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가능성이 품은 실패

  •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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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01-16 06:50  |  수정 2024-01-16 07:00  |  발행일 2024-01-16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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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롤러스케이트장에 가면 주로 어린이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잘 타는 아이들이 반, 엉거주춤 타거나 그러다

 

넘어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옆에서 보호자나 동행인이 넘어진 이들을 일으킨다. 손을 잡아주고 자세를 알려주고 지켜본다. 비록 음악에 맞춰 날쌔게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축된다 해도 엉덩방아를 찧거나 엉성한 자세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일은 부끄러운 일도 주목받을 만한 일도 아니다. 넘어지며 배우는 그 과정을 모두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기에.

EBS 연말 특별 기획으로 제작된 '학교도감' 1부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나온다. 20년 후 나의 모습을 그려본 후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시청자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다양한 직업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야근을 하거나 알바를 한다는 등 꿈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답변이 많았다. 축구선수가 되고 싶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조기축구회로 만족하고, 꿈은 과학자지만 계속 발명에 실패해서 평범한 직장인이 될 것 같으며, 미술은 돈이 안 돼서 직업으로 선택하기 힘들 것 같다는 답변은 공통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아이들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지 않았다. 희망과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여 실패할 일도 실망할 일도 만들지 않겠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전쟁이나 기후위기, 고물가 시대를 겪는 세대인 만큼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많이 나타났다. 대부분 학생이 어른이 되는 것에 부정적인 답변을 내놓았으며 두드러지는 이유로 일이나 돈에 대한 걱정이 컸다. 기성세대로서 우리의 모습이 어린 세대에게 긍정적으로 비치지 않고 있으며 누구보다 불안한 미래를 체감하며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에 여러 감정이 오갔다.

어린이들의 꿈이나 현실을 낭만적으로 보자는 말이 아니다. 동심에 가둬두고 싶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내가 천진하게 꿈꿨던 것, 기대하고 상상했던 많은 시간을 누리지 못하고 약할수록 기민할 수밖에 없는 어린이들의 처신에 속상할 뿐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에 대한 확신의 시간은 안타깝게도 점점 나이가 들면서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꼭 어린이들에게서만 체념과 좌절의 목소리를 우려할 것은 아니다.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년이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안정된 미래를 보장받길 원하며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싶은 마음이 어른에게는 허용되고 어린이에게는 안 된다고 선 긋는 것은 오히려 어불성설이다.

일하는 시간이 고되지만 안전하고 윤리적인 노동 환경이라면, 개인의 여가나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충분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면 어린이가 꿈꾸는 미래도 그 토대 위에 그려질 것이다. 각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사람의 업적이나 성취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에 이르기까지 겪었을 수많은 어려움과 실패의 과정 또한 눈여겨본다면, 아직 주목할 만한 성과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꾸준히 정진하는 걸음과 실패에도 박수를 보내줄 수 있다면 무언가 되고자 하는 마음에 큰 용기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실패에 지나치게 엄격하며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경직된 사회 분위기는 다양한 시도와 가능성을 제한할 뿐이다. 롤러장이나 스케이트장에 들어선 사람의 엉거주춤한 모양새처럼 시도하는 움직임이 더 많이 일어나면 좋겠다.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아닌 내겐 너무 뭉클한 모습이었으니까. 가능성은 실패를 품을 때 커진다.
김정애 전 독립문예지 '영향력'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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