증거가 없어도 알 수 있는 통찰력 같은 것이 있다.

삶의 지혜를 가진 그 현자들은 주로 주말에는 등산복 차림으로 등에 붙는 배낭을 메고 다니는데, 그 배낭 안에는 떡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거의 100%다. 이은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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